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열린책들

 당돌한 질문입니다만, 과연 인간에게 진정한 객관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틀림없다고 여기는 것들은 정말로 '틀림없는' 것일까요? 나를 둘러싼 이 세계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분명'할까요? 틀림없으며, 분명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그 틀림없음과 분명함을 확인하고 있을까요? 기억? 문서? 주위 사람들의 모습? ㅡ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억과, 남겨진 문서 (보고 기억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물건을 일단 문서라고 약칭합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증언 혹은 반응으로부터 그리고 세계를 확인합니다. 나를 지금의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아무도 그 (혹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떨어진, 기억 상실증에 걸린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것이 아무 것도 존재치 않습니다. 그는 자아를 분명하게 확립하지 못하며,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왔으며 무엇을 이루어가야 할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분명(하다고 믿는)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처한 상황의 주변 사물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그 기억을 확인받고 확인해주며 삶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명백하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더 이상 명백해지지 않는다면? 나의 기억을 주위 사람들은 모두 부정하며, 그 기억에 따르면 존재해야 할 사물 혹은 인물을 찾아낼 수 없다면? 나의 주관을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주관을 통해 객관으로 확인받을 수 없게 된다면? ㅡ다시 말해, 내 기억이 오직 나만의 기억일 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부정한다면?

 <콧수염>에서는 바로 그러한 일이 벌어집니다. 콧수염을 깎은 적이 없었지만, 어느 날 변덕으로 콧수염을 깎은 한 사내는 자신의 콧수염에 대해 아내와 주변 친구들로부터 '처음부터 당신에게 콧수염은 없었다'는 반응을 듣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못된 장난으로 여길 수 있었지만, 이 상황은 점차 확대되어갑니다. 콧수염, 콧수염이 있었던 때의 사진들, 콧수염이 있었던 때의 사진과 관련된 추억들ㅡ 여행가서 찍은 사진뿐 아니라 그 여행 자체, 나아가 남자를 지금의 그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정됩니다. 남자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부정합니다. 남자는 자신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 누구도 남자의 기억이 맞는다고 확인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도 자신이 정말 옳은지 점차 혼란스러워지고, 잘못된 것이 어느 쪽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과연 남자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그리 낙관적인 소설이 아닙니다)

 <콧수염>은 인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버리는지, 그리고 인간이 실제로는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지를 말합니다. 실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아무리 개인의 주관이 뚜렷해도 사회의 모든 것들이 그 개인을 부정해버리면, 미쳐 버리는 (아니면 적어도 미쳤다고 규정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니면 개인의 주관을,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주장하기를 그치고 사회에서 말하는 대로 그냥 다 순응하든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