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피트 (2disc)
조지 밀러 감독, 로빈 윌리암스 외 목소리 / 워너브라더스

※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주의하세요.

펭귄 제국 (왜 제국이냐면 황제 펭귄이라서)의 펭귄은 누구나 자신만의 하트 송 (Heart Song)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열정을 끌어내어 하트 송으로 완성시키고, 그들은 그 하트 송으로 상대에게 구애를 하고 그 하트 송이 맞는다면 결혼하게 됩니다. 펭귄 제국에 있어 하트 송은 필수이며 하트 송이 없는 펭귄은 펭귄이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 한 마리 예외인 펭귄이 있는데, 그가 바로 멈블입니다. 이 펭귄은 노래에는 전연 재능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그의 열정을 목이 아니라 몸으로 드러냅니다. 이른바- 탭댄스.


Shall we dance?


실제 탭댄스의 대가인 새비언 글로버 (Savion Glover)의 탭댄스를 모션캡춰해 만들어진 멈블의 탭댄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겨워지는 멋진 박자감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멈블은 타고난 훌륭한 탭댄서였고 그 부문에 있어서는 놀랄 만한 재능을 보여주었으나, 펭귄 제국에 있어서는 오로지 하트 송만이 중요했던 탓에 그는 사회의 이단아이자 아웃사이더가 되고 맙니다. 믿음직한 아델리 펭귄 친구들, 아미고스 (Amigos)를 만나고 멋지게 복귀해 예전부터 사랑해왔던 글로리아에게 탭댄스로 구애해 성공하지만, 노래가 아닌 형태의 하트송을 인정하지 않는 장로 때문에 멈블은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물고기가 없어진 이유가 그 같은 이단아 때문이라고 몰려진 것이지요. 그리하여 멈블은 물고기가 없어진 진정한 이유를 알기 위해, 또한 그것이 남극으로 최근 들어온 외계인 (Aliens)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상까지가 중반부의 내용인데, 말하고 싶은 걸 말하려다보면 어느 정도 내용에 대해 알려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를 했습니다. 물론 저 외계인이란 건 인간들을 말합니다. 무분별한 어획으로 남극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3D 애니메이션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주제를 뽑아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당신 자신이 되세요!' 라는 것으로, 하트 송이 꼭 노래이지 않아도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노래일 수도 있고, 춤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소설일 수도 있고, 혹은 기타 다른 그 어떤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는 그것을 찾아 살려내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 있는 삶이라고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말합니다. 또 하나는 위에서 조금 언급한 '무분별한 행동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하지 말자'는 겁니다. 이걸 좀 더 폭넓게 말하면 내 이득을 위해 다른 존재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가 되지 말자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이런 걸 보면 자기를 한 번쯤 다시 돌아볼 수 있어 좋습니다.

-라고, 이런 게 표면적인 이야기입니다. 사실 뭐 이런 건 됐습니다. 물론 아무래도 교훈은 있어야 되니까 말하긴 했는데,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이 애니에서 이런 거 사실 뭐 그렇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해 보면, 이 애니는 말하자면 음악 애니메이션입니다. 제목에도 써 놨듯이, 뮤지컬입니다. 펭귄들이 나와서, 남극 대륙과 바다를 무대로 노래를 부르고 화려한 영상을 피로합니다. 펭귄을 좋아하시는 분,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 아니면 양자 다 좋아하시는 분, 어느 쪽이든 해당된다면 이 애니는 매우 볼만합니다.

성우진부터 상당히 빵빵한데, 멈블 역에 프로도 배긴스.. ..가 아니라 엘리야 우드 (Elijah Wood), 라몬과 러브레이스 역에 로빈 윌리엄스 (Robin Williams), 글로리아에 브리트니 머피 (Brittany Murphy), 멤피스 역에 휴 잭맨 (Hugh Jackman), 노마 진에 니콜 키드먼 (Nicole Kidman), 장로 노아 역에 휴고 위빙 (Hugo Weaving)입니다. 다른 역할도 꽤 쟁쟁한 사람들인 듯 합니다만 제가 잘 모르니 제끼고, 이 사람들의 음성 연기가 매우 뛰어날 뿐더러 노래가 아주 좋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곡 중에서는 아델리 펭귄 라몬으로서 로빈 윌리엄스가 부르는 A Mi Manera (My Way의 어레인지 버전, 흥미가 동한다면 Gipsy Kings의 A Mi Manera를 한 번쯤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덧붙여 아델리 펭귄 '아미고스'는 스페인풍으로들 노는 펭귄들입니다)도 상당히 멋지고, 글로리아로서 브리트니 머피가 부르는 Somebody to love (네, Queen의 그 명곡입니다)도 훌륭합니다. 물론 뮤지컬이니만치 영상과 함께 하니 감동이 백만 배죠.

Somebody to love를 부를 때의 한장면. 오로라와 함께.


노래가 자주 나오는 뮤지컬 애니다보니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이런 노래들이 아니라, 이 영화 음악 자체에 대해서라면 (영화 음악의 비중이 그리 높은 애니는 아닙니다만), 이 음악의 작곡자는 존 파웰 (John Powell)입니다. 저에게는 <본 아이덴디티> 영화 음악의 작곡자로 이름이 익숙합니다만, 찾아보니 <페이스 오프>나 <개미>, <엘도라도>, <치킨 런>, <슈렉>, <아이 앰 샘>, <로봇> 등등의 영화 음악도 작곡한 모양이더군요. 이래저래 말이 많았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겁니다: 음악 수준이 상당하며 눈과 동시에 귀가 즐거워지는 애니입니다. 이런 걸 좋아하시면 한 번쯤 보실 가치가 있습니다.

여담으로 DVD 특전입니다만 디스크 하나를 따로 할애해서 특전을 넣어 주었더군요. 제작 과정이라거나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새비언 글로버의 탭댄스는 여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고전 애니메이션으로 <I Singa To Love>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 역시 틀에 갇혀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종내는 인정받게 된다는 점에서 <해피 피트>와 같은 궤를 달리더군요.

정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이 애니에서 '인간들'의 무분별한 어획이 해결되게 되는 부분이 멈블의 탭댄스를 통해서인데 제가 까칠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걸리더군요. 과연 펭귄이 탭댄스 좀 춘다고 인간들이 깨닫고 변화될 것이냐에 대해서 저는 아무래도 좀 회의적입니다. ..만, 어차피 펭귄이 탭댄스를 추는 판에 이야기 해결이 그런 식으로 잘 풀려나간다고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 주제를 내세우고는 있어도 주제가 그렇게 중요한 애니도 아니고..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였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