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도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재미있는 이야기들

Neissy 2010. 1. 6. 23:34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열린책들

 사실 이 책은 수 년 전에 친구에게 빌려서 한 차례 읽어보았습니다.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사기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가 열린책들의 Mr.Know 세계문학 시리즈가 절판된다기에 사라지기 전에 구입했죠. 아, 정확히 말하면 이 시리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본래 Mr.Know 세계문학 시리즈는 페이퍼백으로 저렴한 가격 (7,800원)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이걸 가격을 좀 더 올리고 (기본적으로, 10,800원) 양장본으로 만들어서 열린책들 세계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냈더군요. 그러니까 사라졌다기보다는 페이퍼백을 없애고 양장본으로 새로이 냈다고 하는 쪽이 옳겠죠. 양장본이나 페이퍼백이나 각기 장단이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로서는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책을 살 수 있는 쪽을 선호하니 페이퍼백이 사라지기 전에 사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SF의 거장 로저 젤라즈니의 중단편집입니다. 이 사람의 SF는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이기보다는, 단지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SF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꼭 SF가 아니라 판타지로 썼어도 문제 없었을 겁니다. 사실 신화적인 요소도 많이 차용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스럽다는 인상이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생각해보면 <신들의 사회>도 그런 식이었죠. 종교 -내지 마법-와 과학이 혼합되고, 환상적인 요소와 과학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있달까요. 특히나 이 사람은 힌두교 - 불교 쪽의 용어를 많이 쓰는 편인데, 이게 또한 이 사람의 소설에서 독특하게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종교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마는, 어쨌거나 재미있게 써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소설에서, 재미있다는 건 아주 큰 미덕입니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실린 중단편들은 로저 젤라즈니의 초기 중단편입니다. 그가 이십대일 때 써낸 것들이죠. 그걸 염두에 두면······ 음,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런 걸 써냈는데 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글에 뭔가 청년적인 느낌이 듭니다. 간결하기보다는 화려함을 지향하는 문장이나, 단편들에 로맨스 요소가 재미있게 섞여들어가 있는 것 등에서 말이죠. (은근히 많아요, 아 이건 결국 로맨스구나 싶은 단편이) 하지만 글에 미숙한 느낌은 없고, 오히려 원숙합니다. 고등학교 때 이미 3백여 편이 넘는 단편과 시를 썼다니 못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도 모르겠군요. 여기 실린 단편들은 때로 현학적이고, 필요한 소품과 장치를 충분할 만큼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요소들을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도록 잘 설명했고, 또한 그 장치들을 사용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인데, 제법 철학적이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건 언제나 인기 있는 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