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바탕화면의 기프트 폴더를 펼쳐 에피소드 1의 파일을 열었다. 플롯은 되어 있으니까 쓰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쓴다. 문장이 쉽게 펼쳐지지 않는다. 하드보일드답게 절제되면서도 간지나는 문장이 필요하다. 최소한 두세 문단 전에서 이미 쓴 단어나 문장은 재탕하면 안 된다. 쓰다 보면 상황 연출을 좀 더 뽀대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고민한다. 뭔가 뽑아올 만한 것 없을까 싶어서 챈들러나 맥도널드를 펼쳐 본다. 하지만 문체는 그렇다 쳐도 상황이나 사건은 어차피 내가 만드는 거다. 그래도 분위기는 다시 충전해 본다. 내가 써 낸 문장들을 다시 살펴본다. 대체적으로 마음에 들지만 부족하거나 오버했다 싶은 부분도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걸 고쳐 본다. 그런데 좀 더 위트 있게 써낼 수는 없을까? 항상 그게 문제다. 그냥 써낸다면 그것으로 좋지만 여기에는 센스가 요구된다. 양념을 넣어 조리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원재료의 생명력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이것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죽이는 일이나 진배없다. 그러니까 고민한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정말 영혼의 시 때는 속편하게 문장을 썼다는 생각을 한다. 하기야 그 때는 문장으로는 내용만 대강 전달하면 충분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일단 써내고 나면 확실히 이 쪽이 완성도도 높고 마음에 든다. 이제는 대충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자가 돈을 주고 구입하는 글을 써내려고 하는 이상 더욱 더 그렇다.

담당자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언제까지 끝나겠느냐고 묻는다. 나도 모른다. 한 문장 잡고 한두 시간 끙끙거리는 일이 있기도 하고 아주 신나게 키보드가 날아갈 듯이 타이핑을 해서 한 시간에 한 페이지 나오기도 한다. 더불어 내 스타일의 한 페이지는 원고지 8~9장 정도다. 기프트에서 이 정도 속도는 정말 경이적인 속도다. 보통은 한 시간에 한두 문단 쓰는 게 고작이다. 여하간 확답을 할 수가 없다. 적어도 금주 안에는 힘들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빨리 내놓으라고 압박하진 않지만 빨리 주었으면 하는 분위기는 느껴진다. 지인들도 어서 쓰라고 은근히 독촉질이다. 나도 키보드로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 하지만 무작정 빨리 쓴다고 빨리 써 지겠는가. 들여야 할 만큼 공을 들여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다. 요즘 나는 방망이 깎는 노인이다. 별로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은데도 계속 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느리긴 하다. 지난달 수정 보강 작업 시작해서 지금까지 새로 써낸 분량이 어느 만큼 되느냐고 물어보면 욕먹을까봐 말을 못하겠다.

그래서 오늘 오전 9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글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이 오후 8시 40분, 9시를 바라보려 하는 시각. 이 시간 동안 나는 무려 네 문단을 썼다. 원고지 3.5장 분량이다. 경이적인 속도다. 이렇게 써서 이걸로 완성된다면 좋겠지만 사실 보면 또 고칠 부분이 나온다. 고치는 수밖에 없다. 고생해서 써낸 만큼 써낸 걸 버리기 아깝지만 버릴 건 버려야 더 좋은 게 나온다. 요즘 내 글의 구 할은 한숨과 신음이다. 아 죽겠다. 이런 속도를 가지고 최소한 하루 네 장은 써 보겠다니 꿈이 야무졌다. 장수에는 개의치 말고 그냥 쓸 수 있는 대로 쓰자. 아무리 빨리 써 봤자 생명력 없음 말짱 꽝이니까.

요즘 이렇게 산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스트레스로 수면주기도 불규칙하다. 사람 살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