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벤더, 샤를리즈 테론, 가이 피어스 외

 오늘 조조로 보고 왔습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에이리언>과 <에이리언 2>를 농담 안 하고 수십번 이상 본 저 같은 사람에게는 축복 같은 영화였습니다. 인간을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엔지니어들을 찾아 LV-223 행성에 도착한 일단의 사람들, 거기에서 발견한 엔지니어의 구조물과 남겨진 유물, 그리고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들!

 ..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밝혀지는 것보다 안 밝혀진 게 더 많습니다. 사실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미지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이니까 흥미로운 거지, 다 알려지고 나면 흥미는 반감됩니다. 만사 다 알려주는 게 꼭 좋은 방법은 아니죠, 아무렴요.

 인류 기원의 충격적 비밀.. 이 어떻다고 광고합니다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고 별로 논란이 될 여지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외계인에 의한 지적설계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썰을 풀긴 합니다만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그게 궁금하든 안 하든, 거기 설득력이 있든 없든, 그에 대해 풀어놓는 영화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뭐라 말하든, 판타지 영화에서 창조된 신을 가지고 그 신에 대해 썰을 푸는 것하고 별로 다를 게 없어요. 사실 저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서 이건 <에이리언>과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가 훨씬 중요합니다.

 물론 감독인 리들리 스콧은 애초에 에이리언 프리퀄을 만든다 했다가 그 말을 철회하고 프리퀄이 아니라고 했죠. 라지만 그랬거나 어쨌거나 공개된 영상에선 에이리언과 노골적인 관계성을 보여주었고 (<프로메테우스> 광고는 <에이리언 1> 광고를 아주 빼다 박았었죠), 실제로 영화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영화를 프리퀄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이걸 꼭 에이리언의 프리퀄이 아니라 에이리언과 연관된 좀 더 확장된 세계로서 보아주길 바라서라고 생각합니다만.. ..글쎄요, 인간은 물론이고 에이리언도 만들어낸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데다, 그들이 창조한 괴물─에이리언은 아닌 생체 병기─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해서 긴장감을 계속 유지시키는 영환데 프리퀄이 아니라고 해도.. ..뭐 프리퀄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에이리언>보다 전 시기에 일어난, 에이리언에 연결된 이야기임은 아주 명확하지만요.

 에이리언을 만들어낸 존재.. 라는 말에 좀 부연해서, <에이리언 2>의 예를 들어 에이리언은 별도의 종족이며 엔지니어가 만들어낸 생체 병기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은 <에이리언 1>뿐이며 거기에서 에이리언의 설정은 확실히 <에이리언 2>와 차이를 보입니다. 에이리언에게 끌려갔던 선원이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형되고 있는 표현이 추가 컷에 있었으며, 에이리언이 알을 깐다든가 퀸 에이리언이 있다든가 하는 설정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의해 <에이리언 2>에서 추가 변경된 설정이죠.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에이리언 2>부터의 설정은 무시하는 듯이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정을 제법 흥미롭게 만들어냈으며 긴장감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합니다. 건드려선 안 됐던 미지의 존재들로 일어나는 문제들도 제법 흥미롭지요! 하지만 그래서, 에이리언의 팬이 아닌 사람도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전 글쎄요,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SF 탐사 호러로서 일정 수준은 확실히 보장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추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분명히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그 모든 건 '오, 이건 이렇게 <에이리언>과 연관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어떨지는 자신할 수 없군요.

 그러므로 간단한 결론─ 에이리언 (특히 <에이리언 1>)을 좋아하신다면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2시간의 러닝타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갈 겁니다. 아니면 호러풍의 SF 탐사물을 좋아하셔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실 겁니다. 하지만 이 분류에 해당되지 않으신다면,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할 확률이 큽니다. 취향을 아주 많이 탈 법한 영화이며, 취향 따라 보는 게 현명합니다.


 여담. (스포일러 약간 있습니다. 영화 보기 전에 정보 얻기 싫으시면 주의)

 1. 프로메테우스 호는 이름부터 재수 없었습니다.
 2. 잘 모르는 거 함부로 만지지 맙시다. SF영화의 상식입니다. ←
 3. 안드로이드 데이빗이 갑입니다. 마지막까지 의뭉스럽게 남아주는군요. 고맙게도.
 4. '그 질문'에 '그 대답'은 안 좋았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니 더더욱.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마는..
 5. 충격의 장기 적출 신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전에 나온 '그 고백'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 제대로.
 6. 여기 나온 엔지니어는 <에이리언 1>에 나온 스페이스 죠키 같지 않습니다. '그 좌석'이 분명히 보이긴 하고, 거기 앉은 모습도 나오긴 하지만.. 죽는 위치에 차이가 있어서. (그리고 <에이리언 1>의 스페이스 죠키는 거의 화석화되었으며 마치 의자에서 자라나온 것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로 오래되어 보입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1>의 연도 간격이 30년밖에 되지 않음을 볼 때 이들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글쎄요 이건 단지 설정상 구멍이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죽는 위치가 다른 건 구멍이라 하긴 너무 크죠) 게다가 이 영화에선 '알'이 보이지 않습니다. '페이스 허거'도 없지요. 그 점에선 확실히 <프로메테우스>를 <에이리언 1>의 프리퀄로 보기엔 무리가.. (행성도 다르죠. <프로메테우스>의 그것은 LV-223, <에이리언 1>의 그것은 LV-426. 이름도 다르고 행성 공기 성분도 다르고 환경이며 분위기가 아예 다릅니다)
 7. 마지막 부분으로부터, 에이리언은 우연의 결과로 얻어진 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영화 초반부, '그 방'에 들어설 때 에이리언 같은 형체의 크리쳐가 조각된 모습이 보입니다. <에이리언 1>의 스페이스 죠키가 죽은 게 아주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추정되는 걸 봐서, 에이리언의 형태 자체는 특별히 우연의 산물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한 형태라고 추측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8. 그리고 과연 LV-223의 에이리언은 거기에서 뭔 짓을 했을까도 좀 궁금합니다. 이 영화가 에이리언 프리퀄이 아니어서 LV-426의 그것들과 별개의 것이라면 확실히 이놈은 LV-426의 그것들과 별도의 개체로 남아있게 되는데, 그렇다면 <에이리언 2>에서 폭발해서 모든 놈들이 날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더 남아있었다! ..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에서 전 <프로메테우스>가 <에이리언 2>부터의 설정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죠. 그렇게 보면 이후의 이야기들은 사실 아무 상관 없을지도요. ..라지만 여담 6부터 제가 말한 내용들이 다 그냥 설정 구멍일 수도 있고. 이 영화는 애초에 떡밥 회수를 할 생각이 없는 영화니 생각하기 나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