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글 그림, 박성창 옮김/비룡소

 이 동화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굳이 여기에서 이 동화의 내용을 다시 소개하기도 낯간지러울 만큼 많은 곳에서 소개되었고 인용되었죠. 아주 많은 사람이 이 섬세하고 따스하며 어딘가 가슴 아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죠.

 초등학교 때에 처음 읽었습니다. 중학교 때에도 읽었고, 고등학교 때에도 한 번쯤 다시 읽었으며, 20대가 되어서도 종종 읽었습니다. 이제 30대에 접어들어 다시 읽으려고 찾아보니 책장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겠더군요. 분명히 이사 올 때 가져왔을 텐데 어디 들어가 있는지 찾을 수가 있나. 얇은 책이다 보니 어딘가 끼어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하루 저녁 찾다가 도무지 안 보이기에 그냥 새로 샀습니다. 그렇잖아도 소장본으로 깔끔한 녀석을 하나 갖고 싶었으니, 마침 좋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동화로 소개되고는 있지만 이 <어린 왕자>는 막상 어릴 때 읽어서는 큰 감명을 받지 못합니다. 그야 재미있게 읽고 감명을 받기야 하죠. 하지만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니까. (p.97)" 같은 말을 어릴 때에 얼마나 깊숙이 받아들이겠습니까.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그 꽃에게 네가 바친 그 시간들이야. (p.97)"도 마찬가지고요. 꽃 하니 이제 와서 이야기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어린 왕자의 꽃은 제게는 별로 사랑스럽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다시 읽어보니, 그 천진하고도 자존심 강한 꽃이 놀랍도록 연약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더군요. 아마 나중에 또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겠죠.

 그러고 보니 부제를 '어린이들이 읽어서는 안 될 이야기'라고 붙여놨군요. 맞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린이들이 읽어서는 안 됩니다.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이야기에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면 좋지 않은 어른이 됩니다. 집을 설명할 때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앉아 있는 아주 멋진 장밋빛 벽돌집'이라고 설명하는 어른이라니, 말도 안 되죠. '오늘 나는 90평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말하면 다들 "와! 정말 근사하겠군!"이라고 외쳐줄 겁니다. 어른이라면 보다 실질적이고 계산적이어야만 해요─ 어떻게 숫자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왕자> 같은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어린이는 친구의 목소리나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를 중시하지 그 아이의 배경이나 스펙 같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책입니까!

 말하자면 어릴 때 저는 '숫자 같은 건 신경 쓰지 마라'는 저 이야기에 참으로 감동을 받아, 이후, 친구의 배경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는 말입지요. 누군가를 사귈 때 저는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 사람이 학교는 어디를 다녔는지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게 다 <어린 왕자>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를 까세요. ←

 ······뭐, 아무튼 저는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겠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