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 출처는 투비컴퍼니 홈페이지


이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은, 원체 서구에서는 유명한 연극인 모양입니다. 1980년에 쓰여진 이 희곡은 원제가 <존경하는 엘레나 세르게예브나>이며 류드밀라 라쥬몹스까야라는 러시아 극작가/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입니다. 구조 자체는 간단한데, 졸업 시험을 잘 못 본 4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시험 점수를 고치기 위해 엘레나 선생님의 집으로 찾아와 벌어지는 대립을 다룬 희곡입니다. 말하자면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엘레나 선생님의 집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고, 그 하룻밤 내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연극을 보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기대는 충분히 만족되었죠. 만족되었을 뿐 아니라 넘치고도 남았다고 표현해야겠습니다. 이 연극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선생님과 학생들의 대립으로부터 끌어내고 있는데, 결코 딱딱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며 역동적입니다. 연극이니만큼 당연한 일이겠지만 연극적 웅변들이 있더군요. 이 연극에서 나온 담론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동기로 이 연극을 보게 되었느냐 하면 제가 청강하고 있는 서연주 교수님의 문학세미나 수업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이 연극을 다함께 보러 가는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연극을 보기가 쉽지 않죠. 기껏해야 영화를 보러 가는 정도가 일반적인 문화생활일 테니까요. 어쨌거나 그 수업이 저에게 연극을 보기 위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덕분에 저는 앞으로도 좋은 연극을 좀 더 찾아 보게 될 듯 합니다. CD를 듣는 것과 공연에 직접 가는 것이 다른 것만큼, 연극에서 느껴지는 현장감과 몰입도- 일치감에는 영화와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이런 맛을 알아 버린 이상 또다른 연극도 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연극이란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줄 만한 연극이었다는 소립니다.


이 연극이 있었던 소극장 '축제'의 외관입니다. 이 사진부터는 직접 찍은 것입니다


소극장이라는 어감 자체가 주는 로망이 있습니다. 극단이라는 이름에서도 뭔가 예술혼이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고요. 어쩌면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작가가 그려낸 순정만화계의 걸작 <유리가면> 덕분에 연극에 이미 호의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던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연극이 공연되는 장소인 소극장에 들어가 보니 의외로 자그마한 데다 의자 또한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는데도 '오오 연극 오오' 거리면서 '나도 드디어 연극을 보고 있어!'라고 혼자 감동에 젖고 있었습니다. 사실 의자에 대해서라면, 엉덩이를 제대로 의자에 붙이고 정자세로 앉으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저 역시 요즘은 집에서나 대중교통에서도 확실하게 정자세로 앉아 있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하는 모양이더군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건 다 엉덩이를 의자에 반쯤만 걸치고 느슨하게 척추를 새우처럼 굽힌 자세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 거예요. 척추 굽으면 굽어진 만큼 내장을 척추가 짓누르기 때문에 안 올 병이 온다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바른 자세에 바른 정신!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연극 자체의 내용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바대로, 시험 성적을 고치기 위해 네 명의 학생들이 엘레나 선생님을 찾아 오는 것이 이 연극의 내용입니다. 엘레나 선생님은 원칙주의자에 이상주의자이며, 네 명의 학생들은 각기 스타일이 다르지만 이른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선 적당히 타협도 할 줄 알고 더러운 일도 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 말입니다. 하지만 엘레나 선생님은 시험 성적을 고치기 위해 시험지가 들어 있는 금고의 열쇠를 내달라는 그들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냥 돌아갈 리 없으며, 선생님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어느 쪽이 승리할까요?

