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건 아닙니다만, 그저 하드에 처박혀 있던 사진을 보고 새삼스레 감회에 젖어서.



우선 알라딘 286입니다.


컴퓨터 가격이 백만원에서 이백만원이 기본이던 시절입니다


AT (80286) 컴퓨터가 80만원대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만, 실은 89만원인 SPC4200P-CW200 모델은 하드 디스크가 없습니다. 플로피 디스크만을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 모델이었으니 XT (8086/8088) 와 그리 다를 것도 없죠. (참고, 8088은 8086보다 후에 나왔지만 구조를 간략화시키고 양산화시킨 거라 8086보다 좀 느립니다. 어차피 둘 다 XT인데 뭐 신경쓰냐 싶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단위수가 한 자리 MHz짜리 CPU라면 1, 2 MHz차이도 상당한 거죠) 물론 AT의 처리 속도는 XT와 차원이 다릅니다만. (무려 12MHz나 됩니다. 요즘이야 기가급 CPU가 넘쳐나지만 당시에 저 정도면 빠른 거였습니다)

하드는 CW102가 20메가, CW104가 40메가를 달고 있군요. 물론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이 적은 용량이지만, (기가도 아니고 메가입니다) 당시엔 프로그램 용량도 그만큼 작았습니다.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는 실행파일 크기가 120KB에 불과하고 데이터 용량도 500KB밖에 되지 않았죠. 5.25인치 플로피 두 장에 들어갔습니다.

(아, 물론 5.25 플로피는 후반엔 1.2MB짜리도 나왔습니다만 페르시아의 왕자 나왔을 당시엔 360KB가 대세였습니다. 그래서 두 장. ..혹시 5.25 플로피를 모르시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요즘이야 3.5인치 플로피디스크도 찾기 힘들 정도니까, 5.25는 저 사진 보시면 3.5인치 플로피 들어가는 드라이브 위에 달린 드라이브가 5.25 플로피 들어가는 겁니다. 3.5인치처럼 플라스틱 케이스로 보호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안의 디스크가 그냥 노출됐죠. 케이스도 부들거려서 디스크가 펄럭펄럭거리기도 했고. 플로피 (floppy)라는 이름도 원래 그래서 붙은 겁니다. 3.5인치만 아신다면 왜 플로피 디스크인가 의문을 가질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드라이브 안에 들어가면 안에서 걸려서 보호되는 게 아니라 디스크가 돌아가는 중에도 그냥 쑥 뽑을 수 있었죠. 저 사진에서 5.2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 입구를 90도로 막고 있는 저 보호 막대가 그래서 있었던 겁니다. 물론 수동으로 움직여 주는 거였죠. 디스크 집어넣은 게 쑥 뽑히지 말라고.

당시엔 디스크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그만큼 가능한 한 프로그램이나 데이터의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었는데, 압축 프로그램도 그 당시에 막 열심히 개발들이 되고 있었습니다. 1KB도 아쉬운 시절이었으니까요. 초반에는 pkzip (& pkunzip. pkzip은 압축만 했고 pkupzip은 압축을 풀기만 했습니다. 두 개가 한 세트였죠) 와 arj, lha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만 나중에 rar이 나오고, (rar은 도스에서는 보기 드문, 나름대로 gui 인터페이스도 갖추고 있어서 꽤 인기가 좋았죠) 결국 zip와 rar 양대산맥으로 가다가 그게 요즘까지 오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하드만 작았던 게 아니라 메모리도 1메가를 가지고 있었고, (그나마도 실사용량은 640KB 이하였죠) 그 안에서 돌아가는 만큼 실행 파일의 크기도 작았죠. 조금만 프로그램이 커져도 메모리 제한이 압박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프로그램 부피를 줄이고 줄여서 만들었던 시절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 640kb라는 건 8비트 CPU 컴퓨터의 64kb 때보다 10배나 늘어난 겁니다만,

