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거두절미하고, 박민규의 글을 이것 말고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밖에 사지 않았고, 또 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비교 대상은 오로지 삼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삼미를 읽으신 분들만 제대로 이해할 감상,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말하는 투는 재미있습니다. 다만 삼미 때와는 달리 다소 쉼표가 많아,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여하간에, 호흡이 자주 끊어져 읽기, 가 쉽지 않다, 는 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건 읽다 보면 금방 익숙해지는 편이고 말하자면 개성이니 크게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뭐랄까 스포츠를 통해 인생을 말한다는 점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때와 비슷한 디테일을 지니고 있으며
인생을 말하는 방식 자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이게 삼미 다음에 나오는 글임을 고려할 때, 무언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혹은 동등함 이상을 보여 주어야 독자를 만족 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 하고,
약합니다.
전달하는 메시지 자체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말하는 삼미 때와 달리 핑퐁에서는 '생존하는 게 아니라 잔존하는 인류'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쉽게 건드리기에는 너무 묵직한 소재, 를 건드리는 건 외줄타기와 같다, 라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 때는 좀 더 생각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는 것, 말하자면 '당신, 이것보다는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래서 사소하지만 8,500원이 아닌 9,800원이라는 책값이 신경쓰인다는 것, 차라리 핑퐁이 먼저 나왔고 삼미가 이번에 나온 거라면 좀 더 납득, 혹은 만족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 비록 핑퐁이라는 이 소설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삼미 때에 생겼던 기대가 이 소설로 인해 빠져나갔음은 부정할 수 없다, 는 겁니다.
물론 저는 지구영웅전설도 카스테라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편협하거나 주관적인 감상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감상이란 건 원래
편협하고 주관적인 겁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 핑퐁에 대해서는- 오히려 핑퐁 말고 다시 다음에 나올 장편소설을 읽은 후에 감상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왠지 저에게는 이 핑퐁이란 작품이 과도기에 있는 작품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기 때문에.
물론 이 핑퐁, 이라는 글 자체만을 두고 평가하자면 나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나쁘지 않다, 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not bad와 good은 엄연히 다르듯이, 이를테면 예전에 삼미를 읽은 후 나왔던 감상인 '사길 잘했다 (눈물좔좔) - 그 때의 일기에서 그대로 인용' 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삼미에 대해서는 '재미있어요 사보세요'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만 핑퐁에 대해서는 '뭐 한번쯤 읽어봐도 나쁘지 않아요' 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위에서 이미 한 소리라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결국 이게 결론입니다.
아쉽네요, 저도, 원래 이 박민규라는 작가가 맘에 들었던 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읽기 전에 카방X에게서 '그거 별로래'라는 말을 들어서 기대를 좀 덜했는데도 이렇다는 건.
그래도 다음 소설을 기대해 볼랍니다. 뭐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