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석이지만 50% 할인. 오늘 같이 간 멤버에 거기 회원 분이 있어서···


사실 경기필하모닉 바이올린 주자에 제가 아는 분이 있어서 어찌어찌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야 물론 만인이 아는 클래시컬한 남자. 이런 기회가 생기면 절대로 놓치지 않습지요. 어제 <예습 완료>라는 포스팅을 했는데 그게 바로 이 경기필하모닉 제 93회 정기연주회의 곡목이었습니다. 이참에 다시 한 번 설명해 보죠.

W. A. Mozart, Overture <Die Zauberflote>, K.620
    모짜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쾨헬.620
W. A. Mozart, Piano Concerto NO.9 in Eb minor, K.271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 9번 내림마단조 쾨헬.271
L. v. Beethoven, Symphony No.3 in Eb Major op.55 <Eroica>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내림마장조 op.55 <영웅>


말하자면 무리 없이 일반 청중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곡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 연주회가 끝난 후 화장실에 가다가,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죠: "오늘은 귀에 익숙한 곡이어서 졸리지 않았어" ㅡ불행히도 저는 무려 베토벤 3번을 들으면서 졸렸지만요··· 학교 끝나고 가서 듣자니 아무래도 몸이 피곤한지라. 오늘은 이번 학기 중에서 (아니 어쩌면 전 학년을 통틀어) 가장 빡센 히브리어 수업이 있는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거야 어쨌건, 사실 저는 오늘까지는 세종문화회관이 광화문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소시민이었습니다. 아뇨 뭐, 갈 일이 워낙 없었다보니··· 여하간 학교에서 후배 차를 좀 얻어 타서 서울까지 들어간 다음 버스를 타고 광화문까지 갔지요. 아, 갔다고는 합니다만 좀 정확히 말하면, 어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따라 대학 등록금 문제로 대학생들이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하고 있더군요. 도로가 차단되는 바람에 버스가 노선대로 못 가고 좀 이르게 내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데 거기가 어딘지 제가 알 턱이 있겠습니까. 직감에 따라 적당히 뛰어 보니 적당히 전철역이 나왔는데 그게 적당스럽게도 종각이어서 별 무리 없이 어쨌거나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잘 안 보이지만 밑에 1978년이라거나 대통령 박정희라거나 있습니다. 역사가 느껴지는군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뭐, 좋았습니다. 딱히 뭐 흠 잡을 만한 구석이 없었달까, 뭐 있었어도 나한테 보일 만한 흠은 아니라거나 뭐 그런 정도였겠죠. 청중들 중에 좀 어린 아해들이 있어서 (저한테는 뭐가 문제 있었는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지만) 중간에 직원이 주의를 주었다거나, 중간중간 서너 번 핸드폰 벨소리가 베토벤 교향곡 3번과 함께 장엄하게 울렸다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는 있었습니다만, 부천에서의 악몽 (궁금하신 분은 <말러 인 부천 - 부천필하모닉 제 110회 정기연주회>를 참조하세요)으로 내성이 생긴 저는 "훗, 뭐 이 정도야" 하고 가볍게 웃는 여유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인터미션은 모짜르트 피협 9번이 끝난 다음에 15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베토벤 3번이 워낙 길다보니 그랬지요. 인터미션이 지나고 베토벤 3번이 시작하기 전에 금난새 씨의 설명이 조금 있었는데, 유머러스한 감각이 있어서 웃음이 좀 터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우리 말 발음이 한국어를 한다기보다는 독일인이 한국어를 배워서 하는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어쨌거나 베토벤 3번의 요소에 대한 설명을 좀 하고, 그 요소의 연주를 미리 잠깐 보여서 설명을 하는 식으로 해 주니 흥미롭더군요. 비록 "원래는 그냥 안 하고 넘어가려고 해서 미리 맞추지 못해" 손발이 안 맞기도 하긴 했습니다만 말이죠. (금난새 씨의 표현을 그대로 빌렸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비슷한 뉘앙스입니다 (...))

연주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갑니다. 어차피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일단 저로서는 그저 감명 깊게 들었을 뿐이니까요.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현악기를 좋아하는 탓에, 이런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가 다 함께 어우러져서 '울림이 깊은 하나의 목소리' 같은 느낌이 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사실, 아마 이 느낌이 좋아서 제가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을 좋아하지 싶군요) 현악의 깊이가 잘 살아났기 때문에 저로서는 역시 만족스러웠습니다. 현악기를 다루는 주자들의 활 움직임이 다들 맞춘 듯이 동일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역시 이런 게 합주지' 싶어지죠.

끝난 후에는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휘익 하는 휘파람 소리도 들리고, "브라보" 도 서너 사람 정도는 외쳤던 듯 합니다. 앵콜은 없었는데, 금난새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베토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에로이카가 워낙 길어서 앵콜은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실 이 곡들이 다 끝나고 나니 거의 두 시간은 흘렀기 때문에, 앵콜을 막상 했어도 청중들이 이미 좀 지쳐서 그렇게 감명 깊게는 안 들었을 지도 모르죠. (제 앞쪽에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제 베토벤 3번이 끝난 후 열렬한 박수와 함께 무려 "브라보"를 외쳤는데, 그게 과연 곡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곡이 다 끝났다는 것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저는 조금 의혹을 갖고 있습니다)

여하간 즐거운 연주회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은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2008 교향악축제에 갈 예정입니다. 4월 20일에는 예술의전당에 무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님이 강림하십니다. R석 3만원. 이런 건 가 줘야 해요. (크흑)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