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말입니다만, 사실 저는 지난 주 수요일에 좀 크게 다쳤습니다. 빗길에 우산 안 쓰고 지하철역까지 들어가려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손바닥 하부와 오른무릎 (반바지였습니다)을 크게 쓸렸는데, 사실 그렇게 넘어지는 일이 생기면 평소에는 아예 그냥 굴러버려서 오히려 다치지 않지만 그날은 등 뒤에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의 구르기가 불가능했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머릿속에 '아 이거 손 확 나가겠는데' 싶었습니다만 별 수 없더군요.

 그렇게 다치고 나니 수요일 밤에 도장 가서도, 지난 토요일에 파이트클래스할 때도 좀 컨디션이 나빴습니다만 제가 부주의한 탓이니 누구한테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지금도 다 낫지는 않아서 집에서 제대로 수련을 못 하고 있습니다. 무릎을 못 쓰는 건 아니지만 (도장에 갔다오고 파이트클래스도 할 수 있을 정도긴 하지만), 무릎을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게 해서 빨리 나은 후 좀 더 제대로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이건 부끄러운 이야기죠. 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여기다 이런 이야기를 해보는 이유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일'에 대해 문득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쓴 적이 있죠- 무술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무술을 배우긴 하되 평생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그 이야기를 이번에 다시 하는 셈입니다.

 무술이란 결국 '어떤 위험에 처해버렸을 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수단'이죠. 사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두 가지를 택일해야 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싸우느냐, 도망치느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도망친다를 골라도 끝내 붙잡혀 싸워야만 할 수 있겠죠. 그런 때에 무술은 유효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무술을 배운 게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할 수 있을 테고요.

 하지만 '위험에 처했을 때 위험에서 잘 빠져나온다'는 것과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위험을 무릅쓴다'는 건 다른 문제이며, 후자는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를테면 비가 와서 미끄러졌는데 어떻게 잘 낙법으로 다치지 않았다고 하면 (아니 전 낙법을 못 해서 다쳤지만요) 그건 그 자체로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운데도, 심지어 자신이 미끄러지기 쉬운 마찰력 없는 워킹화를 신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굳이 미끄러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뛰다가 다쳤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죠. 그러니까 애당초 저는 그런 빗길에서 뛰는 게 아니라 걸었어야 했습니다.

 같은 일이 무술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술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썼다. 그러면 그건 뭐라 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무술을 사용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무술을 써야 할 상황으로 스스로 몰고 갔다고 하면 이건 현명치는 못한 행동입니다. 무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때려 눕히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때려 눕혀서 자기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보자면 무술을 쓸 필요가 없음에도 그쪽으로 몰고가서 싸웠다가 자기도 다치는 건 무술을 오히려 잘못 배웠다고 하겠습니다. 무술을 어설프게 배웠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것이겠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요. 무술을 배우는 것 역시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무술을 배워서 오히려 자기를 더 다치게 만들고 다닌다면 본말전도겠죠. 위험이 찾아왔을 때 잘 해결하는 건 멋진 일이지만, 위험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자기를 위험하게 만들어서 해결하려 들 필요는 없습니다. 잘 해봐야 본전이고, 못하면 바보짓이죠.

 네 뭐 저 바보짓 했어요. 우하하하하. (...)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