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추는 억지춤 또는 어린아이들의 십자군전쟁
커트 보네거트 지음 / 새와물고기

이 책을 읽을 때는 단 두 가지만 신경써 봅시다: "그렇게 가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되는 거다". 삼차원이 아닌 사차원에서 살아가는 이 책의 캐릭터 빌리 필그림에게 시간이란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끌려갔던, 끌려간, 혹은 끌려가게 될 트랄화마도르에서 시간이란 영원한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의 차원에서 존재하며,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죽었다고, 무언가가 멸망한다고 해서 크게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슬픈 순간도 행복한 순간도 영원하지 않은 동시에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이 마치 실에 꿰인 구슬처럼 다른 순간을 따른다는 개념과 한번 지나간 순간은 영원히 지나가 버린 것이라는 지구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p51) 책의 구성 자체도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보통의 책에 익숙하다면 이 책은 머리가 아플 겁니다. 여하간 시간이란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까요.

사진이 없어서 찍어 올립니다. 이 책입니다


자유 의지 같은 것은 없으며, 어떤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은 그 순간 그가 그렇게 행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는 겁니다.

이 런 식의 시각도 나름 꽤 신선합니다. 좀 머리는 아프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시간이란 관념이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의 여러 구절들이 그것을 시사하죠. 뭐 이건 언젠가 좀 체계적으로 연구를 해볼까 하는 부분입니다만, 말 그대로, 시간이란 개념은 피조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이것과 동시에 자유 의지라는 개념이 겹치면 굉장히 복잡한 부분으로 파고듭니다만, 아직 이 부분에까지 세세하게 썰을 펼칠 내공은 없으니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여하간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저런 시각들은 인간에 대해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그렇다고 딱히 실망하는 듯이 보이지도 않는 오묘한 입장을 보여 주고 있는데, 삐딱한 블랙 유머가 여기에 조미료를 더합니다. "그러나 캐딜락의 뒷부분은 자동차 수리공이 꿈속에서 보면 몽정을 할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p242)라거나, " 그녀는 멍청했지만, 아기들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유혹을 주는 사람이었다. 남자들은 그녀를 보면 그녀를 당장 아기들로 가득 채워 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아기를 하나도 낳지 않았다. 그녀는 피임을 하고 있었다" (p227) 라는 식의 문장 말이지요.

읽는 방법에 따라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쓱쓱 읽힐 수도 있는 글입니다. 저로서는, 아무튼, 아래 문장이 와닿더군요.

"하나님 제게 평온을 주셔서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용기를 주셔서 가능한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항상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p92, 또한, p273)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