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도서
풀 메탈 패닉! 19: 로망과 현실
Neissy
2007. 9. 20. 00:04

가토우 쇼우지 지음, 민유선 옮김, 시키 도우지 그림/대원씨아이(단행본)
제가 구입하는 라이트 노블은 거의 없습니다. <마술사 오펜의 유쾌한 모험> (제목이 미묘하게 다른 건 기분 탓입니다)이 종료된 이후로는 딱히 모으는 게 없어서 이쪽으로는 뭐가 나오든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는데 이 <풀 메탈 패닉!>만은 예외입니다. (3권 하나 제외하고) 외전은 안 사고 본편만 모으고 있긴 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모으는 것도 모으는 건 맞죠. <풀 메탈 패닉!>이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저보다 잘 아실 분이 많을 테지만, 일단 저는 이 작품을 '원작 본편' 외에는 (그러니까, 3권 하나 제외하고) 전혀 접하지 않았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만화책도 보지 않았어요. 따라서 제가 말하는 내용은 모두 원작 본편에만 국한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감상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일단 19권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던 사건은 이제 슬슬 펼쳤던 내용을 하나로 모아 가며 종결을 향해 달려 가기 시작했고, 소스케는 레바테인이라는 새 기체를 맞이해 로봇물의 전통인 '후속 기체'의 위력을 초절스럽게 펼쳐 보입니다. 히로인인 카나메 -전 텟사 파입니다만 히로인이 카나메라는 건 어쩔 수 없지요-와의 닭살 돋는 행각 (...)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19권에만 한정해 말해 보면, 전반부에서 사건들을 조금씩 깔다가 중반부에서 고조시키고 후반부에서 뻥 하고 터뜨린 다음, 그래도 해결되지 못한 일을 남겨서 '그럼 여러분 다음 권에서 또 만나요♡'라고 말하는, 지극히 모범스러운 시리즈물의 구성이 되겠습니다.
<풀 메탈 패닉!>이라는 작품을 볼 때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밀리터리풍의 로봇액션물이라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리얼계의 분위기를 깔면서도 슈퍼계의 로봇으로 독자를 만족시키죠. 거기에 각양각색의 개성 만점 캐릭터들이 포진하여 저 요소를 맛깔스럽게 버무리고 살려내니, 독자로 하여금 (슈퍼 로봇 액션이나 유쾌한 캐릭터들로) 속시원한 쾌감과 동시에 (꽤 리얼한 밀리터리 액션으로) 미묘한 지적 만족감도 던져 줍니다. 이게 대원CI의 NT노블 첫 작품으로 출판된 이유도 알 만 합니다. 혹 오해가 있을까봐 말해 두면 저 슈퍼 로봇 액션이라는 건 밀리터리 액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슈퍼하다는 거지, 애니메이션 계의 숱한 로봇들에 댄다면 풀 메탈 패닉은 리얼계에 어울립니다. 후반으로 갈 수록 슈퍼하게 슈퍼해지긴 하지만요.
그러나 단지 저런 요소가 전부였다면, 이 감상의 첫 문단에서 밝혔듯 어지간히 라이트 노블에 신경 안 쓰는 제가 굳이 '오 나왔구나!'라며 구입할 이유는 없었겠지요. 또한 저는 외전은 굳이 사지 않는데, 이 작품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해 본편보다 훨씬 유쾌하고 노골적으로 개그를 펼쳐 주는 외전을 구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이 작품의 본편에는 어떠한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이기에?
한 마디로 말하면 '로망'과 '현실'의 공존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차없는 진행을 따르되 그렇다고 하여 꿈을 잃지도 않는다는 소리죠. 이를테면 주인공 사가라 소스케는 병사이고 각종 기술에 통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전투신 중 상당수는 그의 병사로서의 기술을 바탕으로 합니다. 실제로 있을 법 한 전투, 그리고 사람이 가차없이 죽어나가죠. 만약 그것으로 끝났다면 이건 그냥 밀리터리 액션 (그리고 때로는 개그) 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AS (암 슬레이브: 그냥 쉽게, 탑승형 로봇이라고 이해하십시오)라는 병기가 있습니다.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의 몸을 강화시켜주는 느낌이라 리얼계가 되겠고, 실제로 AS의 전술은 병사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여 거기에 어레인지를 가했습니다. 어차피 있을 리 없지만 가능한 한 현실적인 구성을 따랐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람다 드라이버'라는 초현실이 등장합니다. 자세한 원리는 저도 까먹었고 어차피 작가도 대충 둘러대고 있으니 (...) 넘어갑니다만, 대충 '정신력을 사용하여 역장 (力場)을 펼쳐 방어를 하거나 공격을 하는 기술'이라고 이해하십시오. 조금 다릅니다만 에반게리온의 A.T. 필드를 연상하셔도 좋습니다. 이 람다 드라이버가 등장함으로 인해 이야기는 현실을 벗어나 꿈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합니다. 그 전까지는 설령 AS라는 초현실적인 기체를 타더라도 물리 법칙에 구애를 받았으나, 이것의 존재로 인해 그런 걸 무시해 버립니다. 이런저런 말을 어렵게 할 필요 없이 한 마디로 '로망!'입니다.
<풀 메탈 패닉!>의 이야기 전개는 순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팍팍 죽어나가고 현실은 가혹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주인공은 패배하여 쓰러지지 않습니다.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고 분투하여, '로망'을 붙잡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풀 메탈 패닉!>에서 끌린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단지, 이 로망이라는 게 로망이긴 하지만 모두 행복해지는 win-win스러운 게 아니라 '쟁취'하여 얻어내는 느낌이 아주 강한데, 결국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고 역설하는 느낌이죠. 요컨대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로망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현실은 결코 순순하지 않아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다 해도 닥쳐온 현실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절대로 꿈은 얻을 수 없습니다. <풀 메탈 패닉!> 1권의 제목이 '싸우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별 내용도 없는데 말이 길어졌군요. 여하간 그런 글이고, 이런 저런 걸 따지지 않고 액션활극이나 색깔 다양한 캐릭터들, 그들이 펼치는 우정, 사랑, 개그,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를 화끈하게 날려주는 로봇 액션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 = 레바테인 만세. 19권에서 이놈이 정말 (여러 가지 의미로) 강해져서 돌아와 기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