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문학동네

 살아가며 우리가 절망, 또는 파국을 느끼는 어떤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망가져있음을, 메말랐음을, 피폐해졌음을 느끼게 되는 어떤 한 순간 말이죠. 사랑은 존재치 않고, 닳아 헤졌습니다. 무엇을 더 말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레이먼드 카버는 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순간'을 보여줍니다.

 문장이 간결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암울하지요. 이 우울함은 정제된 갑갑함입니다. 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떠벌이는 일이 필요할까요? 정말 힘이 빠진 사람은 이러니저러니 말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법입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닥친 파국을 해결해낼 여력이 없습니다. 파국이 찾아와 끝났거나, 아니면 이미 끝났음을 서로 알면서도 살아가죠. 그의 첫 소설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의 감상에서 저는 그러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사랑'이리라고 말했고, 역시 그 감상에서 이 등장인물들이 딱히 새삼 서로 사랑하려고 애쓸 듯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는 더 심합니다. 애쓸 듯하지 않다거나 하기보다, 그들에게는 아예 애쓸 힘이란 게 남아있질 않습니다······.

 이 소설의 모든 상황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심지어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도 알기 어렵습니다. 독자는 그저 짐작할 뿐입니다.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그들이 하는 행동으로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고 현재 왜 이런 상태에 이르렀는지 짐작해보아야 합니다.

 글쎄요, 마치 '문득 생각났는데 이런 일이 있었어······.' 라고 밑도끝도없이 삶의 어떤 한 부분을 말해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어쩌라구요?' 하고 물으면 레이먼드 카버는 아마 이렇게 답할 듯합니다: '글쎄, 그건 당신이 생각할 문제지.'

 만약 이런 류의 일상을 회쳐서 우울하게 보여주는 소설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면, 이 감상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해도, 우선 레이먼드 카버의 전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먼저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더 우울하고, 등장인물에게 여력이 없고, 한층 혼란스러워요. 불친절하죠. 그게 또 매력입니다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