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심판한다
미키 스필레인 지음, 박선주 옮김/황금가지

 이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작품입니다. 터프가이 사립탐정 마이크 해머의 거칠 것 없는 행동과, (40년대말과 50년대 당시로선) 충격적인 폭력과 섹스 묘사가 시원시원한 소설이죠. 지금 보면 그렇게 놀라운 건 없었습니다만, 기본적인 문체가 보장되고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플롯에, 미인 비서에, 팜므파탈에, 제일 막장에 가서 모든 게 해결되고 반전과 동시에 마이크 해머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 전개는 확실히 읽기가 좋습니다. 읽다 보니 이 소설이 왜 페이퍼백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알겠더군요.

 하드보일드 기법도 하드보일드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마이크 해머의 터프한 말빨과 행동입니다. '내가 심판한다'는 제목에서도 느껴지시겠지만, 법이니 뭐니에 구애받지 않고 악당은 내가 심판해 버립니다. 시작하자마자 사람이 죽는데 그 사람이 마이크 해머를 살리려다 한 팔까지 잃기까지 한 친구였고 그래서 해머는 복수를 다짐합니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과 자신의 복수가 합쳐진 셈이라 범인을 찾아야 하는 동기가 아주 명확한데다가, 그 범인을 찾기 위해 해머가 하는 일들이 너무 터프해서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용의자를 찾아다니며 겁을 주고, 엎어버리기 전에 아는 걸 말하라고 증인을 윽박지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아도 자기에게 덤비는 놈을 아작내 버립니다. 실로 쾌도난마, 어떤 의미에서는 스티븐 시걸의 영화를 볼 때처럼, 부담 없이 속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범인의 '목'을 꺾지는 않지만.

 아,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소설 초반에서, 용의자인 칼레키를 '누군가'가 총을 쏘아 살해하려다 실패합니다. 그 전에 해머가 겁을 주고 간 것도 있어서 칼레키는 해머가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해머의 경찰 친구인 팻은 해머가 그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고 그 사실을 해머에게 말해 줍니다. 그리고 그에 관해 해머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팻이 확신하는 진짜 이유는 범인이 칼레키를 죽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라면 실패 따윈 없다" ..중요한 건, 이 남자는 정말로 실패 따윈 없습니다. (...)

 여하간 유쾌한 작자입니다, 마이크 해머라는 이 인간도. 거칠고 강하고 무자비할 정도이지만, 은근히 순진한 면도 있기도 하고. 말하자면 이 남자에게는 자신의 도덕과 선이 있고, 그것만큼은 충실하게 지켜갑니다. 범인을 자신이 심판해 버리는 것도, 정황상 증거는 있되 확고한 물적 증거가 없다면 법정에서 판사와 배심원들에게서 유죄선고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자신이 끝장내 버리고 그 다음에 처리하는 겁니다. 뭐 현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간다면 위험한 측면이 많겠지만 어쨌든 여기에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저것 구애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원시원하죠. 이런 게 이 작품의 매력이지 싶습니다.
Posted by Neissy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조니 뎁,올랜도 블룸,키이라 나이틀리 / 고어 버빈스키

무슨 영화나 마찬가지입니다만 3쯤이나 오면 저는 스토리의 탄탄함 같은 건 그다지 기대하지 않습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는 조금 예외였습니다만, 물론 그건 원작이 소설로 이미 완성된 거였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남들이 혹평하던 스파이더맨 3도 충분히 재미있게 보았고, 캐리비안의 해적 3도 아주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도 있을 테니 스포일러는 최대한 줄이도록 하죠.

자고로 이런 영화를 즐기는 법은 오로지 한 가집니다.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캐릭터와 액션을 즐겨라!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 부분만큼은 절대로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애당초 캐리비안의 해적이란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죠니 뎁 열연의 캡틴 잭 스팰로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1을 볼 당시, (그때 저는 혼자 보았습니다만. 딱히 정보도 뭣도 없었는데 왠지 보고 싶었던 건 역시 죠니 뎁의 힘이었을지도) "저, 저 인간, 리듬을 타고 있어!"라고 외치게 만들던 그 살아 있는 캐릭터는 이번에도 여전합니다. 능글맞고, 흔들거리고, 심지어 그걸로도 부족해 스미스 요원처럼 여러 명이 나옵니다. 이건 유쾌하지 않을 수가 없죠.