(XT, 8086부터는 16비트 CPU입니다. 여기서 *비트 CPU라 함은, CPU가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량이 그만큼이 된다는 겁니다. 80386부터 현재까지는 32비트 CPU에 Windows XP도 32비트 OS이며, 최근에야 들어서 64비트 체제로 이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머리 아픈 기술적인 사항이고 저도 잘 아는 건 아니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덧붙여 비트 (bit)는 이진수 (binary digit)의 약자이며, (0과 1로만 구분되는 수를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십진법에 의거해 십진수를 사용하고 있죠. 그러나 컴퓨터는 이진수를 쓸 수밖에 없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컴퓨터는 전류가 흐르거나 안 흐르거나 (1/0)로밖에 상태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은근히 찾기 힘들지만 예전에 컴퓨터 전원 스위치는 ON/OFF가 아니라 1/0으로 표시하는 일이 많았죠) 어떤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최소 단위입니다. 이게 여덟 자리 모인 걸 바이트 (byte)라고 하며, 컴퓨터에서의 정보 기본 단위이고 2의 8승이므로 256 단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이트는 말하자면 십육진수가 됩니다. 게임 데이터 에디트해 보신 분들은 3A니 FF니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 단위 하나가 바이트인 거죠. 약간 첨언하면 1바이트는 0~255의 수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1부터 올리면 256입니다만) 게임에서 스테이터스를 올릴 때 최고치가 255인 게 많은 겁니다. 1바이트를 사용한 거죠. 다만 만 단위가 넘어가는 스테이터스의 경우엔 2바이트를 사용하므로 256 x 256, 65536의 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0부터 표현하려면 최고치는 65535가 되는 거고, 이 때문에 게이머 여러분들이라면 255 못지 않게 65535도 익숙하실 겁니다. 여기서 더 올라가 4바이트까지 올라가면 .. ..뭐 그만하죠. 그 쯤 되면 한계치를 느낄 일도 없습니다 어차피)

..괄호가 굉장히 길었습니다. 쓰면서 문득 느낀 건 이거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쓸 게 아니라 정리해서 제대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만, 귀찮으니까 (...) 그냥 적당히 쓸랍니다. 별로 그렇게 거창하게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니 여러분도 적당히 읽어주세요. (...)

괄호를 붙이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640kb 메모리 이야기였군요, 1메가는 1024 킬로바이트이므로 384Kb가 남는데요, 사실 당시의 OS인 도스 때는 주메모리가 640kb라는 것만 해도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8비트 컴퓨터 시절엔 64Kb밖에 되지 않았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생각했고 남는 384kb는 여분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뭐 이것도 쓰는 방법이 있긴 했는데, 여하간 거의 따로 노는 메모리였죠. 각설하고 도스에서 기본은 640kb였고, 원칙적으로는 거기에 메모리를 몇 메가를 추가하든 (..당시엔 몇 메가였죠, 기준이) 도스는 전혀 인식을 못했기에 그걸 추가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EMS (Expanded Memory Specification), 즉 확장 메모리였습니다. EMM386.EXE를 도스 유저들은 다들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해서 EMS로 도스에서도 32메가까지의 램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 램이 640kb라는 건 여전해서, 데이터는 그렇다 치더라도 프로그램은 이 안에서 돌아가야만 했죠. 그래서 가능한 한 주메모리 영역을 많이 남기기 위해 도스 유저들은 config.sys (도스에서 기본 세팅에 필요한 데이터 파일입니다. 윈도로 치자면 레지스트리 쯤 되겠네요) 를 부단히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도스는 메모리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라나? 요즘은 그래도 참 많이 편해졌죠.

여하간 저 때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바이러스도 지금처럼 얍삽하게 웜이 아니라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니 예루살렘 바이러스니, 바이러스에도 낭만이 있었죠.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미켈란젤로 생일날인 3월 6일에 컴퓨터 데이터를 아작내는 바이러스였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저거 걸렸어도 3월 6일만 피하면 아작은 안 납니다 (...)) ..뭐 그게 낭만이었다고 하긴 뭐할지도 모르겠지만, 컴퓨터 하드 크기도 작았고 데이터도 작아서 AUTOEXEC.BAT에 (컴퓨터 시작할 때 항상 띄워 줘야 하는 프로그램, 이를테면 마우스 인식 프로그램이라거나 여러 가지 램상주 프로그램을 DOS 부팅 시에 자동으로 실행시키게 하는 배치파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작프로그램 쯤 되겠군요) V3 c: 를 시작해놓아도 별 부담이 없는 그런 시절이었단 거죠.

..설명 좀 덧붙여야 할까요. 램상주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램에 항상 띄워놓고 있는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지금이야 멀티태스킹이 보편화된 시대니 감이 안 올 지도 모르겠지만, DOS는 원칙적으로 단 하나의 프로그램만을 실행시킬 수 있습니다. 음악 들으면서 글 쓰고, 그러면서 채팅하는 건 꿈같은 소리였다는 거죠. 그래도 필요가 공급을 부르는 법, 실행시키면 다시 커맨드 프롬프트 (..정도는 아시겠죠, 설마)로 돌아오지만 메모리에는 남아 있으면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뭐 그런 프로그램을 램상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배치파일은 BAT 확장자 파일인데, 이 확장자를 가진 걸 실행하면 그 파일 내에 적어 놓은 일련의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도스를 썼던 사람에게는 필수아이템이었고 상식이었으니 더 설명할 필요 없겠고, 도스를 안 쓰셨던 분께는 도스의 시스템 그 자체부터 이해시켜드려야 할 테니 그냥 스킵하겠습니다. ..왠지 언젠가 날 잡아 도스 때 썼던 그 추억의 프로그램들을 말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만. MDirIII라거나 노턴 유틸리티라거나 PCTools라거나.. 각설하고.



