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eption, 2010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장안의 화제인 <인셉션>을 이틀 전에 보았습니다. 모처에서 이걸 가지고 하도 복잡하게 떠들어대길래 굉장히 머리 아픈 영화인 줄 알았더니, 막상 보니 그렇게 머리 아픈 영화는 아니더군요.

 이 영화의 골자가 되는 설정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 타인의 꿈에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다. ② 그 꿈 속에서 또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③ 꿈이므로 물리법칙은 무시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무시되는 경우 꿈을 꾸는 자가 꿈임을 인지할 수 있다. ④ 현실에서 겪는 주위 상황이 꿈을 꾸는 자의 무의식에 연동되어 꿈에 반영될 수 있다. ⑤ 꿈 속에서의 시간은 현실보다 느리게 흐른다. 현실에서 5분 흐를 게 꿈 속에서는 1시간 흐르는 식. 그리고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꿀 경우 꿈속의 꿈에서는 시간이 한층 심화되어 느리게 흐른다.

 그리고 꿈을 꾸는 자는 이것이 꿈임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저 세계관에서는 꿈 속의 세계가 리얼하게 '구축'되기 때문에 물리법칙이 무시되는 모습을 보고 깨닫지 못하는 한 이것이 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꿈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장자의 호접몽마냥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게 되죠. 그러므로 필요한 것이 토템이라고 불리우는 '각 개인마다 소지하고 다니는, 물리 법칙을 상기시켜줄 자그마한 물건'입니다. 내가 현실을 살아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물건이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현실인가? 라고 말하면 아무튼 이런 생각은 이전부터 있어온 것입니다만.

 말인즉슨 이 영화에 나오는 설정이나 생각들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던 것들을 종합해서 좀 더 체계화시킨 것이라, 사실 이해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김에 말합니다만 완전히 새로운 설정 같은 게 어딨겠습니까. 다 누군가 생각했던 것을 얻어서 거기에서 더 나아가거나 새로 조합하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전 신선한 설정에만 목숨 거는 작품을 그다지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설정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지라) 그러나 어쨌거나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저 설정들을 잘 녹여내어 관객들에게 '꿈 속의 세계'를 매력있게 제공하고, 관객들에게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생각하게 만들며, 이러한 세계관이라면 일어날 법한 갈등을 설득력 있게 제공하는데 더불어 꿈 속이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판타지스러운 액션으로 영화를 호화스럽게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아예 놓고 있으면 영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되는 건 맞는데, 그거야 사실 어떤 영화도 마찬가지고 이 <인셉션>은 뜻밖에 속편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설정을 '이해'하는 부분 정도거든요. SF나 판타지가 대개 그렇듯 말이죠.

 그리고 이 영화는 소위 열린 결말이라, 마지막 부분을 관객마다 다르게 이해할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게 꿈 속인지 현실인지 애매하게 해놓고 끝나는 건데,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저라도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 것 같네요.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당연한 마무리랄까요······ 그리고 전 그 마무리가 이거다, 라고 확정짓고 싶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쪽도 말이 되기 때문이고 감독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감독이 확정짓지 않았는데 왜 가능성을 하나로 좁혀야만 하겠습니까? 취향에 맞는 대로 생각하면 되죠. 그리고 저로서는, 글쎄, 관객으로서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쪽이 마음에 들지만 크리에이터로서는 아 ㅅㅂ 꿈 쪽도 괜찮아 뵈네요. 결국 양쪽 다 패러랠 월드로서 존재시키고 싶습니다.


 여담. 전 이 영화 주연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인 걸 나중에 스탭롤 보고야 알았습니다. 저 후덕한 녀석은 누군데 주연이지 / 괜찮은 배우인가 / 연기는 잘 하는 거 같은데 / 하고 있었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이런 맙소사.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