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감상/도서 2006. 2. 24. 13:44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필립 말로는 영웅이 아니다. 적당히 추리력이 있고, 적당히 몸이 좋은 사립탐정일 뿐이다. 더없이 인간적인, 밑바닥 인생이지만 밑바닥 인생이 아닌. 시니컬하지만 따스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혀낸다. 따라서 어쩌면 영웅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서 플롯이 대단하다고는 하기 힘들다. 어떤 의미냐 하면 '허억,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나!' 하는 경탄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걸 원한다면 애거서 크리스티 쪽이 나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추리소설로서 기본적인 추리의 즐거움은 가지고 있지만.

이 소설이 전해주는 매력은 사회를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 그 모습. 그리고 필립 말로라는 사립탐정의 매력적인 모습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드보일드. 간지가 좔좔 흐른다. 특별히 멋을 내거나 폼나는 대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렇다면 오히려 유치하겠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 특유의 분위기와 멋이 흘러넘치고 있다.

뭐, 쉽게 말해서 [남자다! 사나이다! 제기랄, 멋지잖아!] ..라고 외치며 읽게 된달까.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두근두근] 뭐 이런 것도 없지야 않지만. 애시당초 사건이 메인이고 탐정이 양념인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라고 말해도 그리 많은 추리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긴 힘들지만) 탐정이 메인이고 사건이 양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여하간 멋져버린다.



나는 책상을 돌아가 창고에서 4년 이상 묵은 버번 반 리터짜리 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병을 자세히 살폈다. 맘에 든 모양이었다.

"이 양반이. 이걸로는 나를 매수할 수가 없지. 그렇지만 당신과 함께 술 한잔 걸칠 생각을 하니 기분은 좋은데."

그 는 병을 따고 책상 위에 작은 잔 두 개를 올려놓은 뒤 조용히 술을 따랐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린 채 한 잔을 들어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는 단숨에 목구멍으로 쏟아부었다. 그는 술을 맛보고 음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거 아주 제대로 된 술이구먼. 그럼 내가 어떤 식으로 도와드릴까? 난 이 동네 길바닥의 갈라진 틈 이름까지 전부 알고 있지. 좋거니, 이 술은 그동안 관리가 정말 잘 됐어."

그는 잔을 다시 채웠다.

나는 그에게 플로리안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 연유를 말해줬다. 그는 나를 엄숙하게 응시하다가 대머리를 흔들었다.

"샘이 운영하던 가게도 깨끗하고 조용한 곳이었는데. 한 달 동안 누가 칼에 찔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플로리안이 한 육팔 년 전 백인들 술집이었을 때, 가게 이름이 뭐였습니까?"
"전광판은 비싸게 먹히는 편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마 같은 이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뀌었다면 맬로이가 뭐라고 말을 했겠죠. 그런데 그때는 누가 주인이었죠?"
(안녕 내 사랑, 38p에서 발췌)



대충 이런 느낌인데, 뭐랄까 간단히 말로 설명하기 힘든 포스가 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독이다.

으음, 이거 사긴 사야 할 텐데..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