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임원희,공효진,박시연 / 류승완

 척 봐도 아시겠지만 무척이나 취향을 타는 영화입니다. 60-70년대 한국영화의 느낌을 가져 와서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해 개그 코드로 만들어내는 영화인데, 이 신파조의 이야기와 뜬금 없는 전개, 그리고 저질 개그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건 왜 이렇게 유치해?' 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저는 매우 취향입니다만.

 <다찌마와 리>의 감각에 대해서는 ↖ 이 포스터만 보여주어도 대강 알 수 있을 듯한데, 적당히 문구를 늘어놓아 보자면 잘 생긴 주인공이 늘어놓는 진지하고 멋진 대사와 악숀, 그런 남주인공을 흠모하는 여성, 빵틀로 찍어낸 듯한 악인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이 펼쳐내는 근 반백년 전 스타일의 스토리 전개와 구성. 그러나 이게 잘 하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웃기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웃기려고 이렇게 만들어냈다는 게 포인트죠.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꼭 이게 웃으라고만 만든 게 아니라 실제로 멋있기도 하다는 점. 후시녹음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사를 말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옛스러워서 그렇지, 진지하게 들어 보면 의외로 멋진 대사들이 많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게 멋진 대사라는 걸 알 수 있어요. 가슴을 직접 때려대는 불후의 명대사들이 가득합니다. 그 낯뜨거운 대사들을 진지하게 보다 보면 어느새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주인공 다찌마와 리더러 사람이 생각이라고 쓰고 후시녹음 추임새라고 읽어주세요으로 '잘생겼다'고들 말하는데, 보면 볼수록 잘생겨 보이는 놀라운 현상이. ···뭐, <옹박>의 토니 쟈도 자꾸 보니 잘생겨 보이던데 임원희가 안 생겨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만서도.

 다만 이런 식으로 그저 옛날 느낌을 가져다 쓰기만 했다면 쉽게 질려버려서 영화의 후반부 쯤 가면 웃기지 않게 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이 옛스러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한편 희화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압록강이라고 주장하지만 어째 한강 다리 같은 곳을 배경으로 웬 바코드 김구 선생님과 김좌진 장군님이 서서 대화를 나누는 신이 중간중간 삽입되는데, 그 압록강 다리 뒤로 차가 한 대 지나가는 모습이 그냥 찍혀 나오는 것으로 또 웃음을 유발시키는 장면이 이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게 해 줍니다. <다찌마와 리>가 자랑하는 외국어 대화가 나올 때 자막이 뜨는데, 기본적으로는 이 외국어 자체도 물론 웃음 포인트입니다만 이걸 또 현대적으로 한 번 더 잡아서, 그 자막에 '첫 자막입니다. 부족해도 이해해주세요'라는 등의 메시지를 넣어 컴퓨터로 영화 자막을 본 사람들을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 식으로, 이 영화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다만 액션신에 대해서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호평은 못 하겠습니다. 액션신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자체만 따로 떨어놓고 보면 상당히 잘 만든 액션인데, 이게 아무래도 감독 취향이 나와서라기보다 사실 따지고보면 애당초 감독 취향대로 만들어댄 영화긴 하지만 위에서 말한 옛스러움+현대적 감각의 조화가 덜합니다. 나름대로 섞은 인상이야 있습니다만, 조화를 이루었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제일 처음에 마리 요원과 합류할 때까지는 괜찮게 섞였는데, 나중에 마적단과 싸우는 신에서는··· 분위기가 좀 이질적으로 떨어져 나오는 현상이 있죠. 너무 몸을 틀어대면서들 액션을 해서요. 취향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찌마와 리> 같은 영화는 현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회전 킥 등과는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카메라도 너무 흔들었어요. 카메라를 좀 덜 흔들고, 좀 더 느긋하고 오버스럽게 연출했다면 <다찌마와 리>의 전체적 느낌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무술 영화들은 <다찌마와 리>에서 표현한 액션처럼 현란하지 않았으니까요.

 좌우간 그런 영화입니다. 배우의 연기가 어설퍼도 오히려 '오옷 이것도 풍미를 살려주는구나야' 할 수 있는 영화죠. 랄까 애당초 여기서는 오버스럽거나 부족하거나 해야 더 어울리긴 합니다. 옛스러움을 즐기고 웃을 여유가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저 자신은 광고대로 '너와 내가 부둥켜 안고 놀라움에 몸부림치며 일백번도 넘게 볼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긴 합니다만.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여담. 이 글을 쓰며 저는 Steve Barakatt의 Rainbow Bridge를 듣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영화를 보시면 압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