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썼다. 2005년 9월 23일에 사서 아직 쓰고 있으니 요즘 추세에 비하면 상당히 오래 쓰고 있는 셈이다. LG CYON LP3800P 모델인데, 속칭 지문인식폰이라고도 한다. MP3 재생도 가능하고 폰카도 130만 화소라 당시로서는 제법 괜찮은 모델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제법 튼튼하기도 하다.

다만 ① 한 번 호되게 바닥과 포옹을 한 탓에 카메라 렌즈 보호 플라스틱이 깨져서 사진 찍을 때마다 천으로 렌즈를 닦아 주지 않으면 사진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된다거나, ② 쓰다 보면 버튼이 안 눌리기 때문에 반 년에 한 번 쯤은 분해 소제해서 필름을 한 번 닦아 줘야 한다거나, ③ 배터리가 이제 버틸 만큼 버텨서 반나절이면 깜빡거리기 때문에 화면 밝기를 어둡게 하지 않으면 기나긴 하루를 보낼 수 없다거나 하는 사소한 문제가 있을 뿐이다. 덧붙여 메리트 중 하나인 MP3 재생기능은 이제는 내가 MP3 플레이어가 따로 있는 덕분에 쓸 일이 없어졌다.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원래 휴대폰에 전화나 문자 외의 기능은 그다지 잘 이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글쎄, 간이 메모 정도나 시계, 알람 정도는 좀 쓰긴 한다) 사실 저 정도의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③번의 배터리 문제가 대두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렇다. 이제는 슬슬 우리가 헤어질 때가 되었다. 현실에 대체로 만족하며 사는 나이지만 갈 데까지 간 배터리의 급격한 체력저하는 영 흡족하지 않다. 배터리를 새로 살 돈이면 소위 공짜폰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Farewell my lovely, Time to say "the long good bye". 이 년 반이 넘게 폰 하나를 썼으면 이제 바꿔도 괜찮잖아?

그래서 아까는 새로운 폰을 영입하기 위해 웹을 좀 뒤져보았다. 그런데 웬걸, LGT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보조금 계산이 안 보인다. 이상하다, 2년 이상 썼으면 보조금 꽤 받을 수 있을 테고 거기에 + 2년 약정쯤 하면 저렴하게 괜찮은 폰을 구입할 수 있을 텐데···

···세상 물정에 너무 어두웠다. 지난 3월 26일부로 보조금 제도가 사라졌다. 말로는 규제 폐지라지만 아무리 봐도 더 안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뭐냐 이 지옥은. 약정할인밖에 남은 게 없잖아. 뒷구멍으로 할인해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별로 그런 게 없어 보이고. 그렇다면 정식 대리점에서 사는 건 물건너갔다. 그러면 공짜폰을 살펴보자. 뭐가 있나.

물론, 나는 세상을 너무 얕봤다. 봐도 그 소리가 다 그 소리 같다. 게다가 나는 공짜를 잘 믿지 않는다. 본인들도 뭔가 남겨먹는 게 있어야지 세상에 진정한 공짜가 어디 있나. 그런 데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요새는 제대로 된 공짜폰이란 게 없단다. 철지난 재고나 좀 남았는데 안 팔려서 대리점에서는 아예 갖다 놓지도 않는대고. 웹에서 사는 건 아무래도 못내 불안하고. 답이 없다. 이런 시베리아.

그런데 돌아다니다 좀 웃긴 걸 봤는데, 폰을 사는 데 신규가입이나 번호이동이 기기변경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뭐냐 이 외계인들아. 이런 식이니 사람들이 폰을 바꿀 때마다 통신사를 바꾸지. 이런 멍청한 짓은 그만두고 한 통신사 오래 써 준 사람 우대하지 못해? ···하고 혼자 투덜거려 봐도 답이 돌아올 리 없다. 뭔가 신통한 방법이 있을 듯도 하지만 무지가 죄라, 돌아다녀 봐도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런 고로.

안 바꿀랜다 그냥. 돈도 없고 귀찮다. 나중에 돈이 여유롭게 생기면 새로 하나 제대로 된 걸 사고 말지. 어째 공짜폰이랍시고 나온 것들 기능을 보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보다 별로 좋아 뵈지도 않다. 배터리 좀 약해졌다고 내치려 해서 미안하다 나의 휴대폰아, 아무래도 네가 퇴역할 날은 금방 오지 않겠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