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 오덕의, 무술 오덕에 의한, 무술 오덕을 위한 영화


성룡 & 이연걸 꿈의 드림매치를 실현한 <포비든 킹덤>입니다. 즐기려고 하면 즐길 구석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사실 또 문제를 집어내려고 한다면 꽤나 여러 가지 문제를 집어낼 수도 있죠. 이번 감상에서는 그런 포인트를 좀 잡아 볼까 합니다.

스토리는 별 것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속칭 퓨전 판타지입니다. 이계로 건너간 주인공이 너무 급속히 강해진다거나, 언어적인 문제가 너무 간단히 해결된다거나 하는 점은 영화의 빠른 전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원래 듣기로는 서유기를 끌어왔다고 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니 서유기라고 할 만한 점은 그저 '손오공'이 나온다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삼국지가 나온다고 해놓고는 실상 등장하는 인물이 관우 하나인 격이었죠. 스토리 라인이란 게 매우 간단해서, 예전에 계략에 빠져 돌이 된 손오공에게 이계에서 온 주인공이 여의봉을 돌려주는 여행, 이거 하나면 모든 게 설명됩니다. 별로 복잡한 전개 없이 진행되는데, 좋게 말하면 액션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 주는 간편한 스토리이고, 나쁘게 말하면 스토리에서는 그다지 볼 게 없다, 정도 되겠습니다. 뭐 이 바닥 액션 영화란 게 다 거기서 거기라···.

이 영화를 막상 보면서 저를 가장 흥분되게 했던 건, 이연걸과 성룡이 등장한다거나 유역비가 예쁘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오히려 70년대 무술영화풍의 오프닝이었습니다. 시대를 느끼게 하는 음악과 동시에 그림들이 넘어가는데, 이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소룡 영화 오프닝 스타일. (네, 넘어가는 그림들 중에 이소룡 그림도 있었죠) 이렇게 되면 여기에서 '이 감독은 센스가 있구나! 좀 기대해도 좋겠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뭐 이거 말고 다른 건 대단할 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역시 과잉기대는 실망을 낳는달까요.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실망한 건 아닙니다만.

액션에 대해 좀 말해 볼까요. 사실 액션의 강도며 스피드가 모두 좀 생각보다 떨어져서, 이연걸이건 성룡이건 '당신들도 나이를 먹긴 먹었군요'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이 클로즈 업 되었을 때에 피부를 보면 나이를 확실히 먹긴 먹었달까··· 여하간 그렇군요. 액션 이야기를 좀 해 보면, 우선 이연걸이 손오공을 합니다만··· 솔직히 그 부분은 실망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느려요. 날아다니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와이어를 쓰는데, 실제로 사람이 점프할 때와 와이어를 사용해 점프할 때는 무게가 움직이는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와이어에 의해 끌려 올라가는 느낌이 나고, 이런 게 현실성을 매우 깎아 먹지요. 와이어에 끌려 움직이니 봉술도 제대로 무게감이 살아날 턱이 없고. 결국 '나이를 먹은 인간 고수'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원숭이 고수'는 어려웠다고 생각됩니다. 차라리 성룡을 손오공에 기용해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이라도 보여 주었다면 나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손오공이 아니라 인간으로 나올 때는 괜찮았어요. 예전보다 느려졌다고는 해도 원래 움직임이 카메라가 못 따라잡을 만큼 빨랐으니 조금 느려졌다 해도 뭐 문제가 있나요.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져서 그렇지.

그리고 '날씨야 / 네가 추워봐라 / 내가 옷사입나 / 술사먹지' 시 한 수 읊고 다닐 듯한 만취 성룡은, 워낙 예전에 <취권>을 찍었던 전력이 있어서 취발선권을 영화적으로 나름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권 자체야 물론 영화용 무술이긴 합니다만, 허허실실을 그럭저럭 괜찮게 표현해냈어요. 이미 대비하고 있는 상대에게 허허실실 해 봐야 불필요한 빈틈만 보여 주는 꼴이니 그럴 때는 또 직접적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괜찮았고요. 사권이나 호권, 학권 등 오형권의 표현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영화상에서 재미있게 보여 주는 기술로는 아무래도 성룡이 이연걸보다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실제 무술 실력을 따지자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습니다만, 이건 영화니까요. (네, '실제로도 먹힐' 기술을 보여주기로는 이연걸이 우위에 있습니다)

유역비는 뭐··· 예뻤지요. 충분히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만 하면 예뻤습니다. 스토리상으로 별 비중이 없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만 하면 비중 있었어요. 애당초 이연걸과 성룡 사이에 괜히 낑겨들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양키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판에 히로인이 그보다 더 비중이 있기도 힘든 노릇이라···. (···) 무술이야 뭐 백발마녀로 나온 이빙빙과 함께 그럴싸하게 볼만한 액션을 보여 주었고요. 사실 무술감독이 원화평이면 무술 액션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신용해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양키 주인공. (뭐 알아보려면 금방 나오겠지만 별로 알아보고 싶지는 않아서) 한 마디로 말해서 무술오덕. 애당초 여의봉을 그가 입수하게 되는 이유 자체가 무술오덕질에 근거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주인공이 양키라는 걸 안 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보나마나 익스트림 마샬 아츠 (화려하고 현란한 것을 추구하는 무술풍 스포츠)로구나. 저놈 보나마나 봉을 풍차처럼 휘두르는 데 일가견 있고 몸이 좀 가벼울 것이야.' 해서 그 생각대로 이 양키 주인공은 그런 액션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곁다리고, 영화를 볼 양키들이 감정이입해야 할 이 양키 주인공도 뭔가 하긴 해야 하니까 아무튼 액션이 들어갔다는 인상입니다. 성룡과 이연걸, 이 양대 사부들에게서 무술을 배우는 신에서야 예전 무술 영화에서 사부에게 제자가 고생하는 그 전통적인 모습을 재현했기 때문에 즐겁긴 했습니다만, 역시 습득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과, 쓰는 무술이 사부가 쓰는 무술과 형태가 다르다는 뭔가 희한한 점을 지목하려면 지목할 수 있겠군요.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볼 때 즐길 수 있는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성룡이 (강도는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지만) 액션을 보여 준다. ② 이연걸이 (어째 좀 약해져 보이지만) 액션을 보여 준다. ③ 유역비가 (비중은 별로 없지만) 예쁘다. ④ 퓨전 판타지물이라 나름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양키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쉽게 가능하다. ⑤ 무술 감독이 원화평인 만큼, 무술 액션신들 자체의 볼거리는 나쁘지 않다. 괄호 안의 글에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

사실 저 ⑤번이 중요한데, 위에서 여러 가지 악평을 쏟아놓긴 했습니다만 워낙 이런 류의 무술 영화가 드물어진 요즘, 이나마라도 액션을 보여 주는 영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연걸은 늙었고 성룡은 약하다던 모 태국 무에타이 배우는 신작 소식이 안 들려오고···. (노파심에 덧붙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토X 쟈 좋아합니다) 좀 더 강도 있는 액션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은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교훈:

· 암습할 때는 그 사람 부르지 말고 그냥 암기를 던지세요. 암습하면서 그 사람 이름 부르는 바보가 하나 있었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