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손안의책(사철나무

카 모 군도 감상한 바 있습니다만 이 이 소설은 추리라고 보기엔 약간 무리가 있습니다. 소설 전반부를 사용해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 후 그 정의에 의거해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풀어나가는 소설이거든요. 즉, 제게 이 소설의 재미 포인트는 '추리'가 아니라 그 '세계'였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세계 자체가 아니라 뇌에서 정보를 취합해서 조합한 세계이고, 그렇기 때문에 '실제'와 '인식'이 다를 수 있다. 이게 소설 전반에서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썰을 풀어 나가고 그게 참 그럴 듯한 전개 자체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면,

역시 기독교 관련에 대해서랄까요 ← 요새 어째 이쪽으로 할 말이 많다;

작중에서 교고쿠 나츠히코는 교고쿠도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종교인은 본 적이 없다는 나이토에 대해 반박하는 중에) "ㅡ그럼 기독교는 어떨까요? 이 쪽은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신앙을 이룬 사람은 천국으로 불려가지요. 신에 대비되는 악마는 있지만, 이 쪽도 영혼이 어쩌고저쩌고 할 틈은 없어요ㅡ."

아니, 많은데요 (...)

세 례를 받지 않고 죽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영이고, 그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인 인간은 더없이 영적인 존재이며 영혼의 존재야말로 기독교의 기본 중의 기본임을 저렇게 간단히 무시하시면 곤란하다 이겁니다. 아니 애당초 육체가 죽어서 여기서 썩고 있는데 영혼을 무시하면 대체 천국과 지옥으론 뭐가 가 있다는 겁니까. 게다가 기독교의 핵심 중 하나는 부활이란 것도 있는데, 영적인 부분을 무시하면 이게 굉장히 난해해집니다. (더 자세한 신학적인 변론까지 필요할 것 같진 않으니 생략하겠습니다 (...))

..그래서 대체 왜 또 아는 체를 한 거냐 하면, 일단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저렇게 왜곡되어 있다는 걸 볼 때 '다른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갈지만 실은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문제랄까요. '맛의 달인'을 보면서 '오 이 작가는 참 아는 게 많구나' 이러다가 한국 편에서 한국음식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는 걸 보고 '어라 실은 다른 음식도 이렇게 오해하는 부분들이 많은 거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뭐 어차피 저 소설 자체가 가설에 의거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세계이니 그게 그렇게 문제만도 아닐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먼산)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이 소설이 판타지란 거죠. (...)

각설하고, 판타지건 어쨌건간에 글솜씨도 좋고 썰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훌륭합니다. 여하간 나름대로 일리는 있달까요, 이 '또 다른 세계'의 매력이 꽤 풍부한 편이니 이 쪽에 포인트를 두시면 꽤 재미있을 겁니다. 여하간 정통 추리소설과는 포인트가 상당히 틀리니까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