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학생이라고 가정하자. 뉴스에 동급생을 왕따시키고 폭력을 휘두르고 결국 동급생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기사가 났다고 하자. 뉴스를 본 어른이 한 마디 한다. "요즘 애들 정말 문제야." 물론 애들이 문제인 건 어른들이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일단 접어두고 저 말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저 사례를 가지고 <요즘 애들> 전부를 판단한다면 당신은 수긍할 수 있겠는가?

혹은 당신이 여고생이라고 가정하자.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요즘 애들 원조교제 잘 한다며? 나하고도 한 번 놀아 보지?"라고 말하면 당신은 "네 요즘 애들 다 그래요"라고 수긍해주겠는가?

또는 당신이 화성 시민이라고 가정하자. (덧붙여 Neissy는 화성시민. 수원에 가깝기 때문에 그냥 수원 산다고는 말하지만) 뉴스에 화성에서 실종사건이 났고 살인사건이 났다고 하자. 뉴스를 본 누군가가 "화성에 사는 놈들 정말 문제 많아"라고 말하면 당신은 수긍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있으면 우선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게 옳다. 설령 그 문제의 발생이 <사회>라고 쳐도, 그건 사회를 무턱대고 싸잡아 욕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회>를 욕하면 자신은 그 사회와 동떨어지고, 그 사회보다는 좀 더 위에 선 것이 되는가? 어떤 사건이 생기면, 사건이 생기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 사건을 핑계 삼아 자신의 평소 감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렇잖아도 욕할 거리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는 듯이. 물론, 할 말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를 싸잡지는 말자. 기억하자, 자신이 싫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싫다는 것을. "보기 싫은 건 보기 싫은 거야, 나는 어쨌든 비판하겠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비판하는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무엇보다 이건 나 자신에게 먼저 해당되는 말이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모습이 있었을 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판하거나 한두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아울렀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가 반성하자. 나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Posted by Neissy
린다 린다 린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카시이 유 외 출연 / 태원

뭐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그 영화, 인제야 봤습니다. 전체적인 감상평은 걸작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일단 잔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군요. 여하간, 마지막의 공연 부분이 정말 멋지기 때문에 (Blue Hearts의 원곡이 워낙 좋으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훌륭합니다. <스쿨 오브 락>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하긴 <스쿨 오브 락>에 비해 이쪽은 좀 더 자잘한 느낌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영화의 플롯 자체는 그렇게 구성력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냐면 재미는 있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군요. 뭔가 대단한 걸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함에 카메라를 비추는 느낌입니다.

일본어를 사용하건, 한국어를 사용하건, 말하고 싶은 말을 했건 하지 않았건, 어쨌거나 마지막의 <노래>로 모든 것이 전해졌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노래란 건, 음악이란 건 대단하지요. 사소한 고민 따위는 모두 날려버리는 힘이 노래에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린다 린다~ 린다 린다 린다~ ♪ 입니다. 노래방 가면 열창해야지. 음하하하.
Posted by Neissy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박성균 감독, 신현준 외 출연 / 태원

한 동네에 택견과 검도와 쿵푸 도장이 함께 한다! 게다가 그 도장의 관장 성씨는 모두 김씨, 그리하여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무술 배우가 아니니 제대로 된 무술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들은 자그마치 신현준, 권오중, 최성국. 돈 좀 들였겠구나 싶고 잘만 만들면 꽤나 재미있겠다 싶어서 구해 보았습니다만.. ..일단 결론부터 말하죠.

영화관에서 보지 않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도 오랜만입니다. 보는 내내 장면마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습니다. 대체 이거 시나리오 누가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만들면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소재를 완전히 망쳐놨습니다. 잘 하면 훨씬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를 미친듯이 늘어지고 신선함 없는 드라마로 다 망가뜨려놨고, 개그랍시고 넣은 건 '그래서 어디서 웃어야 하는 건데?'라는 느낌이고, 그나마 볼만하다 싶은 게 무술인데..

