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굉장히 친했다고 생각해도 일 년만 연락 없이 지내면 문득 메신저 리스트 돌아보다 "아, 이 녀석 있었지" 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인즉슨, 역시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다, 무관심이다. 무관심이야말로 제일 무섭다. 변할 가능성 자체가 없는 거니까. 죽든지 살든지 내 알 바 아닌 게다. 어쨌든 화를 내거나 의견을 말하거나 하는 건 그 행위로 인해 상대가 변할 가능성이 있을 때나 하는 짓이지, 내가 뭔가 한다고 상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무얼 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무언가 트러블이 생겼을 시 요즘의 내 행동 방침은 이러하다: "그냥 없는 셈 치자."

말하자면 왠지 2007년을 돌아보고 싶었다. 한 해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 지금이 2008년이란 자각은 그다지 없어서,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스물다섯 살입니다, 아, 그건 작년이었지." 라고 답하게 되고 있지만, 어쨌거나 새해가 밝았고 여러 모로 다른 지평이 펼쳐지리라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것이 변한 기분이 들지만, 사실 어쩌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거야 어찌 되었건, 작년이야말로 인생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없는 셈 친" 시기였다. 실로 격동의 시기다. 많은 사람을 만난 만큼 또 헤어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계산해보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을 없는 셈 쳤다. 어째 꽤나 많은 숫자다. 다섯 명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 계산해 보니 여덟 명이나 되더라. 나는 나름대로 둥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던 듯하다.

없는 셈 친다는 게 무언지 설명해보자. 요즘 세상은 여러 모로 사람들을 만날 방법이 많은데,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것 말고도 컴퓨터 메신저나 핸드폰 등으로 소통할 수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이 사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졌다 생각되면 내 경우 그 메신저나 핸드폰에서 상대를 소거해버린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듯 싶어도, 이게 사라지면 실제로 얼굴을 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이것은 차단과는 달라서, 내게서 소거당한 상대는 내가 메신저에 로그인하면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말도 걸 수 있다. 소통의 길 자체를 원천봉쇄하지는 않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대체 소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그 신경쓰이는 상대가 말을 걸어올 수도 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그 상대가 그 상태에서 내게 소통을 걸어오는 일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상대는 여전히 내가 메신저에 뜨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 상대가 다시 말을 걸어와서 관계가 회복된 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채로 시간이 흐르면, 그 관계는 그대로 묻혀진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인간 관계는 소실된다. 얼마나 간편한가.

역으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을 통해 증명된) 이 사실은 인간 관계란 상호간의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소멸함을 말해 준다. 하기야 매일 얼굴 보며 지내는 가족조차도 대화 없이 지내면 소원해지는데 얼굴 보지도 않는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들 다 사라졌다는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는 실로 진실이다.

어쩌면 이 포스트를 올리고 나면 "혹시 당신, 날 메신저에서 지우고 입 싹 닫고 있는 거 아냐?"라는 식의 메시지가 날아올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오판한 것이고, 인간관계를 너무 메마르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겠지만, 사실 그러하지 않은가? 서로가 인간 관계를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서로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불특정 당신 역시 나를 없어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절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가장 웃긴 것은, 내가 이렇게 간단하게 상대를 없는 셈 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없는 셈 치고 살아도 그 상대에게 미안할 일이 도대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관계란 어찌 이리 덧없는지.

그러나 어쨌든 또한 살아가야 할 것이고, 나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지도 모르는 관계를 위하여 오늘도 메신저를 켤 것이다. 누군가는 의미가 사라져 가고 누군가는 의미가 생기겠지. 의미가 생겼다가도 또 다시 사라질 것이고. 언제든 사라질 것을 짐작하며 나는 언제 내쳐져도 걱정 없게끔 미리 메말라 둘 것이다.

요즘 내가 드라이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이유에서다. 무슨 일이 생겨도 그 때 뿐,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는 내가 요즘은 왠지 무서워진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