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일러두는 기본적인 사항: 나는 야구를 매우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1박2일 팬이다. 더불어 나는 당초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던 ESPN 방송 자체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이게 진실이다 이 우매한 족속들아 모르면 입다물고 있어!'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1. 편집의 힘은 무섭다.

 사람들은 ESPN이 편집을 심하게 했다고 욕하지만, 1박2일도 편집을 심하게 한다는 점은 잊어버리려는 듯하다. 마치 1박2일에서 보여주면 그게 진실인 것처럼, "아 원래는 그런 거였는데 너희들이 심하게 욕했구나!"라고 한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매체든 자기 입장에서 사건을 보여주려 한다는 사실이다. 한겨레에서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데 조선일보에서 "사실은 이랬습니다" 하고 답을 내놓으면 "아 원래는 그랬는데 한겨레가 설레발친거래!" 하고 납득해도 되나? (그럴 사람이 꽤 있기야 하겠지만) 그러면 안 된다. 보여주는 것에 속지 않고 그 이면을 보아 정말로 어떠한 건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방송을 보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지만.

 물론 나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방송에 설정이 없을 수가 없다. 인간극장에도 설정이 있다고 들은 판인데 연예프로에 설정이 없을 수가 있나. 그들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방송을 볼 때는 저게 정말 시간순서대로 배열되어 보여주는 것인가까지도 의심해본다. 방송은 동시간대에 일어난 일을 여러 카메라로 잡아서 한번에 보여줄 수도 있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보여주지 않고 일부분만 보여줄 수도 있으며,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많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밥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밝을 때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먹을 때는 깜깜하다. 하지만 시청자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지, 화면의 배경을 보기 전에는 느끼기 어렵다)

 요 몇 주는 잘 안 봤지만, 나는 개그 콘서트를 꽤 즐겨 본다. 내 동생이 실제로 개그 콘서트를 방청하고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동생의 말로는 "별로 재미 없었다"고 한다. 웃어주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종종 웃기기는 하지만 썰렁할 때도 꽤 많았다고. (물론 그 때 실제로 보았을 때 동생의 기분이 당시 상황 문제로 그리 좋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하지만,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위 분위기가 그랬다는 점에서 이 증언은 나름 유효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TV화면의 방송분에서 보면, 계속 재미있어 보이며 또한 그걸 보고 웃는 사람도 꽤 보인다. 당연하다. 재미없는 부분은 보이지 않도록 다 들어내니까, 그리고 또한 웃는 사람만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주는 사람 뒤에 앉은 사람의 표정이 싸늘한 경우가 종종 보인다는 점이 재미있다)

 나는 여기에서 1박2일도 같은 궤를 달린다고 보는데, 그들은 당연히 재미있고 호응 좋은 부분만 보여주게 되어 있다. 물론 그게 예의다. 본인들 보기에도 재미없는 부분을 누구 보라고 보여줄 건가. 다만 여기에서 생각해볼 점은, 방송에서 뭘 보여준다고 그게 꼭 그 상황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마치 웹상의 누군가의 의견이 '단지 그 사람의 의견'인 것처럼, 방송에서 보여준 것도 '방송의 의견'이다. 그리고 지금 이건 '내 의견'이고. 자기 시각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인간에게 절대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상황을 볼 때 언제나 자기 나름대로 편집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게 되어 있다. 당장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할 때만도 그렇다. ㉮라는 상황을 A의 입장에서 말할 때와 B의 입장에서 말할 때 보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A가 보기엔 B가 죽일 놈인데 B가 보기엔 A가 죽일 놈이다. 그래서 C는 A 말만 들어서도 안 되고 B 말만 들어서도 안 된다. 그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법이다. 편집의 힘은 무서우니까.


2. 1박2일은 무엇을 잘못했나?

 사람들이 1박2일을 욕했던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① 지정석을 필요 이상 차지하고 있었으며 경기 시작할 때까지 제대로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② 그들이 들어온 덕분에 야구를 보고 싶었던 팬들이 보지 못해서 손해를 보았다. ③ 롯데 홈구장에 가서, 롯데와 앙숙인 한화의 응원가인 '무조건'을 불렀다. ④ 본래 3~5분 정도로 끝나야 할 클리닝타임이 10분이나 되어버려서, 선수들의 페이스가 흐트러져서 게임이 망가졌다. (롯데는 홈런을 맞고 져버렸다)

 이외에도 몇 가지 더 있긴 했는데, 어쨌든 기본 줄기는 저 정도인 듯하니까 이 이야기만 해볼까 한다.

 ① 지정석 문제: 일반석은 꽉 들어찼는데 지정석이 텅텅 비었다는 데에 대해, 방송 내에서 김C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반석은 선착순으로 앉지만 지정석은 자리가 정해져 있어서 늦게 오는 것 같다." 사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정석에 앉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빅게임으로 24분만에 티켓이 매진된 열기를 자랑했는데, 그런 게임에서 일반석 자리가 죄다 꽉꽉 들어찰 동안 지정석에 앉는 사람이 도무지 안 왔다는 게 조금 의아하다. 여유있게 늦게 오려고 일부러 지정석을 샀다는 가정도 가능하기야 하지만 전부 다 그러지는 않잖을까 싶은데 (팬이니까 지정석까지 사서 들어오는 것 아닌가), 아무튼 이 부분은 나로서는 조금 이해가 안 된다. 정말 통제가 없었나?

