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황금가지

 오랜만의 도서 감상입니다. 사실 이 책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감상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이 소설이 다루는 소재가 사형 제도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왠지 이 소설을 감상하려면 사형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죠. 그런 이유로 부담이 있어서 감상이 미뤄졌습니다만, 좀 어깨힘을 빼고 가볍게 가볼 작정입니다. 일단 이야기 구조에 대해, 작품 뒤에 있는 소개말을 간단히 인용해보겠습니다.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살인범의 무죄를 증명하라! 익명의 독지가가 내건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두 남자가 조사에 나선다. 교도관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난고와 상해 치사 전과자인 준이치는 사건 당시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형수 료의 유일한 기억을 단서로 진범을 추적해 나간다. 그 기억이란 바로 사건이 벌어진 날 오르던 어딘가의 '계단'뿐. 그러나 계단의 흔적은 사건 현장 그 어디에도 없었고, 난고와 준이치는 난관에 봉착한다. 사형 집행까지 불과 3개월, 과연 료는 무죄인가?

 사형 제도의 구조적 모순과 국가의 범죄 관리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일본 추리 문학계를 뒤흔든 문제작!

 우선 이 소설에서 기본이 되는 부분은 사카키바라 료의 사건인데, 이 사람은 손도끼로 노부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고 그렇게 의심받을 만한 정황도 있었습니다만, 정작 본인 자신이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인해 부분 기억상실에 걸렸기 때문에 그 혐의에 대해 제대로 된 긍정도 반박도 하지 못합니다. 단지 정황상 그가 살인범이라 확신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사형 선고가 떨어진 것이고, 차일피일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지요. 그런 그를 구출해내기 위해 나선 두 명이 난고 쇼지미카미 준이치입니다. 난고는 퇴직을 앞둔 교도관이고, 준이치는 상해 치사로 2년을 복역했던 청년입니다. 이 두 사람이 료에게 씌워진 살인죄를 벗겨내고 진범을 찾아내, 그에게 사형 집행이 처해지기 전에 그를 구출해내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더불어 13계단이란, 일본에서 사형수의 형 집행이 이루어지기까지 절차가 13가지이기 때문에 교수대의 대명사로서 13계단이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그러나 본격 미스터리는 아니고 사회파 미스터리인 만큼, 어떤 트릭이 있었느냐 하는 것은 이 소설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미스터리 소설 몇 가지가 생각날 만하고, 확실히 다소 비슷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와 비교한다면 역동성이 느껴집니다만) 트릭이나 반전은 무난하며, 법적인 절차 언급이나 진행도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기본적인 수준이 된 소설이라, 진지하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히죠.

 기본적으로 이 소설에서는 사형 제도에 상관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 사형을 집행하도록 결재하는 사람, 사형을 직접 집행하는 사람, 사형수의 가족, 사형수에 의해 가까운 사람을 살해당한 사람. 이 소설은 사형에 찬성하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여러 가지 모습과,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점을 보여주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책을 읽고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런 시각도 있고, 또 저런 시각도 있군.'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죠.

 저 자신의 사형에 대한 시각은 이 감상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처럼 이렇게 다방면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을 읽고 나서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시각을 말하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을 듯 하거든요. 어쨌거나 이 소설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한 번 읽어 보세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