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그의 머릿속에는 목소리가 한 마리 살았다. 평상시에 목소리는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있었지만, 가끔은 침묵을 깨고 그에게 말을 거는 때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그 자신의 목소리와 같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그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그의 목소리가 아닌 또 다른 어떠한 목소리인지 구분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목소리가 그의 생각이 아닌 또다른 어떠한 존재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중요했다. 그가 그렇게 믿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다. 그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고, 그를 아는 다른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불러 주었으므로 그는 작가였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 조금이라도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는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만큼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갈수록 그가 써내는 글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매너리즘에 빠져 버렸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향상되길 바랬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그가 가진 것은 열정 뿐, 재능이 아니었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말을 시작했을 때에, 그것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개의치 않고 그가 기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문자 그대로 뛸듯이 기뻐했다. 목소리는 그에게 재능을 줄 수 있었다.



목소리는 그에게 재능을 주는 대신에, 그 또한 무언가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그 무언가의 영원한 상실을 의미했지만,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엇인가를 잃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나이 서른이 넘었고, 생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확실한 글을 하나 써 내야만 했다. 목소리는 그에게 확실한 성공을 약속했고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삼십대에 이르러 쓴 글은 크나큰 호평과 함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목소리의 제안은 그럴듯했다. 사실 단순히 글 한 편의 성공만이라면 그도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목소리가 그에게 약속한 것은 재능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 하나 정도는 희생해도 좋았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재능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신작의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의 글을 써낸 그는 그 글도 크게 성공시켰고, 행복한 연애 끝에 결혼도 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그에게 준 재능에는 끝이 있었다. 어느 수준까지는 이르를 수 있었으나 그 수준 이상으로 넘어서게는 하지 못했다. 그는 벽에 부딪히고 좌절했다. 재능의 상한선이 올라갔을 뿐,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음을 그는 깨달았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두 번째로 말을 시작했을 때에 그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재능을, 좀 더 확실한 재능을 원했다. 지금의 재능을 훨씬 뛰어넘는 그러한 재능을. 물론, 그 재능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조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목소리가 그에게 요구한 것에 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목소리가 요구한 것은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작은 대가였고, 그는 쾌히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재능을 얻었다.



십 년이 지나고, 그는 이제 대작가라 불릴 만한 위치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 작가라 불렀고, 그는 그 호칭에 만족했다. 비록 자신의 가진 것을 희생해서 얻은 천재성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그는 더더욱 그 호칭에 만족할 수 있었다. 언제나 천재들은 그 천재성 때문에 많은 것을 상실하지 않았던가? 역사상 뛰어난 천재들 중에 어느 하나도 순탄한 길을 보낸 사람은 없었다. 그러하므로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만족했다.

다만 그만한 재능을 얻어내기 위하여 그가 그동안 수많은 것들을 희생해 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미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수많은 것을 잃었으며, 감정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천재라는 그 사실 덕분이었다. 그렇다, 그는 천재였다.



세월은 흘렀고 그는 육십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하여 기본적으로는 만족스러워했지만, 이제 와서는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또다시 그가 지닌 재능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자신이 지닌 재능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자신이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한 열정은 항상 그를 괴롭혔다. 그는 글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실제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의 오십대 후반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한꺼번에 사고로 사망했었다.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또다시 말을 시작했을 때에, 그가 기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그것이 어떠한 존재인가에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따라서 목소리가 그에게 요구한 것에 그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는 천재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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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썼던 단편을 약간 (말 그대로 약간)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그냥 버리기는 왠지 아깝더군요. 뭔가 더 고쳐서 길게 써 볼까도 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맛이 있어서 이 정도로 해 봅니다.

Posted by Nei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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