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기사입니다
세츠다 지음 / 문피아, 드림워커 연재중

 -되도록 피하긴 했지만,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감상에서 스포일러를 피하면 무슨 감상을 쓸 수 있을까요?-

 우선 밝히면, 저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서는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의 기사입니다> 같은 경우, 지인의 글이 아니면 읽기 시작하지 않았겠습니다만, 재미가 없었더라면 끝까지 (완결작이 아니니, 연재된 부분의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겁니다. 이하의 감상에서 어떻게 평하든, 일단 나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만은 미리 말해두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기사입니다>는 말하자면 캐릭터가 주가 되고, 사건과 배경이 부가 되는 소설입니다. 일단 소설의 성격을 정리하면 쿨하고 강하신 프린세스 아인히른 R. 시미르, 능력 좋은 시녀 세류, 남자혐오 고수검사 쥬민, 이 세 명이 거처하는 금남(!)의 구역 백합(!)궁에 아인히른 공주의 호위기사로 들어가게 된 남주인공 라일드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라 하겠네요. 이외에도 여러 캐릭터가 나오긴 합니다만 일단은 이 네 명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국문 표현인 인물을 놔두고 굳이 캐릭터라고 설명했는데, 아마 예민하신 분은 여기에서 이미 무언가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소설은 실로 캐릭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인물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 주로 나오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성격의 일부가 극단적으로 과장되기 때문에 정말로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건 그 자체로 캐릭터의 매력을 가지는' 인물들이죠. 이렇게 성격이 강한 캐릭터를 만들어두면, 적당히 사건과 배경을 조합하면 그들이 알아서 움직일 수 있죠. 그 정도의 생명력을 가질 만큼은 캐릭터들이 잘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단지 캐릭터만 만들어둔 것이 아니라, 사건이나 배경 자체도 소설을 이끌어나가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소설에서 주로 다가오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매력적인 캐릭터' 그 자체로,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이, 사건의 세세한 모습을 다 그려내지는 않습니다. 배경도, 사건 중간중간에 솜씨 있게 집어넣어 독자가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 비교적 부담이 덜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내 설정을 들어!' 하고 쏼라쏼라 써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만 묘사하려 하는 이 자제력은 칭찬받을 만합니다.

 하여 결과로, 비교적 부담 없이 사건 상황을 받아들이며 소설 내에 그려진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괜찮은 캐릭터 소설이 나옵니다. 챕터 하나하나마다 사건이 나오고, 그 사건을 캐릭터성 넘치게 풀어가고, 챕터 종결시에 사건이 마무리되는 스타일이죠. 굳이 말하라면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보다는 라이트노벨에 어울리는 형식입니다. 다만 본격적인 라이트노벨이라기엔 챕터 하나가 너무 짧고, 일상계의 느낌으로 너무 잔잔하다는 게 문제라 라이트노벨 '느낌'이라고 해야겠습니다만. 어쨌든, 온라인 연재글로서는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랄까 전 다른 연재글을 안 보고 있지만요.. ..그리고 이것도 온라인으로 보기엔 눈이 아프길래 인쇄해서 읽었지만. 아무튼)

 자, 장점은 대강 설명했습니다. 이제 단점을 설명할 때입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짚어주마!'하는 감상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지인 글이고 제가 말하면 그게 반영되어 다음 글에 보완되리라 생각되다 보니 뭔가 짚어야만 할 것 같네요.

 가장 큰 단점은 무엇보다 문장입니다. 오타가 잦고, 조사 오류가 많고 (이건 오타도 있겠지만), 주어-서술어 호응 관계에 오류가 제법 있습니다. 문체의 문제 이전에 문장 자체가 매끄럽지 못한데, 글의 품격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이 부분에 관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시점 교차시에 독자가 혼란스러워지는데 이 부분도 보다 연구해줬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주인공 시점에서 쓰여지는 서술들의 문제인데, 달리 말하면 캐릭터 성격의 문제입니다. 캐릭터 소설로서 괜찮다고 평했으면서 캐릭터에 문제가 있다고 하려니 저 스스로도 좀 꺼림직합니다만, 잡아야 할 부분은 잡으려니 어쩔 수 없네요. 문제는 작가가 이 글에서 독자들이 웃음을 얻기 원했고, 그래서 개그 코드를 꽤 집어넣는데 그러다 보니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주인공이 너무 말이 많아진다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이 말이 많다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안 될 수 있지만, 다른 캐릭터들이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괴리가 생긴다면 이건 문제입니다. 후반에 변한 다음에야 어쨌든, 초반의 주인공은 좀 냉정하고 날카로우며 침착한 이미지여야 하는데, 소설의 서술을 보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인만큼 서술이 주인공의 생각이라고 여겨도 되겠습니다) 전장의 영웅으로 냉정침착한 남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평화 속에서 살아온 어리버리 주절주절 청년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가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면, 독자로서는 이게 '이 녀석, 평소에는 헤실거리지만 진지할 땐 진지하군!'이 아니라 '냉정 침착과 까불거리기가 한 인물에게 함께하는 일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좀 너무 극단적인데'라는 생각이 들어버립니다. 성격이 지나치게 양극단을 오간달까요, 캐릭터 소설로서 재미가 있는 만큼 주인공의 캐릭터에 더 아쉬움이 생기죠. (후반에 주인공의 정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이 이질감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런 남자'였다면 사고가 이 소설 내의 서술보다 훨씬 담백하고 정제되었어야 할 겁니다)

 또한 세계 배경에 있어서, 시대가 명확하지 못합니다.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의도임은 느껴집니다만, 저로서는 좀 더 이 '판타지 세계'를 확립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를테면 이야기 중에 세계 배경상 있어서는 안 될 비디오가 나오고, 주인공의 묘사 중 낙하산 인사 같은 게 나오는데 낙하산은 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죠. 이런 부분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 시대와 어울리게 배치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의 절정이 너무 급속도로 오릅니다. 초중반까지 잔잔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소위 밑밥을 뿌리다가 막판에 가서 터뜨리는 구조인데, 깔아두었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건 글쟁이가 꼭 해보고 싶어지는 글의 재미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다소 당황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급격하게 변하니까요. 라일드의 성격 변화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극단적인 변화는 글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간에 조금씩 터뜨리며 텐션을 올려주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뭐, 제 감상은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래저래 쓴소리를 좀 하긴 했는데, 이 정도 이야기는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말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런 단점을 감안하고서라도 재미있게 읽었고, 세츠다에게는 앞으로 더욱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분위기를 보면 이제 <나는 당신의 기사입니다>도 완결이 그리 머지는 않은 듯한데, 여태껏 해왔듯 멋지게 써서 완결해내고, 다음 소설은 더 멋지게 써내길 기원합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