 ② 보고 싶었던 팬들이 보지 못한 문제: 이에 대해 내 동생은 "못 들어간 사람이나 그런 불평 하지"라고 말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못 들어간 사람의 입장이 되면 그렇게 간단히 말하기는 어려울 거다. 어쨌든 이 부분은 1박2일측에서 당초 이 사직편을 가볍게 접근했다는 한 증거가 되지 않나 싶다. 그들은 사직의 열기가 그렇게 뜨거운지도, 또한 못 들어갔다고 불평을 터뜨릴 팬들이 있을지도 짐작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연예프로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야구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 곱게 보일 일은 아니다. 단, 이건 그래도 롯데가 이겼다면 큰 문제가 안 되었을지 모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잖아도 불만 있는데 깔 거리가 또 있다'는 느낌의 문제일 수도 있다.

③ 무조건을 불렀다는 문제: 1박2일에서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제 방송은 평소의 1박2일이 아니라 사직 해명편처럼 보였으니까. 1박2일은 야구장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으며, 관중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음을 강조한다. 더불어 이것이 그냥 1박2일만의 계획이 아니었고 구단과의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날 욕하는 자 구단에게 먼저 돌을 던져라 모드) 원래 계획되었던 공연인 <챔피언> 후에 관중들이 <무조건>을 연호하고, 심지어 부르기까지 해서 1박2일이 어떻게 하지 못하고 결국 공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서도 제법 알려지긴 해서, 단순히 무조건을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1박2일 까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긴 3만명이나 되어놓으면 그게 이론적인 사고를 하기 쉽지는 않을 듯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1박2일이 확실한 면죄부를 얻은 듯하다.


호응이 좋았다는 것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④ 게임이 망가졌다는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2일을 좋게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출연자들을 욕할 게 아니라, 1박2일 PD와 롯데 구단을 욕해야 한다. 언제부터 클리닝타임이 10분이었나. 야구 게임 중간에 맥을 끊고 공연을 하는 일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나는 왜 1박2일이 거기까지 가서 꼭 공연을 해야 하느냐도 좀 묻고 싶다. 1박2일이 여태껏 재미있었던 건 공연을 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해서 그곳을 소개하고 즐기며, 자연과 벗하는 (벗했다는 건 좀 오버지만) 모습이 보기 좋았던 거다. 괜히 야생 버라이어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야구장에 가서, 그냥 야구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왜 굳이 공연을 해야 하느냐고. 이건 공연 강박증에라도 걸린 듯하지 않은가. 정히 공연을 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야구가 시작하기 전에 공연했으면 깔끔하고 좋았을 거다. (클리닝 타임을 10분으로 늘려 잡는 게 가능한데 그런 게 불가능하겠는가)

 어쨌거나 이번 방송으로 1박2일은 아주 깨끗해 보이는 이미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는데, 1박2일의 공연에 대해 관객들이 아주 호응하는 것 같기는 한데 왠지 보여준 사람들만 계속 보여준다거나 (그렇게 호응해주는 사람이 많았다면 특정 인물을 두 번 이상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냐고 나같은 사람들은 묻는 거다), 공연이 길어지면서 똥씹은 표정이 되는 선수들의 표정은 보여주지 않는다거나 (허허 웃는 모습만 보여주고 만다. 방송분만 보아서는 관중들도 선수들도 아주 호의적으로만 1박2일을 보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는 것 때문에 그렇다. 야구장 들어가 이승기가 볼보이 체험을 하는데 체험을 하려고 하기 전에, "선수에게 사인볼 받으려면 끝나고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데, 물론 그 자체야 은지원이 "넌 노래 부르는 도중에 사인 해달라면 해 주냐"고 반문하고 그래서 이승기가 "안 해주죠" 하고 납득하는 상황으로 나름의 개그를 이끌어내는 나쁘지 않은 시츄에이션이지만, 만약 이 사직편에서 1박2일에 대한 롯데 선수들의 반응이 방송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주 좋았다면 (웃는 모습만 보여주더라. 물론 그 (허탈하게?) 웃는 모습 뒤로 심각한 표정을 짓는 어떤 선수도 잡히긴 했지) 공연 끝나고 마무리 인사로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선수에게 사인도 받는 모습을 추가할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선수들의 반응이 정말 호의적이었나? (사진은 공연 중 두 사람의 표정이라 알려진 사진)



3. 이 사건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

 우리들에게는 방송이란 편집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재확인시켜주고, 1박2일에게는 연예프로라는 이름을 단다고 다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어쩌면 1박2일은 이 사건으로 공연강박을 자제할 수도 있고, 본연에 충실한 야생 버라이어티로 시청자들에게 지금까지보다 더한 즐거움을 안겨줄 수도 있으며,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괜히 이런 식으로 욕을 자초할 이유가 뭔가. (1박2일의 최근의 방향에 대해서는······ 여담이지만, PD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해, 강호동이 힘 (그게 권력이든 무력이든)으로 누군가를 제압하거나 끌어들이려는 것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거 마이너스 이미지 아닌가?)

 뭐, 어쨌거나, 가장 욕먹어야 할 건 결국 롯데 구단이다. 1박2일의 힘까지 빌려서 야구를 좀 더 홍보하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방법을 잘 해야지, 의도만 좋았다고 결과가 다 좋게 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야구장에 가는 주목적은 멋진 야구를 보는 것이지 멋진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다. 멋진 야구를 보여줄 수 있도록 신경써야지, 클리닝타임 10분은 뭐고 야구 중간에 공연을 허용하는 건 또 뭐냐. 주객이 전도되게 하지 말자.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