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성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제가 산 (=읽은) 존 딕슨 카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최고급이라 불리는 <황제의 코담배갑>과 <세 개의 관>을 읽고 난 후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트릭에 대해서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사실 그건 그리 틀린 일은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트릭은 어느 분 말마따나 별 거 없더군요.

스토리 라인을 일단 책 뒤의 소개에서 그대로 긁어 와 보죠.

라인강변의 로렐라이 바위 가까이에 있는 해골성을 사들인 희대의 마술사 메이르쟈는 환상적인 성으로 개축한다. 그러나 성의 주인은 변사체로 강물에 떠오르고, 뒤이어 배우 마일런 아리슨도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채 성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연이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려고 파리의 명탐정 방코랑과 베를린 경찰의 폰 아른하임이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마술세계의 불가능 범죄를 다룬 본격파 거장 카의 이색걸작.

..저 위에서는 '뒤이어' 배우 마일런 아리슨도, 라고 써 있습니다만 실은 이십 년은 지난 뒤의 일입니다. 고로 '연이은' 참사의 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저렇게 무성의하게 소개글을 써 놓으면 안 되는 겁니다. ←

여하간, 실제로는 마일런 아리슨이 총에 맞고 불에 타 떨어져 죽었고, 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탐정이 가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이 스토리에서 메이르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계속 터져나오고, 그것이 사건의 진상과 연관이 되기는 합니다. '두 참사의 진상'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뭐 트릭 자체는 별 거 없습니다. 그저, 이 뭔가 음습하면서도 괴기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소설입니다. 자체로 꽤 재미있긴 합니다만 트릭에 있어서는 역시 전에 읽었던 두 작품에 비교되어 좀 밋밋한 느낌도 없진 않군요.

그건 그렇고, 이 카라는 작가를 제가 맘에 들어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세 작품 모두 마지막에 밝혀지는 합리적인 트릭도 트릭이지만, '악당과 그에 고통받았던 착한 사람'에 있어서 결국 악당이 벌을 받았고 착한 사람들은 행복한 미래를 가지게 되는, 그런 류의 스토리였거든요. 물론 이 '착한 사람'이 살인자였을 경우, 과연 사람을 죽인 것이 그렇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냐 하는 것에는 토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코X이나 김X일처럼 다 모아놓고 '네놈이 범인이다!' 라고 몰아붙여놓고 그 사람이 자살하려 들면 '그래도 죽지마, 죽으면 안 돼'하며 눈물 흘리는 전개보다는 낫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탐정이 진상을 알고 있어도 나중에 그 사람과만 조용히 대화할 뿐 만방에 공표하지는 않더군요. (살인이 죄인 건 틀림없기 때문에 '악당은 죽어도 돼!'라는 느낌을 갖게 될까 저어스러운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다만 뭐랄까 번역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왠지 삼류 로맨스 분위기를 언뜻 연상하게 하는 문장은 에러가 좀 있군요. 원작도 이런지는 여하간 원작을 읽을 능력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지만, 왠지 세련됨이 부족한 느낌이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나마라도 읽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긴 합니다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