정의와 옳은 것을 추구하고, 그로써 세상을 낫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은 '어차피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며, 정직하게만 살다가는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도 빼앗긴다'라거나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라'는 학생들의 말 앞에서 한낱 이상으로만 치부됩니다. 이 학생들 중에서도, '이상'을 맹공하는 선두주자가 바로 발로쟈입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좋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럴 수 있고 극중에서 결국 그렇게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무슨 행동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당연히 스포일러가 될 테니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연극의 결말이 사실 상당히 열린 결말이라는 것만은 말해도 좋을 것 같군요. 기실 이 연극에서 '대체 누가 승리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연극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단지 이 연극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며 현실의 우리가 실제로 겪었을/겪고 있을/겪게 될 대립이라는 점입니다. 이 연극은 발생하는 사건들과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학생들 중에서도 발로쟈는 특별합니다.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을 몰아붙이는 중에도 결국 양심으로 고통받으며 점차 선생님의 이야기와 태도에 감화되어 가는데 반해, 발로쟈의 경우에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친구들조차 수단으로 확실하게 활용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사실 그는 시험을 못 본 것도 아니었으며 엘레나 선생님에게서 원하는 것조차 아무 것도 없었으므로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극중에서 그는 말합니다. 자신은 이후 외교관을 꿈꾸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통해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험으로써 그녀를 시험하고 있다고. 실제로 그 정도로 지독하게 양심이 결여된 이를 쉽게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러한 그의 존재는 엘레나 선생님에 반하는 한쪽 극단으로 선과 악의 대립과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는 이 희곡을 전개시키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실 발로쟈가 한 가지 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이 연극은 처음에는 무대 위의 공간을 분명하게 사용하여 '저 공간 안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보여주지만, 중간의 어떠한 사건을 기점으로 그 공간은 무너집니다. '열쇠'를 내어줌에 있어 단지 시험성적을 올리는 것만이 아닌 '이상의 파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보다 강하게 부각되고, 무대 위에서 방과 벽이 존재하던 것조차 무너지며 이제 그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합니다. 그리고 발로쟈는 객석으로까지 이동해 옵니다(*1). 이제 관객들은 더 이상 그저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기만 하기 어렵게 됩니다. 발로쟈는 객석으로 넘어와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우리와 같은 시점과 방향으로 바라보며) 무대 위의 엘레나 선생님에게 '당신이 말하는 이상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깨달으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현실의 우리 자신들이 드러내었건 드러내지 않았건 그의 가치관에 어느 정도건 동조하고 있었으리라는 점입니다. 그 모습을 통해 이 연극은 보다 강하게 우리에게 질문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설 것입니까?"

세세한 부분으로 파고든다면 좀 더 할 말이 많겠습니다만, 결국 이 연극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기본적인 메시지는 저런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극중에서 학생들은 선생님을 호칭해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이라고 수십 번이나 말하는데, 그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현실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꿋꿋히 지키는 그녀를 '존경'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또한 동시에 '현실을 보지 못하는 당신이 정말 존경스럽군요'라는 조롱의 의미도 됩니다. 당신도 이 중 한 가지 의미를 택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녀를 어떻게 '존경'할 것인가를.


*1) 발로쟈만이 객석으로 이동했다는 부분: 엄밀히 말하면 제일 마지막에 배우들이 퇴장할 때, 무대를 통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객석을 통해 들어와 나갑니다. 이 점 또한 왜 하필 객석으로 나갔는가를 생각해 보면 '발로쟈가 객석으로 침입해 왔던' 이유와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을 낼 수 있겠습니다만, 여하간 그 전까지는 발로쟈만이 객석과 무대를 오가는 존재이므로 그를 특별하게 다룰 필요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서연주 교수님의 사회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무대에 보이는 중 왼쪽에 따로 떨어져 선 사람이 서연주 교수, 앉아 있는 분들은 왼쪽부터 순서대로 랼랴 역의 박수민, 빠샤 역의 서제광, 비쨔 역의 김영조, 엘레나 세르게예브나 역의 박현미, 발로쟈 역의 장준호, 그리고 제일 오른쪽은 이 희곡의 번역 · 연출을 맡은 최범순입니다. (존칭생략)

사실 이 간담회에서, 위의 감상에서 말한 '발로쟈만이 객석으로 침입해 온 의미'를 한 번 물어 보고 싶었습니다만 모처럼 저 질문을 머릿속에서 정리했을 때는 이미 간담회 시간이 다 지나 버려서 (배우분들의 시간이 그리 많으신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었죠)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마 제 해석이 틀리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해석은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요. 그리고 여러분 역시 이 연극을 보면 여러분 나름대로의 해석과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요.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