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은 모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은 이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해 완성시켰고, 재미를 위해 그 당시 영국에 널리 알려져있던 노래 등을 패러디하였고  "수퍼맨 구해줘요 했더니 수퍼맨이 허공에서 9자를 그려 보이더라.."는 식의, 언어의 발음을 가지고 그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는 식의 말장난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게 한국에 사는 우리들이 이 책을 번역본으로 읽을 때 주석의 도움이 없으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됩니다만, 역시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이 즐겁게 읽으라고 쓰여진 책입니다.

 물론 아이들을 우선적인 독자로 생각해서 썼다고 어른이 읽어서 유치하다는 법은 없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와도 좀 흡사한 면이 있는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며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패러디를 좀 제쳐놓는다면) 부담 없이 편하게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생각해볼만한 거리도 제법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 자체가 '앨리스의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 전개나 상황 전개에서 다소 비약적인 측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꿈이니까요. 이 점은 다소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 심한 "Don't think, just feel" 류의 글은 아닙니다.

 앨리스의 텍스트에 파고들만한 여지가 많다는 점은 <앨리스>를 놓고 벌어진 여러 상황들만 보아도 알 수 있겠습니다. 책 뒤의 해설에서 좀 설명을 빌어오면, "······ 점차 학자들은 마약, 프로이트, 섹스, 아동 성애, 정치, 논리학, 수학을 비롯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 책을 분석했고, 시간이 흐르며 앨리스 이야기는 아동 문학의 장르를 뛰어 넘게 되었다.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하나 버트런드 러셀 같은 철학자와 에드워드 윌슨, W.H. 오든 같은 비평가들은 이 책에 아주 매료되었고,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흰 토끼>나 비틀스의 <나는 바다코끼리> 같은 노래에 영감을 주기도 했으며 프레드릭 브라운의 소설 <재버워크의 밤>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를 비롯해 많은 문학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체셔 고양이는 양자 역학을 설명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pp. 314-315)"고 합니다. 해설에서도 말하듯 저자인 루이스 캐럴 자신이 이 현상을 의도하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즉 요즘 시대에 있어서는 <앨리스>를 읽는다는 게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읽는 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을 가지고 만들어낸 다른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읽어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는 뜻이죠. 이만하면 거의 고전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할 만합니다. 하긴 제 경우에도 <앨리스>에 새삼스레 흥미를 가지게 된 게 미나가와 료지의 <암스 ARMS>를 읽고 '이거 <앨리스>를 좀 다시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지는걸'이란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사실 <앨리스>는 번역본으로 읽어서는 그 재미를 충분히 알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위에서 '이 소설은 패러디와 말장난을 많이 사용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많이 사용한 수준이 정말로 많아서, 과장 좀 덧붙여 이 소설에서 패러디와 말장난을 제거하면 분량이 확 줄어들어 우리가 많이 봐 온 그림 들어간 (뭐, 소설에도 그림은 들어가있지만) 내용 대거 짤려나간 어린이용 동화책 분량으로까지 줄어들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각주가 충실히 달려있으므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이런 게 워낙 많으니 아예 처음부터 원본으로 읽는 쪽이 낫겠다 싶기도 해요······· 원본 읽을 능력이 있으면 번역본을 읽지 않았겠지만요. 사실 처음에는 <앨리스>를 <지하철 소녀 쟈지>처럼, 그 말장난을, 말장난의 형식을 사용해 한국어 버전으로 치환시킬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읽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말장난 양이 워낙 많은데다 그게 또 이야기 전개 자체에 좀 영향을 줘요. 이건 그냥 각주 다는 게 상책입니다. (...) 좀 더 직관적으로 읽고 싶으면 원본 읽는 수밖에 없고요.

 그림에 대해서도 언급은 해야겠군요. <앨리스>를 말하는 데 그림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이고 (본래부터 <앨리스>에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루이스 캐럴이 직접 그렸다죠. 결국 전문 삽화가에게 맡겨지게 되었습니다마는) <앨리스>의 유명한 삽화가로는 존 테니얼이나 아서 래컴, 머빈 피크를 들 수 있겠는데, 제가 산 <앨리스>의 그림은 머빈 피크 판입니다. 그림 수준이야 물론 괜찮게 그려졌습니다만 다른 삽화가의 그림을 더 좋아한다면 다른 출판사의 <앨리스>를 구입하는 쪽이 좋겠죠. 제가 머빈 피크 판으로 산 이유요? 당연히 가격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전 머빈 피크 판을 산 게 아니라 그저 열린책들 페이퍼백 판 (정식명칭은 Mr. Know 세계문학)을 산 것일 뿐이니까요. 한 권 7,800원의 가격이란 정말 부담이 없어요. (그래서 현재 가지고 있는 열린책들 페이퍼백은 총 6권.. 아마 앞으로 계속 늘어날 듯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