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라보세
Zal.Sa.Ra.Bo.Se.

-의미불명패러디난무엽기발랄실험소설-

제 1장. 용사여 깨어나라 …… (2)


대팔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초원 위에 누워 있었다. 조금 전에 이미지 영상으로 보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대팔은 몸을 일으켰다. 흰 옷을 입은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잠깐?

대팔은 눈을 찡그렸다. 소녀가 아니었다. 분명 길고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고 원피스를 입은 사람은 맞았지만, 소녀가 아니라 남자의 얼굴이었다. 키 175센티미터의 대팔보다 키가 약간 작은 그가 손을 내밀며 쾌활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당신을 여기로 소환한 아름다운 성녀 히로인 비엘이에요.”

태클을 안 걸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며 대팔이 외쳤다.

“아름답긴 뭐가요? 게다가 당신은 여자도 아닌데 왜 성녀예요?! 누구 마음대로 또 히로인이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작가도 충분히 고심했답니다.”

확실히 남자치고는 선이 가는 얼굴의 비엘이 답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남자와 남자의 애정 가득한 이야기를 사심어린 눈으로 읽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대세라, 파트너로 여자를 붙여주는 것보다는 남자를 붙여주는 게 더 뜰 것 같았대요.”
“애당초 뜰 생각으로 이런 글 쓰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팔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으나 비엘은 산뜻하게 무시하고 말했다.

“덧붙여 히로인 비엘은 제 이름이랍니다. 히로인이 이름이고 비엘이 성이죠. 저를 부를 때는 격의 없이 히로인이라고 불러주세요.”
“…… 별로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데요.”
“에이, 앞으로 함께 갈 동료인데 친하게 지내야죠.”
“애, 애당초!”

대팔이 삿대질을 했다.

“이미지 영상에서는 여자였잖아요! 난 여자와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기대로 이 세계로 온 건데! 이거 사기잖아요!?”
“어쩔 수 없군요. 안심하세요. 당신과 당신을 위시한 수많은 남자 독자들을 위한 배려로, 우리와 함께 다닐 전사는 틀림없는 아름다운 여자니까요.”

히로인이 손가락을 튕기며 검지를 하늘로 쳐들었다.

“나와주세요! 건담!”

동시에 땅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며 밑에서 한 명의 여성이 튀어나왔다. 햇빛이 그녀의 뒤에서 후광처럼 빛났고 그녀는 공중제비 예순일곱 바퀴를 돈 후 자신의 키만큼 큰 대검을 땅에 꽂으며 안착했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는 노출도가 높을수록 강해진다는 속설에 따라) 비키니 철판 갑옷을 입은 그녀가 하얀 치아를 빛내며 미소지었다.

“안녕하세요. 용사를 기다려온 여전사 샤이륑 건담이에요. 샤이륑이라고 불러주시면 고맙겠어요.”

대팔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그의 관자놀이에서 심줄이 불룩해졌고 그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왜 정상적인 캐릭터가 없어?!”
“무슨 실례의 말씀이세요?”

샤이륑이 대검 옆으로 대팔을 치자 대팔은 삼 미터를 튕겨 날아가더니 초원의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샤이륑이 난감한 얼굴로 로인을 쳐다보았다.

“너무 약한데요? 저 사람 정말 용사 맞아요?”
“어떤 용사든 레벨 1 때는 지나가는 슬라임보다도 약한 거예요.”

히로인이 확신 어린 어조로 답하자 샤이륑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즈음 대팔이 지친 모습으로 초원을 올라왔고, 샤이륑이 따지듯 물었다.

“내가 왜 정상적이지 않다는 거죠?”

물론 샤이륑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윤기 흐르는 금발은 어깨까지 매끄럽게 흘러내리고, 곱게 다듬어진 눈썹은 아름다웠으며, 푸른 눈은 호수처럼 빛났고,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앵두처럼 붉고 고왔다. 그러나 대팔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몸이 너무 튼튼하잖아요! 지나가던 보디빌더도 때려잡을 것처럼! 어깨 근육이 내 머리보다 두껍네?!”

바로 그러했다. 샤이륑의 몸은 스테로이드제를 대량 섭취하지 않고서는 여간해서는 만들어내기 힘든 근육질이었고, 비키니 철판 갑옷을 입었으니만큼 그 라인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샤이륑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키만한 대검을 한손으로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이 정도 검을 다루려면 힘이 있어야죠. 비리비리한 몸으로 대검을 휘두르는 건 만화 속에나 나오는 소리라구요. 이런 건 상식 아닌가요?”
“뭔 놈의 소설이 쓸데없는 데서 상식적이야…….”

대팔이 투덜거렸으나 그의 투정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보고 있는 영상 위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대팔은 히로인 비엘을 동료로 얻었다!
이대팔은 샤이륑 건담을 동료로 얻었다!

“……방금 건 뭐였지?”

대팔이 눈을 찌푸리자 히로인이 손을 휘휘 저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면 지는 거니까요.”
“뭔가 벌써부터 지치는데요.”

대팔이 한숨을 내쉬었고, 히로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어머, 그렇다면 빨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저의 직업은 성녀인만큼 당신의 피로를 회복시킬 기술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대팔에게 건네주었다.

“자, 회복 포션이예요. 이걸 마시면 피로가 회복될 거예요.”

대팔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자그마한 유리 약병이었고 유리는 갈색이었다. 병에 붙어 있던 라벨을 뜯어낸 자국이 있었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서 유성매직으로 ‘회복포션’이라고 적어놓았다. 병뚜껑에도 종이를 다시 덧붙이고 같은 글자를 적어놓았는데, 그 밑으로 특유의 로고가 보였다. 대팔이 미심쩍게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박카…….”
“회복 포션입니다.”

히로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팔은 샤이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마주볼 뿐이었다.

“회복 포션이 왜요?”
“아니, 뭔가 저예산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대팔은 괜시리 외로운 기분이었다. 히로인이 권했다.

“어쨌든 쭉 들이키세요. 한 잔 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거예요.”
“……보통 그 대사 이런 때 쓰나요?”

어쨌거나 대팔은 박카…… 아니, 회복 포션을 들이켰다. 씁쓸한 듯하면서도 시큼한 액체가 혀를 휘감은 후 목구멍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대팔의 눈에서 생기가 떠올랐다.

“우, 우아앗!”

동시에 이미지 영상으로 그의 뒤에서 반달곰이 가슴을 쳐들고 포효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대팔이 외쳤다.

“히, 힘이다! 힘이 치솟고 있어!”
“깜빡 잊고 말을 안 했는데,”

히로인이 상냥하게 말했다.

“사실 그 힘은 당신의 숨겨진 힘을 끌어내어주는 약이었답니다. 그래요, 그 약을 먹음으로 당신은 이 세계에서 용사로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죠!”
“아, 너무 낭만적이야!”

초근육질 아리따운 여전사가 손을 맞잡으며 외쳤다.

과연 우리의 이대팔은 어떤 용사로서 탄생하게 될 것인가? 그의 숨겨진 힘이란 과연? 실은 작가도 아직 뭘 주어줄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닐까? 잘사라보세 대망의 3편,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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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생각하는 건데 이거 참 쓰기 편한 글이네요. (사실 아무 생각 없음)

Neissy였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