이게 다 그 시절의 컴퓨터인 겁니다.. 원래 한 장입니다만 보기 편하게 반으로 잘랐습니다


가격이 좀 압박입니다만, 저건 말 그대로 최신형 컴퓨터였으니까요. 여하간 486 시절까진 DOS였고 586, 즉 펜티엄이 나올 때쯤 해서 윈도 95 나오더니 (물론 윈도우의 역사도 좀 있습니다만, 3.1까지는 결국 도스에 덧씌워 사용하는 도스 쉘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죠. 단독 OS로 쓰인 건 95때였고, 그게 나올 때만 해도 IBM의 OS/2 Warp라는 꽤 쓸만한 OS 경쟁자도 있었기 때문에 95의 승리를 그리 점칠 수는 없었는데.. ..뭐 넘어가죠. OS/2 Warp 아실 분이 여기 계실 리도 없을 거 같고. 리눅스보다 더 매니악하니)

여하간 저런 컴퓨터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286에 덧붙여 추억을 말하며 다 이야기했기 때문에 딱히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실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거 다 이야기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80586부터 Intel은 Pentium이라는 호칭을 부각시키기 시작했고, (뭐 이건 AMD와의 경쟁이었던가에서, 그냥 486이니 586이니 하면 AMD 쓰나 인텔 쓰나 그게 그거 같으니까 브랜드명을 강화시키려는 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이후 펜티엄은 2를 거치고 3를 거치고 4를 거치고 듀얼코어까지 와 있죠. 콘로도 나왔던가. 아무튼. 예전 기준대로 계속 왔다면 펜티엄 4는 886에, D는 986정도 되겠군요. 4에서 프레스캇은 886SX, 시더밀은 886DX, 펜티엄 D에서 스미스필드는 986SX이고 프레슬러는 986DX? (낄낄) 아, SX와 DX의 차이는.. 386때 나왔던 건데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대충 느낌 정도로만 알고 있던 거라 설명은 못하겠네요. 그냥, 같은 386, 486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어도 뒤에 SX가 붙으면 좀 저가형, DX가 붙었으면 좀 고급형, 그 정도로 이해했죠. 여러분도 그 정도로만 이해하셔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어쩌다가 이 포스트가 무슨 컴퓨터 강좌가 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면, 키보드에 대한 겁니다만..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저 사진에 나온 컴퓨터의 키보드들은 상하배열이 요즘 키보드들처럼 판판하지 않고 가운데가 좀 파여있으며 위나 아래로 올라갈수록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건 좀 더 손에 붙는다는 이야기죠. 말하자면.. 스텝 스컬쳐 1로 보이는군요.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같아요. (스텝 스컬쳐 1은 키 스위치가 배열된 기판 자체를 구부려서 자연스러운 곡면을 만드는 걸 말합니다. 가장 확실하고 이상적인 곡면을 만들 수 있지만 설계, 제작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그 때문에 이 방식을 채택한 키보드는 극소수에 그친다.. 고 예전 포스트 체리 G80-3000 블랙 넌클릭 키보드 에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전 컴퓨터들.. ..저 가격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히 고급이었죠. 그 때는 키보드 같은 것도 꽤나 고급스러웠단 이야깁니다. 마무리도 잘 되었을 거고요. (보통 소홀하기 쉬운 키보드에도 저런 정성을 넣었다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요즘은 확실히 컴퓨터 성능도 좋아졌고 가격도 부담없어졌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컴퓨터가 저 예전의 컴퓨터를 비웃을 자격은 없을 겁니다. 성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걸 가능한 한에서 최적화하려던 노력, 그리고 지금 보면 쓸데없이 가격이 비싸다, 고 평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튼튼하게 잘 된 마무리, 이런 건 요즘 컴퓨터에선 보기 힘들달까요. 전 초1인가 초2때 산 AT를 중3때까지 썼습니다. 그 때까지 아무런 이상 없이 잘 버텨 주었지요. 바꾸지도 못하게스리 고장 하나 안 나는 망할 컴퓨터라고 그 때는 생각했고 그저 신형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만, 요새 저는 그 땐 참 낭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고 지금 컴 버리고 AT를 쓸 생각은 절대로 없긴 합니다만.

뭐 그런 겁니다. 인터넷 돌아다니시다 저런 사진, 옛날 컴, 저 비싼 가격에 저 구린 성능을 보셔도, 그냥 비웃지 마시고 그 때의 낭만을 한 번쯤 생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낭만이지 그 때는 참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뿐이었지만요. 낄낄.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