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력

영춘권/수련단상 2017. 11. 17. 14:26
 완력이 세면 좋습니다. 하지만 완력을 써선 안 됩니다.

 달리 말하면- 힘이 세면 좋습니다. 하지만 힘을 써선 안 됩니다. 힘이 있어야 하지만, 힘이 빠져야만 합니다. 힘을 빼야 하지만, 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분도 있을 거고, 아 그거 말이군 하고 쉽게 아시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했던 이야기죠.

 영춘권에서 힘이 있다는 건 근육의 힘이 강하다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근력은 필요합니다. 인간이 움직이는 데에는 근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대로 힘을 내기 위해서는 굳어 있지 않은 부드러움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몸 전체를 유기적으로 사용해 쓰는 힘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 힘은 자연스러우며, 묵직하고 강합니다.

 중심이 떠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이 중심이란, 근력을 쓰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완력을 쓸 때, 그 사람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면 어쨌거나 그 자체로도 위력은 나오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몸의 중심은 뜹니다. 한마디로, 들기 쉬운 (=밀리기 쉬운) 상태가 되죠.

 영춘권을 잘 몰라도 체험할 수 있는데, 어깨를 낮추고 힘을 다 빼고 있는 사람이 어깨 들어올리고 힘을 꽉 주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들어올리기 어렵습니다. 중심이 다르기 때문이죠. 영춘권에서 몸을 쓰는 방법은, 그 '힘을 뺀 상태'에서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무술식으로 말하면 방송(힘빼기)하면서 경력(근력만이 아니라 몸으로 힘내기)을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쉽지는 않습니다. 뭐가 쉽지 않은가 하면 이걸 유지하면서 계속 공방을 주고받는 게 어렵다고 할 수 있지요. 괜찮은 상태를 유지했더라도 한순간에 자세가 깨지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고 반응하지 못하면 자세가 깨지는데, 자세가 깨지면 필연적으로 억지힘을 쓰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몸도 굳고 중심도 뜨니 연타를 한다발로 먹기 딱 좋은 상태가 됩니다. 항상 자세를 유지한다는 게 참 어려워요. 어려워서 재밌긴 합니다만.

 물론 이건 어느 정도 고급 수준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초급에선 힘의 흐름이고 자시고 자세를 만드는 것만도 벅차니까요. 이런 건 수련이 계속 쌓여야만 가능한 법이죠. 하지만 일단 이런 상태가 되기 시작하면, 이게 고급 기술만이 아니라 초급 기술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들과 간단한 기술만 교환해봐도 격차가 크게 나는 걸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쯤 되면 같은 기술 같지만 사실 같은 기술이 아닌 거죠.

 ..같은 원리로, 사부님이 쓰시는 기초 기술도 제가 쓰는 기초 기술과는 모양만 비슷하지 완전 다른 기술인데.. ..사부님과 해보면 언제 들어오는지 뻔히 알고 있는 아주 느리고 천천히 들어오는 기본 기술 하나를 못 막습니다. .....여하간 정진만이 있을 뿐이네요.


 여담. 근력이 센 것의 일반적인 문제는, 기술 부족을 힘으로 땜질하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는 거죠. 당장 써먹기는 편해지지만 기술이 딱히 좋아진 게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기술을 쓰는 상대나 더 큰 힘을 가진 상대를 만나면 대책이 없죠. 고급 기술을 배울 때도 고생하기 쉽고요. '이게 진짜로 강한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빨리 깨달을수록 좋습니다. 깨닫고 '힘이 있음에도 힘이 빠진 상태'가 되면 힘이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성취 저해 요소일 뿐이죠.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