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민음사

 감상을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미루고 있었던 <수호지>입니다. 왜 계속 미루고 있었냐 하면 이걸 5권까지는 사서 읽었는데 그 즈음에서 도저히 더 못 읽겠어서 6권부터는 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원래는 다 모으려 했는데 슬슬 울화가 터져서 못 읽겠더군요. 결국 5권까지만 읽고 감상글 써버립니다. 이쯤 하면 이 감상글의 성격이 짐작가시겠군요. 네, 본격 <수호지> 비방글입니다.

 본격이라는 이름 붙이려면 제대로 각잡고 가루가 되도록 까야겠지만, 본심을 말하자면 이 소설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고 싶지는 않으니 실은 좀 대강 하는 감상입니다.

 <수호지>를 왜 읽기 시작했느냐? ······하면 역시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사상 최강의 제자 켄이치>에 나오는 사부 집단이 사는 곳 이름이 '양산박'이라 '양산박'이 나오는 <수호지>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삼국지>는 꽤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같은 4대 기서 반열에 들어있으면 뭐 그래도 어느 정도 비견될만 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 이게 오산이었어요. <수호지>를 설명한다면 중국 송 (宋) 나라 시절, 민초들이 고통받던 그 시기, 호걸들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해 도적이 되어 무리를 이루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저는 이게 그래도 '범죄자가 됐기 때문에 옹호할 순 없지만 인의는 있는' 놈들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인의고 뭐고 용납이 안 되는 놈들 투성이지 뭡니까.

 사실, 1-2권 정도까지는 나름 괜찮았습니다. 살인을 하거나 해서 사회에 있을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 제법 나오지만, 이게 말 그대로 용서 못 할 만한 악당을 죽이는 경우라 어느 정도 이해는 됐거든요. 이 시점까지는 '그들은 살인자에 도적이 되었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는 정도로 <수호지>를 읽어 나가고 있었고 그렇게 감상글도 적을 계획이었습니다. ······마는,

 3권부터 좀 나오는 장청 부부 같은 경우, 이놈들이 고개를 지나는 사람을 잡아서 죽여 물건을 빼앗고 사람 고기로 만두를 만들어 파는 악당 놈인데 무송이란 남자가 일을 저지르고 귀양을 가다가 이 부부에게 당할 뻔하다 역으로 제압했단 말이죠. 근데 무송 말하길 "당신들 부부도 여느 사람들 같지는 않소. 이름이나 알아 둡시다. (3권 122쪽)"라고 합니다. 그러자 장청이 말하는 자기 사연인즉 절에서 채마밭지기 하다가 다툼 끝에 중을 죽이고 절을 태워버린 후 지나가는 사람 털어먹고 살다가 어느 늙은이도 털었는데 오히려 당하고는 그 사람의 사위가 되어 이제 본격적으로 나그네를 털고 인육만두 만들어 팔았다고 자기가 '천하에 악당'임을 고백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이 '저는 호걸들을 우대합니다 데헷' 이런 소리를 하자 무송도 "오오 우리는 모두 호걸" 이러며 인심도 좋게 넘어갑니다. 저 시대에 호걸 기준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난세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하여.

 약탈하고 살인하는 걸 예사로 아는 놈들입니다: 남들 죽이는 건 상관없습니다. '나'한테만 안 그러면 돼요. 힘만 있으면 우리 모두 다 호걸입니다. 전반적으로 이런 생각 자체가 인물들에게 깔려 있다 보니 약탈하는 놈 만나서 나만 안 털면 "오오 님도 호걸이군요" "사회가 우릴 안받아줘요 징징징" "그럼 양산박으로 갑시다" 이런 패턴으로 하나 둘 도적놈들이 증식해갑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그래 저 사회가 좀 많이 썩었긴 했지'라고 이해하며 읽어나가주려 했는데, 결정적으로 제가 <수호지>에 학을 떼게 된 사건이 5권의 주동 건입니다.

 주동이란 남자는 원래 관청의 절급이었는데 뇌횡이란 남자가 다소 안되게 잡힌 것을 안타까워해 일부러 놓아주어 그 죄 때문에 귀양을 가게 됐습니다. 귀양을 갔는데 주동 생긴 게 호걸답게 생겨서 (묘사한 거 보면 대춧빛 같은 얼굴에 수염이 배까지 늘어진······ 흡사 관우네요) 그 곳 지부가 주동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지부의 어린 아들도 주동을 마음에 들어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주동이 지부의 아들을 데리고 강에 갔는데 그 즈음에 뇌횡 및 다른 자들이 나타나서 양산박으로 주동을 포섭하려 듭니다. 주동은 자기는 일 년 반만 있으면 귀양살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양민이 될 수 있다고 거절하는데, 거절하고 보니 지부의 아들이 안 보입니다. 지부의 아들이 인질 된 셈이라 성 밖으로 나오는데 보니 결국 지부의 아들은 죽어버렸습니다. 이규란 놈이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죽여버렸지요. 그래서 주동은 돌아갈 수가 없게 돼버려서 양산박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규는 그로 인해 어떤 벌도 안 받죠. 그래놓고도 자기들은 호걸입네, 사회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네 소리나 해대고 있는데, 그걸 보며 저는 이 소리밖에 안 나왔습니다.


이말년씨리즈 ⓒ이말년


 그리고 저는 <수호지>를 모으기를 그만뒀습니다. 모으는 거고 뭐고 읽기도 싫더군요. (먼산) 또 한 가지도 깨달았죠. 컨셉이네 뭐네 소리를 들었든 어쨌든, <삼국지>의 유비는 정녕 호걸이었구나·······.

 <수호지>요? 악당 이야깁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