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대단찮은 그냥 잡상입니다. 사실 이런 건 번역자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고 예저녁에 공부했을 내용일 것 같지만, 그냥 스스로 정리해 볼까 싶어서 간단히 적어 봅니다.

 번역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한 나라의 말로 된 글의 내용을 다른 나라 말로 바꿔 옮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간단하지만 모든 내용이 함축된 말이 아닐까 합니다. 말 그대로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겁니다. 이게 번역에 있어 고난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건 작게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단순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크게는 사고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바로 아래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의 감상문에서 이누이트의 눈에 대한 언어가 백여 가지가 넘는다고 말했는데, 이를테면 이누이트어에서 shiya는 여명의 눈을 의미하며 katiyana는 밤의 눈을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의 언어에서는 시기에 따라 눈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죠. 그러나 그들은 눈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살아 왔고, 그래서 그들에게 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과 우리의 눈을 보는 눈은 다릅니다. 설령 우리가 그들의 말을 번역하여 '동틀녁 눈'이라거나 '밤 눈'이라고 해도 그 의미가 그대로 전달되어지기는 어렵습니다. 관념과 사고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관념과 사고 방식과 세계관이 있으며 단어와 언어는 그로부터 파생됩니다.

 그러므로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치환한다거나 문장 구조의 변환을 가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단어가 바뀌고 문장 구조가 바꾸는 시점에서 그 문장이 가지는 느낌과 의미는 손실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번역은 기본적으로 손실 변환이라고 하죠. 원저자의 문장을 일단 붕괴시키고 다른 언어로 다시 새로이 써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 2의 창작이라고도 합니다. 번역자마다 번역함에 있어 보다 중시하는 부분이 다르긴 합니다만, 그 어떤 번역자라도 원저자의 의도를 가장 충실히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저자의 사상과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 내용이 또다른 문화권에서 보다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변환을 가해야 합니다. 이미 다들 아시다시피 같은 글이라도 번역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죠. 양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와 양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번역의 질을 좌우합니다. 이걸 잘 못 하면 번역 못 했다고 욕을 먹는 거죠. 또한 소위 '번역기'가 절대로 인간의 번역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단어를 통상 많이 쓰이는 뜻으로 치환하고 문장 구조를 재조합할 수는 있지만, 그 문장 전체의 의미와 전체 글에서 내포하는 사상을 고려하여 보다 적합할 용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말과 존대말이 있는 언어와 그런 것이 없는 언어 사이의 변환도 꽤 어려운 문제입니다. 존대말이 없는 문화권의 작품을 존대말이 있는 문화권으로 옮길 때는 적절하게 상황을 보아 가며 변환시켜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존대말이 있는 문화권끼리 변환하는 것이 쉬운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례로 최근 러키☆스타라는 만화에서 미유키라는 캐릭터는 동급생에게 존대말을 씁니다만 국문 번역판에서는 반말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죠. 동급생에게 존대말을 쓰는 사람은 일본에서는 그다지 튀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본의 개념은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것을 우리 나라보다 훨씬 강하게 중시하며, 친구끼리도 아주 친하지 않으면 성을 부르니까요. (연인 사이가 되어서까지도 성을 부르는 캐릭터가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일본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 개념을 한국어 번역에까지 그대로 옮겨 오면 낭패입니다. 뉘앙스를 고려할 필요는 있지만 존대말을 썼다고 곧이곧대로 존대말을 쓰게 해서는 곤란하죠. 일본의 존대어 개념과 우리말의 존대어 개념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굳이 러키☆스타의 예를 든 것은, 일본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어순에 상대적으로 손쉽게 단어 변환이 되기 때문에 특히나 이 쪽에서는 번역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분명 영어보다는 익히기 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엄연히 외국어이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 방식이 다른 것만큼이나 한국어와 일본어는 다릅니다. 번역에서 단순 치환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여하간 이런 이유로 사실은 번역가야말로 작가보다 더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높은 수준의 번역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번역하려고 하는 작품의 언어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번역될 언어와 문화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고뇌가 많은 직업이로군요. 지금도 여러 멋진 작품들을 보다 잘 번역하기 위해 고생하시는 번역가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