무술영화라고 해도 스토리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적어도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해서, 무술격투신이 나와서 주인공들이 악당들을 물리치면 환호할 정도로는 만들어 줘야 제대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김관장x3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시작 30분즈음에는 이미 지루해지기 시작하고, 영화 끝나기 20분전쯤에도 '젠장 넘겨버리고 싶지만 감상 쓰려면 최소한 스토리 이해는 하고 가야 하니까 보면서 가자'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재미대가리가 없습니다. 도대체 악평을 안 하려고 해도 악평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이거. ..여하간 스토리가 저 모양이다보니, 무술신이 나와도 그다지 흥분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를 '씨바 시간낭비했다'라고 생각하는 걸 좀 막아 주는 게 그나마 무술이니까, 세 명의 캐릭터와 그 무술에 대해서 약간만 감상을 말해 보겠습니다.

우선 신현준의 택견. ..이쪽은 펀치 칠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발력이 안 되는 게 뻔히 보이는 걸 봐선 제대로 택견을 배운 거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뭐 그건 별 기대 안 하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영화상에서도 별로 택견을 보여 주는 건 아닙니다. 그냥 무협이지 (...). -젓가락 날려 사람 몸에 박아 넣기 신공. 정말 무협입니다. 게다가 탈을 쓰고 정체를 숨기는 한복 브라더즈라는 과거가 있고 나름 은둔고수인 걸로 나오는데, 그래서 아주 후반부에는 탈을 쓰고 나와서 젓가락 신공을 좀 보여주기도 하고 나름 싸우기도 합니다만, 그 탈에 대해서 정말이지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게.. 싸울 때만 탈을 쓰고, 싸움이 끝나자마자 탈을 벗을 거면 대체 탈을 왜 쓰는 거냐?! 아직 싸운 상대가 다 사라진 것도 아닌데 뻔히 얼굴 보이잖아?! 처음에는 그 한복 브라더즈 변신 (...)을 하면 탈을 쓰고 있는 게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싸움이 끝나자마자 탈을 벗는 걸 봐선 전혀 정체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탈을 쓰면 강해지나? 그러나 상식적으로 탈은 (극중에서 최성국이 쓰는) 검도 호구와 달리 그리 큰 방어력이 없는데다 시야를 미친듯이 가립니다. 싸우기 위해 별로 좋은 도구라고는 할 수 없죠.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한 가지: 뽀대밖에 없습니다. ..요컨대, 진짜 생각 없이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 덧붙여 말만 택견이지 와이어 액션에 그냥 무협이다 싶었고요.

그리고 최성국의 검도에 대해서는.. ..저는 검도는 기초만 살짝 배우다 말았으니 뭐라 평가하기 어렵긴 합니다만, 검도라기보단 그냥 검처럼 생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래도 그나마 영화상의 택견처럼 무협풍으로 날아다니지는 않아서 그래도 좀 괜찮았습니다. 너무 경박함을 가장하는 신현준의 캐릭터에 비해 (사실 신현준의 캐릭터는 별로 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진지한 척 하면서 어설픈 캐릭터가 좀 더 보기 좋았고요.

마지막으로 권오중의 쿵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실제로 삼 개월 정도 쿵푸를 배웠다고 하던가요, 미흡한 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꽤 노력한 게 보였습니다. 물론 Neissy 이 인간이 쿵푸에 환장해서 일단 멋지게 봐 주는 탓도 있긴 하지만.. 영화상에서 가장 볼거리를 잘 제공해 주는 캐릭터였습니다. 캐릭터 자체도 꽤 진지해서 믿음직스러운데다, 액션 자체도 삼절곤이나 봉이나 톤파 등이 나와서, '그래, 좀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솔직히 저는 이 사람과 그 액션 보는 맛에 이 영화를 다 본 겁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실 분이 있다면, 딴 건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단언하는데 스토리와 개그는 삼류입니다. 이래서야 <거칠마루>의 스토리가 차라리 고급입니다. (거칠마루에 대해서도 전에 감상을 써 둔 적 있습니다. 거기서 아쉬운 건 화질과 스토리 뿐이었습니다만) 김관장x3, 이렇게 만들고도 잘도 팔아먹을 마음이 났군요. 센스도 없고 웃기지도 않는 개그는 집어치우고, 스토리도 그때그때 생각나서 추가한 듯이 연결시키지 말고 전체적으로 연계성과 짜임새를 좀 공부해서 써 내란 말입니다. 모처럼 괜찮은 배우들을 영입해도, 무술신을 그럭저럭 볼만은 하게 만들었다 쳐도 그걸 살려 줄 기본이 없으니 이 사단이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론,

산 속에라도 들어가서 수행하고 나와! 제기랄!


