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뭔가 논리적인 전개와, 특정한 중심인물의 이야기가 물흐르듯 흘러가는 보통의 소설에 익숙하면 익숙할 수록 이 소설은 읽기 힘들 겁니다. 있어 보이는 말로 하자면, 이 소설의 모토는 이른바 '언어 표현의 해체와 재구축'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요? (속삭이듯) 실은 저도 대체 그게 뭔지 궁금해요. (다시 보통 목소리로) 분명한 건, 이 소설에서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감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부제를 Don't think, just feel이라고 써놨죠. 글쎄, 논리적인 전개와 합당한 이치에 닿는 글을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겁니다. "어쩌라고?" 네, 이해하려고 들면 들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소설입니다. 상식에 맞는 전개나 정합성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요. 이 소설의 환타지한 전개로 말하자면, 근래에 적었던 <지하철 소녀 쟈지>의 혼란함을 간단히 쌈싸먹을 정도입니다.

 아, 이해합니다. 지금 제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시겠죠. 사실 이건 책을 읽기 전에는 제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사과를 먹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 맛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그래도 되도록 근사치에 가깝게 설명해보면, 전 이렇게 설명해보렵니다: 어떤 사람이 꿈을 꿨는데, 그 꾼 꿈을 전혀 정리하지 않고 써나가면 이런 글이 나올 겁니다. 그것도 꿈속에서 가지는 논리전개 그대로요. 우리는 보통 자신이 꾼 꿈을 타인에게 설명할 때면 나름대로 현실에서 논리를 재구성하죠, 꿈속에서 있었던 말도 안 되는 논리전개나 비약은 현실에 맞게 고쳐집니다, 하지만 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에서는 그러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다 나옵니다. 그러니 말이 되나요? 안 되죠. 이런 걸 읽으려면, 독자 스스로도 논리적 정합성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꿈을 꾸지 않으면 안 돼요.

 소설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글쎄 이게 대체 야구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야구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인지 참 알기 어렵습니다. 기실, 우리가 통상 '야구'라 말하는 스포츠에 대한 중심개념을 이 소설에서는 전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요. 대신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야구의 잡다한 에피소드 등을 들이밀죠. 정확하게 말하면, 들이민다기보다도, (소설에서 가상한, 진짜 현실과는 다른) 현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야구와 연관시킨달까요. 보통 살아가면서는 신경도 쓰지 않을 법한 일을 집착적으로 파고들어요. 강박적이기까지 합니다.

 좋아요, 위에서 저는 꿈을 꾼다는 이야기를 했죠. 꿈이 다 그렇듯 이 소설도, 이 꿈을 꾸다가 저 꿈으로 넘어가고, 저 꿈을 꾸다가 다시 이 꿈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꿈이 비록 현실로 돌아와 되새겨보면 허무맹랑하더라도 꿈 속에서는 또 나름대로 그에 합당한 논리 전개가 있어요. 만약 여러분도 이 소설에서 그런 어떤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보세요.

 이 소설을 쓴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천재 아니면 얼간이입니다. 둘 다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글쎄, 변태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인간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제 견해에 대체로 동감해주리라고 믿어요.


 여담. 그리고 혹시라도 이 소설을 읽고 마음에 드셨다면, 동 작가의 <사요나라 갱들이여>도 읽어보시길. 그건 더 아스트랄합니다.

 여담2.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박민규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읽어보았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