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민음사

 스페인 내전에 대해 알건 모르건 <카탈로니아 찬가>는 유익한 글입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조지 오웰의 시각과 경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며, 만약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스페인 내전에 대해 몰랐다면 그에 대해 알게 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해 없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제 경우는 스페인 내전에 대해 거의 모르는 상황에서 조지 오웰을 따라 점진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만, 이 감상을 위해서는 스페인 내전을 좀 설명해 둘 필요가 있겠죠.

 스페인 내전을 적절히 수식하는 한 가지 말이 있습니다: "아나키즘의 역사상 유일한 실험 무대 (책 뒤의 소개말에서 인용)". 이게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겠죠. 일단 위키백과에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설명을 좀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와 군부, 가톨릭교회로 대표되는 보수파 사이에 벌어졌던 내전으로 스페인 내란 또는 에스파냐 내란이라고도 한다.

 1931년 스페인은 국왕을 추방하고 제2공화정을 수립하였다. 공화국 정부의 가장 큰 현안은 토지개혁이었으나, 스페인의 특권계급이었던 지주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저항으로 개혁은 지지부진하였고, 대공황으로 양극화가 심화되어 계급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무정부주의와 파시즘 등의 극단주의가 대두되어 사회는 극도로 불안정하였다.

 1936년 2월 총선 결과 사회당, 좌파 공화파, 공산당으로 구성된 인민 전선이 473석 중 289석을 확보하여 토지개혁을 포함한 혁명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이에 대해 스페인의 특권계급들인 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마침내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 머물고 있던 프랑코와 스페인 군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나키즘의 역사상 유일한 실험 무대였다는 뜻이 무어냐 하면, 프랑코의 파시즘에 대항하여 싸운 이 연대 세력이 좌파였으며 노동 계급이었던 만큼, 그들이 실질 권력이 됨에 따라 그들이 내세운 혁명적 기치가 당시 카탈로니아에 퍼져서, 부의 유무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거나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거나 하는 관념이 일시적으로나마 사라졌었기 (군대에서조차 존칭어를 쓰지 않았다 합니다) 때문입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프랑코가 패배했다면, 스페인은 파시즘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없이 평등한 국가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반파시즘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혁명이 이루어지느냐 이루어지지 못하느냐 하는 기로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전쟁에서 프랑코가 패배할만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프랑코는 무솔리니 이탈리아, 나치 독일, 살라자르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았으며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가졌습니다. 반면에 그에 대항한 연대세력은, 비록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섰다거나 전 세계에서 달려온 의용병들이 참가했다는 부분은 감동적일 수 있지만, 프랑코의 반란군에게 승리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군사력이었죠. 어쨌거나 여기에서는 프랑코의 반란군이 승리를 거두고 스페인은 한동안 파시즘 국가가 됩니다만, 단지 그렇게 해서 패배한 것뿐이었다면 조지 오웰이 분노를 담아 이 글을 써내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조지 오웰은 공산당에 분노하고 있었죠. 말하자면, 이 내전에서 연대 세력에는 몇 가지 입장이 있었습니다. 반란군과 싸우면서 동시에 혁명을 진전시키는 일에 있어서, ① 혁명을 일시 중단하고 전쟁 승리에 몰두하여야 한다는 입장, ② 혁명을 진진시켜 완수하는 것이 곧 전쟁에 승리하는 길이라는 입장, ③ 혁명을 크게 후퇴시켜서라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에 몰두하자는 입장, 이렇게 세 가지가 있었죠. 조지 오웰이 속한 통일노동자당 (P.A.U.M)은 두 번째 입장이었습니다 (그 본인은 첫 번째 입장이었습니다만). 문제는 공산당이 세 번째 입장이었다는 것이며, 그들에게 소련이 지원해주었던 만큼 연대 세력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점이죠. 그래서 스페인 공산당은 그 영향력으로 혁명의 진전을 되돌리고, (전쟁이 끝난 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그들과 입장이 다른 좌익은 탄압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조지 오웰이 속한 통일노동자당은 공산당의 계략에 의해 트로츠키주의자에 파시스트의 앞잡이으로까지 몰려 사실상 별다른 근거도 없이 체포되어 죽어가게 되었으며, 언론 조작으로 인해 그 상황을 실제로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공산당의 주장만을 사실이라 믿게 되었죠. 이것이 조지 오웰이 제 5장과 제 11장에서 당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을 서술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 두 장에서 그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가며 통일노동당이 ㅡ좀 분명하게 말하면, 통일노동당 아래에서 혁명을 위해 싸운 그 순수한 사람들이ㅡ 알려진 것처럼 파시스트의 앞잡이가 아니었으며 공산당의 부정한 술수로 무고당했음을 증명합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1936년의 스페인을 경험한 조지 오웰의 수기입니다. 이 책에서는 민병대나 의용병의 모습, 당시 스페인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권력을 위해 힘 있는 자들이 어떤 계략을 획책하는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힘 있게 읽힌다면, 그것은 아마도 바로 이 부분 때문입니다. <동물 농장>에서 그러했듯이, 그의 글은 단순히 사회주의자나 좌파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권력자들이 계략을 꾸미는 모습도,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모습도, 1936년의 스페인만이 아니라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라도 볼 수 있겠죠.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물을 그저 보여지는 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14장에서 오웰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벽하게 진실하지도 않고 또 진실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하기 힘들며, 모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당파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게 된다. 혹시 앞에서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지금 말해 두겠다. 나의 당파적 태도, 사실에 대한 오류, 사건들의 한 귀퉁이만 보았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을 조심하라. 또한 스페인 전쟁의 이 시기를 다룬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똑같이 조심하라.

<카탈로니아 찬가>, pp.294-295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