PS. 혹자는 저 코딱지만한 동네에 무슨 무술 도장이 셋이나 몰리냐고 지적하고 싶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런 사소한 (...) 문제 따위는 지적거리조차도 안 될 만큼 문제가 산재합니다. 무술이 들어가는 영화 보면서 지루해한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씁.
Posted by Neissy
망량의 상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손안의책(사철나무)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으로부터 이어져,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번에도 몽환적이고 정신 나간 세계를 특유의 궤변으로 화려하게 펼쳐 보입니다. 중심 화자가 되는 세키쿠미 다츠미는 기본적으로 울증 환자 경향이 있는데다 휘둘리기 잘하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 남자의 시각을 통해 교고쿠 나츠히코가 뿜어내는 모호함에 빨려들면 이 소설이 보여 주는 관념파괴에 헤매게 될 지도 모릅니다. 관념의 재구성에 더불어 도덕 같은 것은 간단하게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내는 이런저런 사건들은 말 그대로 엽기적이라고 할 만 합니다.

읽어 볼 사람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스토리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하기 힘듭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경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또한 비단 인간 외에라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이런저런 일들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제목으로까지 쓰이는 이 <망량>이란 요괴 자체도 그 경계가 애매한, 정체가 흐릿한 요괴입니다. 만약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확실하게 보지 못한다면 세계를 보는 눈에 있어서 이 소설에 꽤 영향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공포영화의 화법입니다. 일어나는 사건 자체와는 별도로, 혼란스러워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나 연출, 분위기를 사용해 사건을 냉정하게 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불가능이라는 말은 사건의 본질을 보는 게 어렵게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계의 본질을 보는 게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분위기를 즐기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와 엽기적인 사건, 냉철과감한 교고쿠도-추젠지 아키히코-의 입을 빌려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어디까지가 인간인가>를 설파합니다. 이렇게까지 효과적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소설도 흔치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은 역시 판타지 소설로 분류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에서 구성시킨 <세계>는 이미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고 새로이 정립시킨 또 다른 세계입니다. 확실히 이 세계관은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저에게는 거북함이 있습니다. 이 썰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에 저는 이미 <세계관>이 확립되어 있거든요. 이봐,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건 아냐, 라는 느낌?

단, PaleSara군이 이 소설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 -포스트: 망량의 상자- 를 내었던 것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인간을 그저 육체로만 이해하면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에 반론을 내기 힘들 겁니다. -사실 유물론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저는 종교라든가 하는 신념이 존재하지 않고 진화론이나 유물론 등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도덕>을 중시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들키지 않으며 그래도 괜찮은 상황이라면 살인할 수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 동성애나 근친혼에 대해서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그저 물질로만 존재한다면 대체 그게 뭐가 문제가 될까요. 도덕이나 신념 같은 것은 그저 관념에 불과하며 단지 현재 이루어진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병에 걸릴 수 있다거나 기형아 확률이 높다는 것도 그저 당사자가 감당할 문제입니다. 자신이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규탄할 대상은 아니지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규탄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분노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기독교인답지 않게 행동하고 그게 기독교인으로서 문제없다>고 말하는 경우 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그렇게 하고 싶다면 어떤 신념이나 이상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킬 게 아니라 신념이나 이상을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뭐라고 하는 게 무책임한 거지.

그러므로 이러한 말이 성립 가능합니다: PaleSara가 인용했던 대로, "그야 그렇겠지. 행복해지는 것은 간단한 일이거든." 교고쿠도가 먼 곳을 보았다. "사람을 그만둬 버리면 되네." (下권 p501)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죠. 단지 <사람이 대체 무엇인가>에 따른 논의가 필요할 테지만. 정말이지 너무 그럴싸하게 말하기 때문에 휘말려들기 쉽지만, 결국 이 소설도 한 사람의 의견에 불과하니까요.

다 만 불행히도 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발현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러한 모든 논리는 제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보이는 세계만 믿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논하지는 않습니다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