올랜도 블룸의 윌 터너는 스탠더드하게 할 일은 다 하고, (사실 이 사람은 좀 캐릭터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캡틴 잭 스팰로우와 비교되면 승산이 없슴다.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제일 마지막 부분의 커스츔 변경은 꽤 괜찮았습니다) 2편에서 숏컷으로 등장해 숏컷 모에인 Neissy를 하악거리게 만들었던 키이라 나이틀리의 엘리자베스 스완은 3편에서는 싸우는 아가씨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해적왕이라는 부분에서 원피스가 생각나서 순간 풉. (나름 스포일러니 괜찮은 분만 긁어보세요) 제프리 러쉬의 캡틴 바르보사도 3에서는 아주 비중이 높은 역입니다. 극단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다른 캐릭터들을 중간에서 잘 잡아 주는 느낌이죠. 윤발이 형의 샤오펭은 생각보단 비중이 낮았습니다만 존재감은 충분했습니다. 연기야 물론 좋았고요. 더불어 문어선장 데비 존스의 팬에게 기쁜 소식 하나. 여기에서는 그의 맨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라고 해도 저야 뭐 아무래도 좋았습니다만)

배신하고 배신하고 배신이 연속되면서도 용케 살 놈들은 삽니다. 정신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주인공들은 여유가 있고, 확실히 주인공이 아니었으면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겁니다. 여하간 난장판, 난장판, 그리고 또 난장판. 유머가 있고 그런 주제에 은근히 잔인합니다. 뭐 어쨌거나, 마지막 소용돌이에서 블랙 펄 호와 플라잉 더치맨 호의 대결은 실로 절품이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 실로 어울리는 장면이었죠. 2편에서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이만큼 마무리로 어울리는 것도 없습니다. (딱히 그것으로 바로 엔딩이 되는 건 아니지만)

여하간 즐거운 해적영화였습니다. 영화 중간에서 엘리자베스가 해적정신을 부르짖는 부분에서는 '그런 거 있었나' 했지만 뭐 로망이 있는 영화니까 그렇다 치고 (...), 2시간 4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이 꽤 금방 지나갔습니다. 꽤 길다 싶었긴 했습니다만 영화 끝나고 시간 보고 식겁했습지요. 아, 마지막으로 여담: 스탭롤이 다 지나간 다음에 추가영상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기다렸는데, 저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괜히 돈을 많이 들인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이 엔간히 많아 스탭롤이 끝이 안 났지요. 한 7분쯤 지났나 'Special Thanks to'가 올라오자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 사이에서 무려 박수 (...)가 흘러나왔다는 전설이. (낄낄) 추가영상은 딱히 그리 길진 않지만 1때처럼 아주 짧지도 않은데다 이걸 봐야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있으니 보시길 권합니다.
Posted by Neissy
라이온 킹
롭 민코프 외 감독, 매튜 브로데릭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1990년대 디즈니의 전성기에 있어 그 최고를 보여 준 작품입니다. 1994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지금 보아도 전혀 꿇리지 않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겠습니다만, 프레임을 아끼지 않는 부드러운 움직임과, 부드러우면서도 보기 좋은 색채, 애니메이션의 장면 하나하나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구도와 연출, 작품성 높은 음악, 그리고 그 음악과 어우러져 나오는 캐릭터들의 뮤지컬 등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라이온 킹은 그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입니다. 그때까지의 디즈니의 모든 노하우가 승화된 애니메이션이랄까요? 요즘 10대 이하라면 모를까 이 애니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보았다는 전제로 쓸 작정이라 다소 스포일러가 포함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심각한 건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안 본 사람도 없지는 않겠죠)

"나~즈벵야~"를 연호(...)하며 시작되는 명곡 'Circle of Life'과 함께 하며 라이온 킹의 오프닝이 펼쳐집니다. 삶의 순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노래는 다른 것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수작입니다. 다만 이 경우 자연의 순환이란 결국 약육강식이며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세계- 그리고 사자왕이란 것도 결국 백성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냐, 라는 지적도 있긴 했습니다만, 저로서는 이 애니메이션을 그 쪽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애니나 영화든지간에 자신의 시각에 맞춰 보려면 얼마든지 그 시각에 맞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뭐든지 그냥 즐기기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애당초 저런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걸 여기서 말하는 이유도 '그런 쪽으로 볼 수도 있으니 여러분도 참고는 해 두세요'라는 의미니까요.

여하간 그 이야기는 좀 미뤄두고, 오프닝입니다. 다른 것 다 미루어 두고, 이 오프닝만으로도 '왜 라이온 킹인가?'라는 의문은 풀어집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오프닝을 캡춰한 것을 보면서 간단하게 말해 보도록 하죠.


왕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물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인데, 라이온 킹의 오프닝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동물들이 교차하여 나가는 부분을 연출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장면에서는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지만, 눈 덮인 산맥이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안개 깔린 대지를 이동해 나가는 코끼리와 그 위를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이후로 펼쳐질 예술적인 정경을 예고한다고 할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광경을 아주 좋아합니다


눈치채시겠지만 이 장면은 크게 세 면의 레이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아래의 대지와, 중간의 새 떼, 그리고 가장 위를 날아가는 새 떼. 장면 자체로도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동시에 공간감을 멋지게 펼쳐 주죠. 이게 애니메이션이라 멋진 건, 이런 장면들이 한 화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는 겁니다. 게다가 일본 애니가 프레임을 가능한 한 줄여서 움직임이 조금 팍팍 움직이는 데 반해 이 애니는 프레임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이 정말 더없이 유려합니다.



