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황금가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 된 소설이라 하여 읽었습니다. 원작주의자인 저로서는 어떤 작품이 여러 가지 매체로 있다고 하면 그 가장 기초가 된 작품만 보는데, 읽고 나서 나중에 보니 <블레이드 러너>는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 같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니, 언제가 되건 그것도 한 번 봐야겠다 싶어집니다.

 뭐랄까, 제가 보고 읽는 많은 작품들이 그렇습니다만, 누군가에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거나, 어떤 장르의 효시가 되었다거나 해서 막상 보면 지금 시점에서는 전혀 특별할 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체 이런 경우의 충격은 특정 스타일을 처음 보는 경우에만 받는 법인지라, 인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안드로이드나, 그런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인간이라거나, 기계 애완동물이나, 물질문명의 극한에 서서 기계에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인간이라거나, 황폐화되어 쓰레기만을 생산하는 지구 같은 일들에 충격을 받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봐온 거예요. 그래서 사실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까?' 하고 재미있게 읽기야 했지만 '우왓 이런 설정이라니!' 하고 놀랄 거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1968년 당시의 미국인으로서 이걸 읽었다면 상당히 달랐겠지만요.

 하지만 이것들이 충격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의미하는 것 자체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생각해볼 거리들 자체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에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면 그것은 특이한 소재가 아니라 소재가 가져다주는 우리 삶에 대한 고찰이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비록 이제 와서는 별로 놀라움을 가져다주지 않는 소설이라 하나 그런 힘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ㅡ물론, 저는 소재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소설에 대해 몹시 부정적입니다. 그런 소설은 소재가 가져다주는 충격을 잃어버리는 순간 가치를 상실해버립니다. 그런 건 오래 안 가요. 그러나 이 소설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으나 그 소재에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소재가 뻔하게 여겨지는 시점에서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자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글쎄, 특정 장르의 고전으로 불린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상당히 부정적인 미래세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만, 이 소설은 인간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자는 이 소설의 안드로이드에 대하여 '인간보다 인간다운 안드로이드'라고까지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기준은,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인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극도로 흉내내었기 때문에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그가 안드로이드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만이 지니는 특성- 애정, 욕망, 긍휼 등과 같은 인간성입니다. 암울하며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구원하는 힘은 결국 그 인간성이었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