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적을 읽고 있노라면 너무 당연한 듯이 진화론을 기저에 깔고 논의를 펼쳐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진실'인 것마냥 절대적인 신뢰를 쌓고 있으니 기독교인이며 창조론자인 나로서는 걸릴 수밖에. 인문서적이라고 해도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최근 읽기 시작한 건 일단 학교 수업 교재이기 때문에 읽는 <한국문학통사>와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총, 균, 쇠>의 두 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아직 다 읽었을 리는 없고 서두만 읽었다. <총, 균, 쇠>는 증보면이나 추천사, 참고 문헌이며 인덱스 등을 합쳐 칠백 페이지가 넘어가는 꽤 두꺼운 책이다. 사실 프롤로그 (서문) 읽는 데만 사십 분이 걸렸다. 좀 더 정신이 말짱할 때 읽으려고 그 다음은 아껴 두고 있고, <한국문학통사>의 경우는 내가 구입한 제 4판이 총 여섯 권짜리 책인데 그 중 제 1권만 구입한 상태이며 그 중 1/3 정도를 읽었다. 제대로 읽은 건 아니지만 서두는 읽은 셈이고 내가 지금 쓰려는 내용을 위해서는 충분하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발전을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를 거쳐 청동기, 철기 등으로 이행해 온 것으로 말하고 그것이 정설이다. 초창기에는 수렵만이 있었고 이후 농경 사회로 접어들며 식량이 충분해지고 여유를 갖게 된 인간들이 다른 것에도 눈을 돌려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는 시각도 현대에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진다. 석기 시대, 초창기의 인간은 원숭이에서 갓 진화했으며 아직 지성이 충분치 않았기에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는 생각도 진실처럼 여겨진다. 인간은 점점 지성도 지식도 진화했으며 문화의 발전 속도는 제곱의 상승 곡선을 그리고 발전해왔다고 여긴다. 소위 '7대 불가사의'는 그런 이유로 생겨났다. 그 시대의 인간에게 그런 지성이 있을 리 없는데 놀랍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그것을 진화론에 빠진 인간의 오만으로 여긴다. 물론 창조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단지 나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 이글루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상당수는 아마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지금 이 글을 그저 '또 하나의 이론'으로 받아들인다면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고 말해 두겠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이 생각이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경의 제일 첫 문장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이것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절대진리이자, 이 세상의 존재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간단하고 확고한 문장이다. 또한 동시에 '태초'라는 단어를 통해 신이 영원으로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을 창조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쨌거나, 종교와 그 경전을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납득이 안 되겠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이것이 진실임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여하간, 지금 이 글은 성경의 내용을 밝혀 설명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므로 대체적인 설명은 지나치도록 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만 일단 가볍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처음 탄생할 때부터 분명한 그 형태를 이루고 창조되었다. 원숭이는 원숭이, 인간은 인간이다. 주의할 점은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종 내에서의 변화, 요컨대 소진화도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이 부정하는 것은 종 자체가 다른 종으로 변하는 대진화다. 어줍잖은 과학지식을 빌려 이것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것을 말해보자면 일단 DNA의 존재란 것이 한 종이 그 종으로서 기능하고 유지되며 번식될 수 있기 위한 물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더불어 우리가 흔히 보듯 돌연변이는 보통 생명력이 약하거나 종으로서 같은 종 내에서 배척되며, 그러한 존재가 자손을 만들고 무난히 그러한 돌연변이를 제공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자바 원인이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은 무엇인가 하는 주장이 대두될 수 있겠으나, 창조론에서는 그것을 그저 종 내에서의 기형으로 본다. 덧붙여 화석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 설명되는 것과 다르게 이해하는데, 창조론에서는 대체로 이것을 '노아의 홍수' 때에 물에 휩쓸리고 강한 압력과 급격한 환경 변화로 만들어진 유물로 본다. 물론 석탄이나 석유도 그러한 이유에서 생겨났다. (알다시피, 석탄이나 석유도 인공 제조가 가능하다. 다만 그러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가 석탄이나 석유로 창출되는 에너지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만들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죽어서 시체가 되면 썩어서 풍화되지 화석이 되지는 않는다. 화석이 되기 위해서는 오로지 급격한 환경 변화와 압력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화석들은 노아의 홍수 때에 천지가 뒤흔들리고 모든 것이 뭉그러지는 과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지층에 쌓여 있느냐가 그것이 어떤 시대에 살았는지를 말해 주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순서대로 퇴적된 것이 아니라 돌연 모든 것이 뒤엉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에서 굳이 써야 하는 내용은 아니긴 하지만 보통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으므로 간략하게 노아의 홍수에 대해 설명해 볼까 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감상을 썼을 때 써 둔 내용이 있으므로 일단 옮겨 와 본다: "태초에 지구는 완전히 물로 뒤덮여 있었고, 궁창 (빈 공간- 하늘이라고 생각해도 무방)이 생겨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고, 궁창 아래의 물- 즉 하늘 아래의 물이며 지구를 뒤덮고 있던 물은 궁창이 생긴 이후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한 곳으로 모이고 그것이 바다가 되고 뭍은 육지가 됩니다. 즉 태초의 지구는 바다와 육지, 하늘,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지구 전체를 덮는 수막이 있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지구는 온실과도 같은 상태였으며 딱히 북극과 남극이 과도하게 춥지는 않았으리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이 극지방에서 따뜻한 곳에서만 살아가는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이유라고 봅니다) 이 수막, 궁창 위의 물은 노아의 홍수 당시 모두 쏟아져 내렸으며 그 물들은 지하로 유입되었거나 극지방에서 얼음화되어 갇혔다고 가정됩니다.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자 그 전까지 태양빛을 가로막던 것이 사라져 지구의 환경은 크게 변화되었으며, 햇빛이 바로 내리쬐 반사되는 덕에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무지개가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개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덧붙여 말하면, 공룡의 멸종도 창조론에서는 이 노아의 홍수 이후 급격히 변한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노파심에 덧붙여 두면, 기본적으로 창조론의 견해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그저 나의 생각이나 상상이 아니며 '한국창조과학회'의 성과를 통해 얻은 것이라고 말해둔다. 창조과학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도 있지만 창조론에 세계의 이해 바탕을 두고 과학적으로 이 세계의 현상을 풀어 나가려는 시도는 충분히 인정해야 옳겠다. 여러 자료가 있으나 내가 기본적으로 이해에 바탕을 둔 책은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 (국민일보사, 1994)이다. 지금도 이 책을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살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만큼 쉽게 잘 쓰여진 책이므로 창조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은 참고하셔도 괜찮겠다. 지금은 더 좋은 다른 책이 나와 있지 않을까도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뻔뻔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이 포스트는 원래 간단한 Neissy의 단상 비슷한 글로 할 예정이었다. 쓰다 보니 왠지 거창하게스리 길어지는 분위기라 나도 당황 중이다. 그냥 개관 스러운 글이라고 이해하시라. 나중에 좀 더 이런저런 것들에 이해수준이 높아지면 보다 제대로 써 볼 생각도 있다)

