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결혼했어요'는 버라이어티다. 현실을 가장한 거짓이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내 동생은 처음에는 이 프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 프로를 재미있게 보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나도 처음에는 이게 거짓이라서 싫었는데, 보다 보니까 이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끼리 진짜 감정이 생기는 게 보여." 라고 한다. 물론이다. 그게 버라이어티다. 대본이 있고 연출이 있지만 그 안의 세부를 만들어 가는 것은 출연자들의 힘이다.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류의 버라이어티를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도 그와 같다.

그러나 나는 다른 버라이어티는 몰라도 '우리 결혼했어요'만은 즐겁게 볼 수 없었다. 그저께 저녁을 먹는데 동생이 이걸 보더라. 나는 이 프로가 싫었으므로 다른 걸 보면 안 되냐고 했는데 이걸 보려고 계속 기다렸댄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방에 돌아가 이니셜 D 만화책을 들고 나와 그걸 보면서 밥을 먹었다. 나는 채널을 억지로 돌릴 만큼은 싫어하지 않지만, 그걸 같이 봐 주는 것은 싫어할 만큼은 '우리 결혼했어요'를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아직, '결혼'이나 '가정'이 연예 프로의 대상으로 쓰이기에 적합치 않을 만큼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가정을 만들고, 고난을 함께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를 이해해 가면서, 말 그대로 '둘이 한 몸이 되고', 아이를 낳아 또다른 세대를 이어가게 하는 게 결혼이고 가정이다. 혹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쩌면 스킨십이다. 솔직히 그걸 하고 싶은 게 결혼의 큰 이유 아닌가. (물론 나는 혼전성교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입장이다. 더 이상 참기 힘들 만큼 상대가 좋아지면 결혼하는 게 좋다. 스킨십은 스킨십대로 있는 대로 다 하고서는 몇 년 지나 상대에 대한 열정이 식으면 헤어져버리고. 그러면 두 사람에게 남는 건 대체 무어냐. 결혼은 모름지기 서로에게 맛이 가 있을 때 냉큼 하고서, 살아가면서 서로 맞춰 가는 것이 도리··· ···뭐 이런 거야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우리 결혼했어요'는 내게는 그저 소꿉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무게가 없다.

한동안 넷에서는 가족놀이가 유행했다. 지금도 유행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넷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아빠'니 '엄마'니 '딸'이니 하는 호칭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친근감의 표현인 줄은 잘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호칭이 그렇게 단순히 쓰여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단순히 좋아서, 친근해서,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붙여도 좋은 호칭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관계에는 무게가 있다. 이 호칭들은 상대에 대해 충분한 책임과 도리를 다 할 것을 포함한다. 정말로 상대를 위해 줄 것. 상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존중하고 그를 위해 도울 것. 그가 어떤 고난을 겪게 되면 위로하고 헤쳐나갈 수 있도록 조력할 것. 그의 고통에 대해 내 고통처럼 아파할 것. 그게 가족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도 가족이 땅을 사면 기쁜 법이다. 아무리 자기 자랑을 늘어놓아도 내 어머니는 기뻐한다. (물론 진짜 아빠 엄마라도 도리를 전혀 다하지 않는 말종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좀 논의를 피하자)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은 상대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저 TV에 나온 사람들의, 그냥 두 명씩 붙여놓고 소꿉놀이 시키는, 결국 버라이어티인, 저 화면의 어디에 책임과 무게가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셈이다. TV 프로그램에 제대로 진실과 책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뉴스 프로에서조차 자신들의 시각과 입맛대로 진실을 호도하는 판이다. 한낱 연예 프로에 제대로 된 책임감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나는 불쾌하다. 많은 것들이 가벼워지는 시대다. 중심을 잡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만 같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