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먼저 밝히면, 전 러브크래프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호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며, 미지의 것에 대하여 딱히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소설 속에서 창조해낸 이계의 존재들을 별달리 매력적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혹시나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실 분들이 이 감상을 읽는다면 하게 될 질문이 떠오르는군요: "그럼 왜 읽었어?"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만은 여기저기서 들었기 때문이었죠. 예전 모뎀 시절에 천리안에서 놀 때도 러브크래프트라는 이름이 대가로 언급되었고, 스티븐 킹도 러브크래프트에 대해 "20세기 고전 공포의 가장 위대한 실천가 H.P. 러브크래프트를 능가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죠. 대체 어떤 글을 썼길래? 그런 궁금증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는 '크툴루 신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이계의, 압도적인 힘을 지닌 어떤 미지의 존재들이 언급되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죠. 여기의 단편들은 아주 간단하게 간추리자면 대강, 어딘가 불안함을 담고 있는 어떤 지역을 묘사 - 주인공이 탐구를 시작함 - 이질적인 무언가를 만남 - 파멸이 찾아오고 주인공에게도 그때까지 살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이 찾아온다 라는 전개로 진행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묻는다면, 재미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좀 읽기 힘들었는데, 이젠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고전이 돼버려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없이 변용되어온 다른 소재들이 넘쳐나는 21세기에 사는 입장에서 러브크래프트의 그것이 신선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을 겁니다. 물론 그래도 재미있게 읽으라면 못 읽을 건 없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이런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반쯤은 '고전을 공부한다'는 감각으로 읽었고, 그게 제가 러브크래프트를 어렵게 읽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장편이 아니라 단편들인 탓에, 좀 집중해서 배경이 머리에 들어오고 속도를 붙여 '이야기'에 집중하려 치면 이야기가 끝나버리고 다른 단편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군요.

 이런 이질적인 '세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타입의 독자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취향에 맞지 않았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이런 단편들을 썼고, 그의 창조물이란 이런 녀석들이었구나! 그리고 이런이런 사람들이 러브크래프트에게 그런 영향을 받았었구나! 하는 지식을 얻는 데는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만, 소설을 이런 식으로 공부하듯 읽는 것도 참······ 재미없는 일이지요.

 예전에 감상한 <스티븐 킹 단편집: 나는 어디에서 공포를 느끼는가?>에서 적었던, 인간은 대항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러브크래프트에서도 분명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이쪽이 더 원조일 것이고, 확실히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어떤 신화적인 창조물과 그 세계관에 흥미를 느끼시는 분들이면 확실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저와 비슷한 취향의 분들이라면······ 유의미하게 읽을 수 있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