좀 옆으로 샜는데, 창조론이 그냥 사상이나 신화가 아니라 이것 역시 과학이 부정하지 않는 이론임이 말하고 싶었다. 어쨌든, 이야기를 되돌려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여러분도 모두 알다시피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이었다. 우선 아담을 보자.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로 짐승을 데려 오는 즉시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한 성찰이 없고는 불가능하다. 아담의 이해력은 어떤 존재를 보자마자 본질을 파악할 정도였던 것이다. 거기에 하와를 보면, 그녀는 흙보다 좋은 소재인 뼈를 가지고 창조되었으며, 아담의 도우미로서 창조되었다. 도우미란 도움을 당하는 사람보다 더 능력이 좋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담의 남는 뼈로 옛다 여자다 하고 하와를 만든 게 아니라, 더 훌륭한 존재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최초의 인간은 결코 지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존재였으며, 신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선악과를 통한 타락 이후 인간은 죄성에 갇혔고, 그들이 본디 지녔어야 할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대가 거듭되어 가면서 심화되었다. 말하자면 현대인들이 수련을 얻어 지닐 수 있는 어떠한 통찰이나 능력이란 태초의 인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능력의 편린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고대인들은 지성이 발달하지 않았다? 무슨 섭섭한 말씀을, 고대인들이 현대인들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다. 세대가 전해 내려오며 인간 자체의 능력은 모두 조금씩 쇠락해 가고 있지만, '지식'이 전승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문학통사>의 이러한 말이 아쉬운 것이다. "구석기시대에 신화나 서사시가 생겨났던가는 의문이다. 이야기나 노래를 길게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고, 사고형태가 복잡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p52) 이것을 진화론적이 아니라 창조론적인 견지에서 보면, 사고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뛰어났으되 아직 '형식'이 생겨나지 않았을 뿐이며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석기나 신석기에 대한 담론을 조금 더 해 보자. 과거의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났으며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전승된 기술이나 지식이었을 뿐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보인다. 7대 불가사의는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며,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발전하는 과정은 수천 년은 커녕 수백 년도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총, 균, 쇠>에서는 기술이 전승되지 않은 곳인 경우 최근까지도 석기를 쓰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어떤 곳은 철기 시대에 접어들었어도 다른 곳은 여전히 석기 시대일 수 있었다. 소위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의 변화는 아주 순식간에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인간의 지성이 초창기에 오히려 훨씬 뛰어났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 변화의 상세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그 책을 좀 더 읽고 정리해서 말해야겠지만, 지금의 포스트는 가벼운 담론이니 일단 프롤로그에서 얻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총, 균, 쇠>를 읽고 얻은 것은 나중에 도서 감상으로 후술하겠다. 사실 이 포스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총, 균, 쇠>를 읽고 써야 옳았겠지만, 일단 이러한 개념이 있다는 것을 정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싶다.

