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민음사

 <1984>와 더불어 조지 오웰의 걸작으로 알려진, 특별한 설명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우화소설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걸 이제 와서 읽었다는 데에 놀라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이걸 여태 읽지 않았단 말이야?" 하지만 제목은 잘 알고 있어도 실상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소설이란 의외로 꽤 되는 법이지요. <동물농장>의 경우는 워낙 유명하다보니 읽어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가 되어서 오히려 읽을 마음이 들기 어려웠습니다. 뭐 그건 어쨌거나.

 많이들 알고 계시다시피 이 소설은 구 소비에트 연방을 풍자해 써낸 우화소설입니다. 자유와 평등을 말하며 소위 사회주의가 탄생하지만, 처음 탄생했을 때의 이상과는 달리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지도자들을 특별하게 취급하도록 만들고 특별대우를 받으며, 대중들을 착취하고 자본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종국에 가서는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던 자본가와 권력자와 전혀 다를 것이 없게 된다는 결말입지요. (이렇게 말한다고 스포일러다! 라고 분개하실 분은 아마도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소비에트 연방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시점에서 쓰여졌는데, 소련의 최후에 대해 퍽 훌륭한 예언이 되는 풍자글이어서,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를 싫어해서 그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는데······ 책 뒤의 해설에도 나와있듯 조지 오웰은 사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자였죠. 그러나 보다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꿈꾸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가정하지 않을 때에 가능한, 함께 돕고 함께 나누는 그 이상적인 사회주의란, 현실에서는 종교단체에서나 겨우 가능할 법한 건데 (기독교 초기 교회 때에 이런 게 있긴 했죠), 사실 인간의 욕망이란 그리 만만치 않음을 우리는 우리 주변을 보고 아주 잘 알고 있죠. 정치든 종교든, 인간에게 탐욕이 존재하는 한 이상적인 사회는 결코 나타나지 않아요.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이긴 했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동물농장> 같은 소설을 써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조지 오웰의 성향을 볼 때 <동물농장>이 사회주의는 어리석고 악하며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글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오히려 <동물농장>은 꼭 사회주의에 대해 고발하기보다, 지도자의 이기심과 욕망을 대중이 제어하지 못하고 무지한 채 지도자가 멋대로 행동하도록 놔두면 어떤 이상향이라도 망가지게 된다고 써낸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지도자로서 멋대로 행동하고 결국 대중을 착취하게 된 이유는 대중들이 무지해 지도자들을 감시하지 않고 그들이 어떤 계략을 획책해도 (심지어 사회가 세워졌을 때 만들어졌던 법규를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어도) 지도자니 믿어준다거나 그들이 하는 대로 우리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며 상황을 방기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하는 것이니 모두를 위한 것이리라고 믿으며 대중들은 그저 따르기만 했고, 그 결과 사회는 점점 썩어가기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이 소설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었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를 넘어서 이건 아예 착취주의)로 가버린 원인입니다.

 자, 그러면······ 이게 그저 사회주의에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의 상황에만 적용가능하겠습니까? 이 소설의 직접적 풍자대상인 소련도 멸망했고, 사회주의가 실제로는 현실에 온전히 적용될 수 없는 부적합한 이론임이 증명된 이제 와서는 별로 신경쓸 것 없는 소설일까요?

 이렇게 묻는다는 건, 물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이게 그저 사회주의에만 교훈될 수 있는 이야기라 여겨지지 않습니다. <동물농장>은 민주주의인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어요. ① 지도자 (권력자)들은 대중을 위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기 잇속을 안 챙기기는 어렵다. ② 대중들이 지켜보고 감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기들에게 좋은 대로 법조차도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멋대로 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태도를 버려야겠죠. 투표했으니 난 내 할 일을 다 했을까요? 권력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 어차피 세상은 어떻든간에 살기 힘든 법이야, 달라질 것도 없으니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자는 (소설 중에서는 당나귀 벤자민의 태도가 이런 식입니다만)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를테면 정치인들이 다 그 놈이 그 놈이고 누가 권력자가 되든 세상이 달라질 일은 없다는 태도를 가져봅시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국민들을 신경써줄까요? 제가 정치인이라도 안 그럴 겁니다. 적어도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같은 잘못을 다시 안 하려고 들겠죠. 내가 뭘 하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권력 맡은 이들이 알아서 잘 하리라고 생각하면 상황은 정말로 악화되기만 할 겁니다.

 사실, 당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건 꼭 사회나 체제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네요. 이놈들이 제대로 하나 안 하나 감시의 눈길을 희번득거리고 다녀도 곤란하겠지만,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다거나 뭔가 그런 낌새가 있는데도) 그냥 무조건 어련히 잘 하려니 하면서 방기해두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사람이란 그런 법이니까요. 자기 잇속을 챙기게 되어 있죠.

 뭐 이런 게 제가 <동물농장>을 읽고 느낀 감상입니다. 사실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로 긴 편이 아니어서 읽는 데 부담은 적었어요. 계속 악화일로를 걸어 들어가기만 하는 소설 속 상황을 읽고 있자니 좀 갑갑하긴 했습니다만. '젠장, 그렇게 멍청하게 넘어가주면 저놈들은 점점 더 뻔뻔하게 군단 말이다!'라는 게 제 기분이었죠······ 아마 조지 오웰은 독자가 그런 기분을 느껴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네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