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 심리학

감상/도서 2016. 6. 26. 20:36


전투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 로런 W. 크리스텐슨 지음, 박수민 옮김/열린책들



 사실 이 책은 이미 몇 년 전에 감상을 써 올렸어야 했습니다. 다 읽은 지 한참 되었는데 감상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올리네요. <전투의 심리학>입니다. 군사 심리학의 대가 데이브 그로스먼의 명저죠.


 이 책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싸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실전을 하게 될 때 그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책 내 추천사를 그대로 옮기면, '치명적인 전투 상황에 인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혈류, 근육, 판단력, 기억, 시력, 청력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알려 준다. 또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정말 어떤 것인지, 누군가를 총으로 쏜 직후, 혹은 한 시간이나 하루나 일 년 뒤에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되는지 알려 준다'는 거죠.


 책에서는 이 싸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전사 (warrior)라고 부릅니다. 현대의 전사로는 경찰관이나 군인을 들죠.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전사들,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거나, 그런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죠.


 그렇지만 뜻밖에 저 같은 사람에게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그건 제가 소설가이거나/무술 수련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저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을 그릴 일이 잦습니다. 진짜로 목숨을 건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한다면, 가짜를 그려내기도 편하겠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이후 글을 쓸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딱히 글을 많이 쓰진 못했지만, 어쨌든 그랬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또한 무술 수련자의 입장에서도 흥미로웠던 건, 싸움과 같은 격한 상황에서 인체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며, 그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는 분당 심박수(bpm)와 컨디션의 관계에 관해 말합니다. 인체는 위급상황 시 bpm이 높아지고, 이 bpm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갔을 때 인체는 생존에 당장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제어를 끊는 동시에 당장 급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부분에 집중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대변이나 소변 등을 몸에 넣어두어서 몸을 무겁게 할 필요가 없으므로 쏟아내 버리고 (다른 말로, 오줌이나 똥을 지리도록 해버리고), 당장 중요하지 않은 소근육 운동 기능은 저하시키고 (다른 말로, 세밀한 조작은 불가능하도록 하고), 가장 중요한 대근육 운동 기능을 최대치로 만드는 (다른 말로, 겁내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bpm 80-115를 컨디션 옐로, bpm 115-145를 컨디션 레드라고 합니다. 컨디션 레드에서는 신체 능률이 최고조에 이르지만, 훈련되지 않은 소근육 기능이 일부 상실됩니다. 따라서 격한 움직임과 세밀한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양립시키기 위해서는 컨디션 레드와 컨디션 옐로를 오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격하게 움직이던 농구 선수가 섬세한 자유투를 위해 심박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는 것과 같죠. 단, 훈련되지 않았던 소근육 기능이라고 말했듯, 만약 소근육 기능이 충분히 훈련되었다면 컨디션 레드에서도 섬세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bpm 145-175를 컨디션 그레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일반적으로는 오히려 신체 능률이 저하하는 단계이지만 훈련에 따라 컨디션 레드의 연장처럼 되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단계입니다. 다만 레드든 그레이든, 필요한 특정 동작이 훈련되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몹시 큽니다. 무술적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훈련되었으며 심박수가 높은 격한 상황에서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끔 연습해온 사람은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고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 책을 읽을 당시 저는 파이트클래스라는 풀컨택 스파링을 한참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동감했습니다. 인체는 위급상황 시, 훈련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동작은 절대로 잘하지 못합니다.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서, 그 상황과 최대한 비슷한 상황으로 연습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이죠. 시뮬레이션 측면에서, 이 책에서는 FPS 게임 (내지 건슈팅 게임)의 등장으로 총기에 대한 대량살상이 더 쉽게 일어났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물론 게임 속의 살인과 실제 살인은 서로 다른 문제이며, 누군가 실제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 녀석이 미친놈이지 게임 제작사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게임에서 항상 머리를 쏘아 맞히면 더 높은 대미지 (내지 점수)를 얻을 수 있음을 알고 그렇게 훈련된 사람이, 실제 상황에서도 머리를 노려 대량살상이 가능해질 확률은 더없이 높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저는 시력 문제로 공익이었으며 군에서 총을 쏴본 것은 훈련소에서가 전부입니다만 예비군이 되어 사격을 했을 때는 훌륭한 영점사격으로 조기퇴소가 가능했었습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즐기며, 총을 쏘는 데 대한 경험을 더 쌓았기 때문이었죠. 반복되는 경험이 실제 상황에서 더 나은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싸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그 극한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 시야가 협착되는가?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왜 내 근육은 세밀하게 제어되지 않는가? 심박수가 오르면서 신체는 평상시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데, 이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또한 싸움이 일어나려고 할 때는 어떻게 마음을 준비하고 반응해야 옳은가? 싸움이 끝난 뒤에 나는 또 나를 어떻게 다스리고 치유해야 하는가? 그런 것들을 알고 모르고, 또한 훈련되고 되지 않았고는 실제 상황에서 아주 큰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그는 다치지 않을 수 있었을 상황에서 다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싸울 필요가 있거나, 싸움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