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로 가서 잡시다.

 ······

 근데 밖에 천둥 소리 들리고 비도 오고 하는 분위기라 창밖을 보니 둥근 해가 안 보이네요.

 작정하고 새벽에 플롯을 짰긴 했지만, 대체 왜 이리 잠이 안 오는가 생각해보니 커피를 일곱 잔은 먹었군요. 음 그래 역시 그렇지 이상하게 잠이 올 기미가 없다 했어.

 악마의 음료인 커피의 힘을 빌어 플롯은 비교적 순탄하게 짜여지고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하면 한국어에서는 저런 식의 피동형 동사는 올바르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어 어차피 난 이 시리즈에서는 국문으로 영어를 쓰고 있다고!

 ······

 그러나저러나, 비교적 순탄하게 짜여진다고는 해도 어째 최종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나와야 할 내용이 추가되고 또 추가되다 보니 어째 처음에 구상했던 것보다 내용이 더 길어지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탐정은 죽지 않는다>보다는 분량이 많아질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드는구만요. 이야기의 줄기에서 의미 있지 않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전혀 없도록 하고 있는데도 이러네. 어째 밀도가 더 뻑뻑해질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거짓말과 자기 변호를 해대고, 일을 벌인 놈은 아닌 척 하면서 안 들키려고 애쓰고. 그걸 잡아내기 위해 증거를 찾고 찔러보고 한 번 떠보기도 하고. 이런 짓을 이야기 전개 내내 (그것도 논리에 맞도록) 해야만 하니 얀 트로닉은 머리가 아프고 작가인 나도 머리가 아프고.

 사실 라인 자체는 다 잡힌 지 한 달은 넘었는데 이게 정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만한가 논리 오류는 없는가 뒤져보다보니 좀 더 합당하게 진행될만한 다른 게 보여서 또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이제 슬슬 말이 되는 거 같긴 한데 나중에 보면 또 뭔가 허술한 구석이 있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탐정은 죽지 않는다>가 처음으로 써 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미흡한 구석이 있기도 해서 이번에는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자 플롯에 정열을 퍼부어보긴 하고 있는데······ 이거 어떨려나.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쓰기 작업 중에 지금 이 작업이 제일 재미없어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모아보는 단계야 그냥 번뜩이는 걸 모아보는 거라 '이런 거 들어가면 재미있겠다!' 하고 흥분되고, 플롯 기본을 잡는 건 '좋아좋아 이런 식으로 전개해서 이렇게 파바박!' 하는 거라 흥미진진하고, 그걸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때는 이제 정말로 글로 구현하는 거니까 재미있고. 하지만 지금 작업은 뭐 잘못된 게 없나 이건 더 나은 전개가 있지 않을까 하고 보고 또 보고 점검하는 작업이라 아무래도 머리가 아프다고밖에는. ㅡ머리가 아프기로 말하면 일단 글을 다 쓰고 나서 퇴고하는 작업도 머리가 아프긴 하군요. 하긴 그 퇴고 작업을 덜 머리가 아프게 하기 위해 지금 플롯 단계에서 더 머리를 써서 나중 작업을 수월하게 하려고 하고 있는 거긴 합니다만. 만들기 전에 세밀하게 짜놓는 게 만들고 나서 고치는 것보다야 훨씬 쉬우니까. 해야 하는 거라 하는 거긴 하지만, 아무래도 역시 재미는 없습니다. 이 작업이 재미있기만 한 사람이라면 글 자체는 안 쓰고 설정하는 데에만 재미를 느끼는 설덕후 정도 아닐까.

 
하는 김에 플롯 스크린샷.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중간에 보이는 짤막한 건 소제목.
플롯 주제에 소제목이 들어가는 이유는 안 붙이면 나 자신이 머리가 아파서······.


 그래도 뭔가 쭉 정리를 하고 나면 뿌듯하기는 합니다. 아직 기승전결의 '전' 부분이 덜 명확한 감이 있어서  그 부분을 더 손보고 뜯고 정리하긴 해야 합니다만, 그것도 이 휴가 기간 안에는 어찌 끝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네요. 아니 뭐 끝나야만 합니다. 이 기간 안에도 끝을 못 내면 앞으로 언제 끝을 낼지 저 자신도 장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실은 여기까지 온 이상 좀 더 늦어져도 뭐 어떠랴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만 바로 그런 기분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스스로에게 시간 제한을 좀 걸어야 해요.

 아무튼 오랜만에 작업 진행 보고도 끝냈고 (보고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건 차치해두고) 전 이제 슬슬 자러 가겠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걸 보면 오늘은 좀 시원해질 것 같군요. 오후에 일어나서 좀 기분 좋게 다시 작업을 재개할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듭니다. 아, 빗소리가 좋아요. 제가 밖에 나갈 일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지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