물의 질감이 느껴지십니까?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얼룩말들과 그 때문에 첨벙거리는 물들의 모습이 세심하게 표현된 장면입니다. 투명하고 찰랑이는 물의 질감과, 달려 나가는 얼룩말들의 움직임을 이 이상 없을 만큼 멋지게 연출해 놨지요. 거기에 황혼이라, 어딘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이 입체적인 감각이 중요합니다


저 멀리 바위 위로 사자왕 무파사가 서 있고, 짐승들이 그리로 나아가고, 이제 그 짐승들 위를 날아 무파사에게로 앵무새 자주가 날아들지요. '새'의 움직임과 장점을 살려, 공간 감각이 더 없을 만치 멋지게 살아납니다.



저 원숭이 라피키는 일종의 샤먼 같은 존재입니다


동물들이지만 정말 인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표정 연출을 통해 라이온 킹의 모든 장면에서 동물들의 희노애락 표현을 멋지게 해냅니다. 동물들에게만 가능한, 가장 그 동물 다운 움직임에 더해져 의인화에 이 이상 없을 만한 표정 연출. 이러니 라이온 킹이 멋지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광빨이 살아 줘야.. (...)


라피키는 새로 태어난 왕자 심바를 쳐들어 모든 동물에게 보여 주고, 동물들은 기뻐하며 절하며, 햇빛이 그 위로 드리웁니다. 여태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에서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이런 장면도 단순히 평면적인 게 아니라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입체적으로 이 장면을 보여줍니다. (카메라를 돌린다는 게 이만큼 어울리는 애니메이션도 없습니다)



라이온 킹, 시작입니다


이후로도 멋진 장면들로 가득합니다만 그런 걸 다 말하고 있기도 뭣하고, 이후로는 여러분이 직접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이 멋진 영상미와 그에 부족함없는 멋지고 웅장한 (또한 때로는 유쾌하며 소박한) 음악,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펼쳐 나가는 이야기들은 직접 보기 전에는 설명이 안 되죠. 더불어 저 위의 'Circle of Life'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해 보자면, 이 라이온 킹의 주제가 단순한 권선징악이나 약육강식만이 아니라는 걸 가사를 찬찬히 살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눈부신 태양을 처음 보던 그 날부터
난 누구보다 더욱 많은 걸 보았었지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해졌다네
변함 없이 해는 중천에 떠오르고
크고 작은 세상일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네
이것이 자연의 섭리
우리 모두의 일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깨닫고
이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
이것이 자연의 섭리
이것이 자연의 섭리
우리 모두의 운명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깨닫고
이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

물론 이 리뷰의 처음에서 말했듯이 '그래도 결국 초식동물을 먹는 건 육식동물이고, 저 왕이란 게 사자고 백성들을 먹는 존재 아니냐' 라는 의견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제목이 삶의 순환- 자연의 섭리라는 걸 감안하고, 애니 중에 이런 대사가 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아버지인 무파사와 아들인 심바와의 대화를 잠깐 보죠.

무파사: 왕에겐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심바: 더 중요한 것?
무파사: 세상 모든 것은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왕은 이 균형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해. 조그만 개미부터 커다란 들소까지···.
심바: 하지만 우린 들소를 먹고 살잖아요.
무파사: 하지만 우린 죽어서 풀이 되고 들소는 그 풀을 먹지. 결국 우린 모두 자연의 섭리 속에 사는 거야.

여기에서 맛볼 수 있는 철학은 '모든 것은 결국 돌고 돈다'는 것이죠. 사실 기독교적으로 파고들면 저 이야기도 따지고 들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순환을 논할 때의 'Circle of Life'. 이 서클이라는 걸 또 순환의 고리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단순히 육식동물은 죽어서 풀이 되고 그 풀을 초식동물이 먹으며 또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는다.. 고 해석하지 않고 이걸 윤회사상의 기본이 된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심바의 머리에 표를 하는 원숭이 라피키가 샤먼인 것과, 가부좌를 틀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다는 것도 이 해석에 보탬이 되는 장면이죠. 거기에 심바 안에 무파사가 있다는 걸 윤회사상에 기반한 해석으로까지 나가게 되면, 이 애니메이션을 단순한 동물 애니나 혹은 자연의 순환으로 보는 게 아니라 힌두이즘에서 근원한 윤회 애니로까지 볼 수도 있는 겁니다. (...)