자, 과거에 대한 '상식' 중에 또다른 당연한 것이 수렵사회가 농경사회보다 원시적이며, 농경사회가 된 것은 혁명이었고 인간 생활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래서 '농업혁명'이라고까지 일컫는다는 것이 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이르는 포인트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어 보자, 아담이 타락하자 여호와 하나님은 말한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7-19) 인간 1대만에 이미 농사 나왔다.. 더불어 아담의 장남인 가인은 아담 뒤를 이어 농사를 지었고 차남인 아벨은 양을 쳤다. 인간 2대만에 유목도 나온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고 하니, 수렵이나 유목이나 농사는 인간의 생활 환경에 따라 가장 알맞은 생활 방법을 찾은 것이지 오랜 시일이 걸려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불어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유랑자가 된 이후,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창 4:16-17) 성도 쌓았다. 동굴 생활에서 초막 생활로 발전하고 거기서 벽돌 나오고 이런 게 아니라, 이미 인간 2대만에 성도 쌓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 인간의 지성이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 영판 다르다.

말한 김에 조금만 더 말해 보자. 창세기 4:16-22를 보면,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최초의 인간인 아담 이후로 몇 대 되지도 않아서 수금과 퉁소며 동철을 다루며 각양 기계를 만드는 사람까지 다 나온다. 보통의 통념과는 다르게 무시무시하게 문화 발전 속도가 빠르다.

사실 약간은 조심스러운 주장이지만, 이 세상이 창조된 지 실제로는 육천 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말도 있다. 창조 후 노아의 홍수로 한 번 모든 것이 리셋까지 이천 년 이하, 또한 바벨탑과 언어의 혼돈으로 사람들이 전 세상에 흩어지고 현재까지 사천 년 정도. 실제로 역사란 것들이 그렇게 오래 된 일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문명의 발전 속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시무시하게 빨랐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진화론측 과학자들이 말하는 연대측정법인 방사성 탄소 연대는 실제로 그리 믿음직한 것은 아니다. (<총, 균, 쇠>에서는 비보정 방사선 탄소 연대가 아니라 보정 방사선 탄소 연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어느 쪽이든 딱히 신뢰는 안 간다)

주절주절 말이 길었는데, 결국 결론을 내 보면, 이러한 창조론적 세상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나로서는 과거에 대해 전혀 딴소리를 하며 논의를 발전시키는 진화론적 사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소리가 되겠다. 뭐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하기 위해 퍽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어쨌거나 나는 진화론을 기저에 깔고 펼치는 논의들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결국 그것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창조론자들이 창조론적 시각을 가지고 이런 인문/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게 아쉽다. 대체 왜 소명 (calling, 신의 부르심 정도?)을 받은 사람이란 대체로 목회 쪽으로만 몰려가는 것인가. 창조론을 바탕에 두고 펼치는 인문이나 과학, 이거 얼마나 좋은가.

그러니 결론은 불평이었다. 불평하는 김에 좀 체계적으로 불평해 보자 해서 길어진 포스트였는데, 끝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봐 주신다면 좋겠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