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 레드 선
마크 밀러 외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강철의 사나이. 보이스카우트. 슈퍼맨을 형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다소의 무력을 허용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올바르며 올곧은 사나이입니다. 이 남자에게는 어둠이 그를 붙잡을 만한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거의 비틀리지 않습니다. 그를 비틀고자 한다면, 그의 환경이 비틀려야만 할 것입니다.

 <슈퍼맨: 레드 선>이 그런 만화입니다. 슈퍼맨이 미국 캔사스에 떨어지지 않고, 소비에트 연방에 떨어졌다면?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가 그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다면? 슈퍼맨은 과연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그리고 또 다른 캐릭터나 히어로들은 그런 슈퍼맨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슈퍼맨만큼 빅 브러더에 어울리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들으며, 어디든 갈 수 있고 그 누구도 그에게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가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마음먹는다면,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요. 글쎄, 그 자신이 원한다면 신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거의 올라 있죠.

 <슈퍼맨: 레드 선>의 기본 메시지를 말해보자면,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누군가'가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려고 할 경우, 그 누군가의 뜻이 실제로 정의롭다 할지라도 그 결과물은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슈퍼맨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주의 사회는 분명 풍요가 넘치지만, 통제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이며 그들에게 자유는 없습니다. (결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진정으로 자유란 게 있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어쨌든 상대적으로 따져보면 민주주의 사회가 더 자유로운 건 사실이니까요. 적어도 비판은 허용되니까) 어쨌거나 렉스 루터 같은 이에게, 인간이 아닌 절대적인 누군가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사회는 절대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그는 슈퍼맨에 대치해 행동하며 (아, 렉스 루터는 미국인이며 대통령입니다, 다른 많은 슈퍼맨 만화에서 그랬듯이)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미래를 정하고자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신이 필요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인본주의적 이상이 반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슈퍼맨이 비록 신은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만화들을 보다 보면 거의 신화처럼 읽히는 구조가 많아서요. <킹덤 컴>의 경우에는 사실 처음부터 신화로 의도되었다는 인상이기도 했죠.

 어쨌거나, 많은 것이 반전된 세계이니만큼 익숙했던 인물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빅 브러더가 된 슈퍼맨이나, 인간들의 히어로가 된 렉스 루터나, 소련 내에서의 테러리스트가 된 (소련에서 사유재산이 있기 어려우니 여기서의 그는 부자는 아닙니다) 배트맨이나, 사회주의자로서 슈퍼맨과 함께하는 원더 우먼이나, 렉스 루터에 의한 프로젝트로 주도되어 슈퍼맨과 대치하려 드는 그린 랜턴 할 조던이나, 슈퍼맨과 함께하여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듯하지만 사실 꿍꿍이속이 있는 브레이니악 같은 인물들 말이죠. 담겨 있는 메시지는 그렇다치고, 익숙했던 인물들의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극히 흥미로운 만화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패러디도 좀 있고요.

 여태까지의 정의로운 슈퍼맨에게 권태로움을 느끼던 사람이라도 (비록 DC에서 슈퍼맨이 그저 권태롭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하긴 하지만, 슈퍼맨 자체가 크게 재해석되기 힘든 것만은 사실이죠) 이 비틀린 세계에서의 슈퍼맨은 상당히 참신하게 다가올 듯합니다. 사실, "만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은 대개 흥미롭기 마련이죠.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