저 해석이 틀렸다고만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신의 시각에 맞춰 보면 얼마든지 그 시각에 맞춘 결과가 나옵니다. 같은 영화를 백 명이 보면 백 명의 해석이 나옵니다. 뭐, 저 개인적으로는 라이온 킹의 여러 부분들에 거리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힌두이즘 애니나 제국주의 애니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상이 나름대로 돌고 도는 것도 사실이고 (...), 심바 안에 무파사가 있다는 걸 꼭 윤회로 해석하지 않아도 좋지 않느냐는 입장입니다. 기독교적으로 볼 때는 위험함이 다소 있지만 그건 다른 뭘 봐도 마찬가지다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시각을 알아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알 수도 있고, 누구의 말이든 거기에는 옳은 말도 있기 때문이죠. 어떤 누구의 주장이든, 그것이 설령 편견에 근거했거나 나로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각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100% 틀리기만 한 말은 없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1% 정도는 맞는 말도 있는 법이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받아들이든 그것은 각자의 나름입니다.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느끼는 만큼 자신에게 도움이 되겠죠.

해서 라이온 킹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졌습니다만, 일단 말해 두고 싶습니다. '저런 거 다 접어두고도 엄청 멋진 애니메이션이니 꼭 보세요' 그리고, 주제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머리로 직접 생각하시길 권합니다. 저 나름대로 이런저런 썰을 풀긴 했지만 꼭 이것만이 정답이다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감상은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뭐, 어쨌거나, 저는 이 라이온 킹이 디즈니 사상 공전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Neissy
어떤 부분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호소해서 다른 사람을 누르려고 하는 게 사람의 심성입니다. 말빨이 좋은 사람은 말로 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으로 하고, 힘이 강한 사람은 힘으로 합니다. (앞으로 계속 시대가 변하면 어찌 될 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의 사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억눌러 왔던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육체적인 힘이 강하기 때문이죠. 요즘 시대에서 육체만으로 상대를 누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특정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게 현실입니다만, 그래도 '여차할 때'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강합니다. 골격도 단단하고 피부도 좀 더 탄력적이며, 근육 자체의 효율도 여자보다 뛰어납니다. 같은 노력을 들였다고 가정할 때 여자는 절대 육체적으로는 남자를 못 따라잡습니다. 애당초 여자는 싸우기 좋은 몸이 아닙니다. 힘으로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애당초 재질의 문제입니다. 정신력을 논하기 이전에 원래부터 남자의 몸은 여자의 몸보다 훨씬 터프합니다. 여자들은 좀 세심하고요. 뭐,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만, 위에서 말했듯이 강자가 약자를 보듬기보다는, 그 힘을 가지고 약자를 억누르는 쪽으로들 간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어떤 곳에서든 힘이나 폭력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거든요. 그리고 남자들은 힘이 강하죠.

그리고 그 강한 힘과 강한 힘으로 쌓아 온 여태까지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약자를 괴롭힌다. -말할 것도 없이 썩을 일이죠. 저는 인간이 서로 다른 건 그 다른 부분을 가지고 그걸 못 가진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남자에게는 남자의 강점이 있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강점이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상대를 억누르거나 괴롭히는 데 쓰는 건, 남녀가 어쩌고를 논하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그릇된 겁니다.

그래서 이건 좀 여담이지만, 남녀 차이 이전에, 기본이 된 인간이라면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안 합니다. 근성이 썩었으니까 상대가 싫어하건 어쨌건 자기만 좋으면 되는 거죠. 배려가 없는 거고, 철이 안 든 겁니다. 초딩들은 매 좀 맞아야 해요. 사실 슬픈 건 저 이오공감의 푸념이나 한탄이나 불평을 보고 '아 내 행동이 여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라면 이미 행동을 올바르게 하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개념이 있는 사람이나 찔리는 걸 보고 행동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지, 개념 없는 사람은 아예 뭐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남의 말 안 듣고 자기 의견만 옳다구나 밀어붙이는 게 이런 초딩님들이십니다. (초딩초딩해서 혹시 모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저는 어린이들이나 초등학생들을 좋아하는 편임을 밝혀둡니다←)

어쨌거나 저는 남자이니만큼 여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남자들끼리도 이해하기 힘든데 뭘 여자까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아, 물론 이거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그 사람이 뭔가 자신이 힘들다고 털어놓을 때는 그 사람이 힘든 걸 옆에서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지, 해결책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걸요. 사실 저는, 언제나 해결책은 그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다 보면 그 사람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되더군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군대 가라 애 낳아라 이런 소리 하지 말고,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그저 서로를 좀 더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요. 서로서로 힘든 것을 덜어 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 하나 바뀌어서 뭐가 되겠느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사회란 것도 결국은 사람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요. 인간으로서 인간을 좀 더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초딩 좋아합니다. 귀엽잖아요 (...)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