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뭅니다. 혹 그의 이름을 모른다 해도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확실히 드물 겁니다. 우리는 티셔츠 등에서 어렵지 않게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죠. 그러나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가 진정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 그 삶의 여정이 어떠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체[각주:1]를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쿠바를 사회주의로 물들게 만든 빨갱이 (그렇잖아도 책표지가 빨간 색인데)? 정의 사회 구현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선 영웅? 여기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입장이 있고, 모든 사람이 각기 자신의 형편대로 체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적어도, 한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적어도 좀 알아볼 필요는 있겠죠ㅡ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리고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은, 우선 체를 알기 위한 좋은 평전입니다.

 이 책은 몇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① 체에 대해 아주 큰 애정을 지닌 저자가 썼지만, 체를 신격화하거나 우상화하지 않았다는 점: 독자가 원한다면 이 책 내에서 체를 비판할만한 여러 부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공정하게 쓰여졌다고 할 만하죠. ② 한 인물의 발자취를 출생부터 사망까지 충실하게 써나갔지만, 마치 소설처럼 독자가 흥미롭고도 편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는 점: 다른 책들의 감상에서도 몇 차례 말해왔지만, 읽기 쉽다는 건 아주 큰 미덕입니다. 칠백 페이지가 넘음에도 부담 되지 않는 건 역시 '재미있기' 때문이겠죠.

 체에 대해 아주 간단히 간추려보면, 그는 권력자들에게 비폭력이라는 수단이 통하는 건 상대가 자애의 마음을 갖고 있을 때나 유효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불어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급진적 변화를 선호했죠. 하여 게릴라전이라는 수단으로 쿠바 혁명을 성공시켰고, 쿠바 국립 은행의 총재라는 자리에까지 올라갑니다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불합리에 맞서 싸우기 위해 볼리비아에서도 게릴라 활동을 하다 붙잡혀 처형당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대개 체는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게릴라전이라는 수단으로 맞서 싸우는 남자, 타협하지 않은 남자, 하나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일을 위해 노력한 남자.

 사실 말하면, 체의 이상은 너무 높았습니다. 그가 자본주의를 배격한 건 있는 자들이 결코 자발적으로 없는 자들에게 나누려 하지 않으며 그 체제 하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사회주의를 택했다고 사람들이 기꺼이 같은 임금에 만족하고 열심히 일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가 패망한 원인으로서, "도덕적인 자극에만 의지하여서는 생산에 도움이 되는 어떠한 효력도 얻지 못한다" (p.481)는 사실이 체의 이상을 가로막았습니다. 물론 체 자신에게야 그런 도덕적인 자극이 효력이 있었겠지만, 그걸 다른 모든 사람에게 효력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세상을 너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었죠. 그러니 어떻든간에, 비록 체가 행동하는 이상주의자였다 하더라도, 그의 이상대로 세상이 바뀌지는 못하는 겁니다. 인간이 그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도덕적이지 못하는 한 (그리고 때로는 도덕적이기를 원하지조차 않는 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사회'에는 결코 도달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그럼에도 체가 높게 평가받는다면, 그 이유가 단지 그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각주:2] 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존경받는다면, 본래 의학도였으되 인간의 질병보다 사회의 모순을 치료하고 싶어 전쟁에 나선 모습이나, 정말로 엄격한 남자였지만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에게 먼저 엄격했기에 누구도 그의 엄격함에 대해 무어라 할 수 없었으며 (엄격한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덕목이죠),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다른 곳에서 투쟁했고, 약자에게 친근하고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그런 모습들 때문이겠죠. 비록 그가 사회를 개혁하는 수단으로 사회주의를 택했지만, 사회주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이상을 그저 말로만 떠벌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현실의 무거움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꿔놓기 위해 투쟁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혹은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알고는 있으되 단지 알고만 있었을 뿐이라면, 한번쯤 <체 게바라 평전>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사실, 한 인간의 이름이 거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그에 대해 알아볼 필요는 충분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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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e, 스페인어의 호격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만 게바라 앞에 붙으면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체 게바라의 본명)를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이 됩니다. 이 감상에서는, 적어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나아갔던 게바라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를 '체'라고 줄여 부르려 합니다. [본문으로]
  2. 사실 쿠바 혁명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착취에 지친 쿠바의 민중들이 혁명을 바라고 있었다'는 게 컸습니다. 그랬기에 체를 위시한 게릴라들은 농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농부들이 게릴라가 되어 전력이 늘어나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바티스타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점에서 본다면, 혁명이란 '이끄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요구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쿠바에서 성공했던 게릴라전이 볼리비아에서는 실패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