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석정현 지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예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석정현의 첫 장편 만화 단행본 <귀신>입니다. 근미래 SF로, 멸망이라 부를 수 있는 거대한 자연재해 이후 전쟁이 사라진 세계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그려낸 만화입니다. 매체가 불온한 목적으로 사람을 선동하고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나름의 가능성을 내어놓고 있죠.

 뭐, 이 만화에 나름 심오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중요하진 않습니다. 심오한 분위기를 잡기는 하지만 심도가 좀 모자랐던 탓에 오싹하게 와닿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왕 이런 주제를 잡는다면 좀 더 깊이 파고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다른 많은 작품에서 다룬 소재이기 때문이죠. 캐릭터 하나하나도 좀 더 살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굳이 말하라면 이 <귀신>은 특정한 한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프롤로그라고 해도 그 자체로 한 편의 꽉 짜여진 작품이라면 별문제였겠지만, 꽉 짜여졌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게 문제군요.

 하지만 그런 아쉬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사볼 만한 가치가 있는데······ 작화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입니다. 알렉스 로스가 만화는 매 컷마다 일러스트를 그려넣는 것이라고 말했다던데,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만화입니다. 매 컷마다 회화를 그려넣었달까요. 정성과 비범한 색채 감각이 엿보이는 멋진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단, 모처럼 회화풍으로 그려낸 만화인 만큼 동선의 사용을 좀 줄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모처럼 무게감 있는 그림을 다소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아쉬움이 있어서 말이죠.

 글쎄, 그래픽노블을 '좀 있어 보이는 만화 - 한 컷 한 컷이 예술적인' 것이라 정의해본다면, <귀신>은 그 정의에 알맞게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림만 보고 사도 그리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야기 면에서도 더 깊이 있고 생각할만한 주제를 멋지게 담아낸다면 보다 많은 사람이 만족할 만한- "예술적이다!" 라는 찬탄이 나올 만한 만화가 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게 불가능하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멋진 게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