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민음사

 이 책을 읽기 전에, 단지 제목만 들었을 때, 저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고도가 孤島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인상을 가지고 '왠지 서정적일 것 같으다'하고 막상 책을 읽어 보니 이건 완전히 딴판으로, 고도는 어원이 불분명한 Godot  (애당초 한자가 아니었잖아······)였으며 서정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실험적이고 철학적인 희곡이었던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인 시골길에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고도라 불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도를 매우 오래 기다려왔던 듯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는 사이 다른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고도는 아닙니다. 두 남자는 기다림에 지쳐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러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러고 있으면 뭣 하나, 돌아갈까? 하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만 가자" "가면 안 되지"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저녁이 되면, 고도가 아니라 고도가 보낸 사람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오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1막. 그리고 2막에 들어서면 대화가 조금 바뀔 뿐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또다시 저녁에 되면 고도가 내일 오리라는 고도의 전갈이 전해져옵니다. 그리고 2막으로 희곡은 종료.

 이 줄거리만 보셔도 그다지 속편한 희곡이 아니라는 점은 잘 이해되실 줄로 믿습니다. 사실, 이 희곡에서는 모든 것이 불분명합니다. 주인공들이 고도를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3막 4막 ······ 그리고 몇 막이 되어도 아마 마찬가지로 고도는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뜻밖에 3막이 되자마자 올지도 모르죠) 알 수 없습니다. 1막과 2막에 걸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또한 분명하게 과거와 현재가 연속되는 인물이 아닙니다. 장님이 아니었던 이가 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장님이 되어있고, 귀머거리가 아니었던 이가 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귀머거리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도 Godot 자체가 뜻이 불분명한 단어입니다.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각주:1] 단어라는 해설이 있기야 합니다만, 사뮈엘 베케트 자신은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하며 분명한 해석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분명한 것이 있긴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오로지, 주인공들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뿐입니다.

 작가 자신조차 고도에 대한 분명한 해석을 거부한 상태에서, '고도는 이것이다' '아니다 저것이다'라고 한들 그 무엇도 절대적이지는 않겠습니다. 희곡을 본 사람 (또는 저처럼, 읽은 사람)마다 고도에 대한 해석은 달라집니다. (아, 뭐, 孤島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겠지만요) 인물들이 벌이는 부조리극과 어이없음에 허탈하게 웃으며 보고 난 후 '그런데, 내가 기다리는 건 무얼까?'하고 생각해본다면, 아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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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인으로, 영어, 프랑스어로 번갈아가며 작품을 썼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