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소니블로거히어로즈 1.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이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지금은 심지어, 순수한 MP3P로가 아니라 그저 휴대폰만으로 MP3를 듣고 다니는 사람도 꽤 되죠. 여러 가지로 편리해진 세상입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고등학교 때 카세트 플레이어를 애용하고, 대학교 초년때까지 CD 플레이어를 애용한 저로서는 현재의 MP3 문화는 그리 좋지만은 않더군요.

 물론, MP3는 정말로 편리합니다. 주머니 안에 쏙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에 수천 분 이상의 음악이 들어가고, MP3의 음질만 좋다면 대체로 만족할만한 음질을 들려주며, 음악을 들으며 러닝을 해도 음이 튀지 않는 안정성을 자랑합니다. 혹자는 192kbps 이상만 되면 인간의 귀로는 음질 차이를 거의 구분해내지 못한다고들 말하는데, 그 말을 절대적으로 긍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각주:1] 여하간 포터블 기기로서는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 아무래도 MP3를 들으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음질이 아무래도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인간의 귀로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을 잘라내는 손실 압축 MP3보다는 아무래도 무손실 CD가 낫기 마련이죠.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무손실 압축 방식인 FLAC에 대해 무어라 말하기 어렵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CD를 그대로 떠버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스피커가 정말 좋지 않고서야 음질 차이가 크게 안 느껴지는데, 포터블 CDP에 그렇게 좋은 스피커는 잘 안 달아 쓰죠. 어차피 이어폰이나 헤드폰 수준에서 고막이 아니라 몸으로 음악을 느끼기도 어렵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음악을 듣노라면 음질에 신경쓰고 다닐 일도 많지 않고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MP3P로는 음악 듣는 느낌이 안 난다'고 말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좀 더 단순하고, 어쩌면 좀 호사스런 이유입니다: 뭐랄까, DVD로 영화 보는 게 아니라, *.avi로 영화 볼 때 같은 느낌이 납니다. 설령 소스가 완전히 같은 것이라 볼 때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해도 그래요. 정당하게 즐기고, 제공된 하나의 앨범을 제대로 맛보았다는 감흥이 안 느껴집니다. CD를 제 돈 주고 사서 320Kbps MP3로 만들어서 들어도 그렇습니다. MP3P는 간편하지만, 간편한 만큼 가벼워요.

 그래서 샀습니다. CD Walkman D-NE830LS.


2.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MP3P가 득세한 요 몇 년 동안, CDP 시장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한때 소니와 함께 CDP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파나소닉은, 이미 CDP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되었고 현재는 파나소닉 CDP를 구하려면 중고로밖에 구할 수 없습니다. 소니는 조금 나아서 신품을 구할 수 있지만, 그 신품이란 것도 가장 최신 모델이 몇 년 전에 나온 모델로서, '진짜 최신 모델'은 못 되는 형편입니다. 일본에서는 신품이 아직 나온다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만, 확인은 안 해봤어요.

 글쎄, 이왕 구하려면 그래도 좀 괜찮은 제품을 구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 현재 있는 것 중 무엇이 괜찮은가.. 싶어서 살펴봤는데, 알아보니 별로 고르고 말고 할 여지도 없이 NE-830 모델이 답이더군요. 성능만 따지면 NE-730이나 NE-830이나 매한가지지만 830의 바디가 알미늄이라서 이쪽이 낫겠다 싶더군요. 색상은 두 종류, 블루블랙과 실버.. ..가 원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재 블루블랙은 거의가 예저녁에 품절된 상태이므로 속편하게 (=싸게) 사려면 실버가 답입니다. (랄까 애당초 전 실버를 좀 좋아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습니다만)

 여하간 비교적 싸게 구입했습니다. 16만 5천원. (NE-830을 예전에 구매했는데 더 쌌었다고 말하고 싶은 분들, 요즘 환율을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도착했습니다

 105 hours playback.. 이란 말이 있는데, 저건 광고니까 현실과는 달라요. 소니 특별 규약인 ATRAC 방식으로 CD를 구워서, 외장 배터리 케이스를 추가로 달아 배터리 용량을 내장 껌전지에 더해 늘렸을 때 최대 105시간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일반적인 오디오 CD를 돌릴 때 (그리고 외장 배터리 케이스를 안 달았을 때)는 16시간 정도가 플레이타임입니다. 내장 껌전지 하나만으로 CD를 돌리는 시간 치고는 그리 짧은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 105시간에 괜히 낚이고 나면 16시간이 아무래도 좀 짧게 느껴지죠.



대략 구성품입니다

 AC 전원 어댑터, 외장 배터리 케이스 (속칭 밥통), 납작 충전지 (속칭 껌전지), 휴대용 주머니, 이어폰, 리모콘, SonicStage 설치 CD, 사용 설명서, SonicStage 설치/사용 설명서, 소니코리아 정품보증서 .. 하나씩을 기본으로 제공합니다.



CDP 세대교체

 왼쪽은 제가 예전에 썼던 CDP인 D-E777. 꽤 애용했는데 아쉽게도 고장이 나는 바람에 못 쓰게 되었죠. 엄밀히 말하면 아직 작동은 되지만, 말 그대로 CD 넣으면 그저 플레이가 될 뿐, 음량조절도 트랙이동도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어디 수리해주는 데 있으면 수리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기는 한데..

 이번에 CDP 사면서 여기저기서 정보를 얻어본 결과 저 D-E777이 나름 명기 취급 받는 물건이더군요. 이번에 산 NE-830은 출력이 떨어지는 안 좋은 기기란 소리가 많았고요. 그래서 뭐 얼마나 차이가 나나.. 싶었는데, NE-830 들어 보니 뭐 CDP가 나쁘다고 해도 CDP지.. ..싶더군요.

 더불어 둘 다 은색입니다. 사진에서는 빛을 못 받아 까무잡잡하게 나왔습니다만..



 열어 보면 이렇습니다

 예전의 CDP는 뒷부분에 건전지 두 개를 넣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좀 구형은 구형이라), 이번 건 내부에 케이스를 열고 껌전지를 넣게 되어 있습니다.



연출: 왼쪽은 이상은 5집, 오른쪽은 퀸 그레이티스트 히츠 1


3.

 얼마나 더 CDP를 쓸 수 있을지, (아껴 쓰겠지만) 이번에 산 CDP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때도 CDP란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CD란 형식을 좋아하고, '앨범을 산다'는 느낌을 좋아하니, 앞으로도 살아남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만. (레코드샵에서 CD를 산 후, 기대에 젖어 CDP에 CD를 넣고 집에 가며 음악을 듣는다.. ..는 로망 아시나요)

 여하간 그리하여, 젠하이저 MX-400 이어폰과 함께 (뭐 이거 저렴한 축에 속하는 이어폰입니다만 그래도 나름 젠하이저 물건.. ..가격대 성능비 좋습니다) 앞으로 CD 라이프를 즐겨볼까 합니다. 이젠 앨범을 사고도 집에 가서 MP3로 떠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때와는 안녕이네요.

 ...... 덧붙여, 이것이 바로 제가 이번 달에 돈이 평소보다 더 모자라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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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질이란 스피커의 품질 차이에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소스가 블루레이지만 모니터가 15인치 수준이라면, 블루레이건 DVD건 화질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겠죠.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