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문학동네

우리는 시간이 많을 때에는 시간의 귀중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바빠 잘 시간이 나지 않을 때 오히려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시간을 아껴 쓰려 하죠. 물론 시간만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것에도 그러합니다. 풍족하고 여유가 있을 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항상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 뒤에야 비로소 그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지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바로 그러한 소설입니다. 젊고 활기 넘치는 여성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살아나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서 깨어납니다. 의사는 그녀의 자살의 후유증으로 심장에 회저 (壞疽)가 생겼으며 그로 인해 닷새에서 일주일이면 심장 박동이 정지하고 말 것이라는 선고를 합니다. 자살에는 실패했지만 이제 얼마 되지 않아 확실한 죽음이 찾아올 터이므로 그녀는 기뻐했을까요?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으며, 하루하루가 지남에 따라 확실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에 그녀는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요. 죽음을 우리는 멀리 생각하며, '나'와는 먼 곳에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실감한다면 '하루', 또한 지금 살아가는 '현재'의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베로니카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역설적이게도, 확실한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히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말처럼, 지금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베로니카가 깨어난 곳은 정신 병원입니다. 미친 사람들이 있는 곳이죠. 미쳤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하는 기준을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미친 사람입니다. 다수가 당연하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어 보통 말하는 '평범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 그러나 평범이라는 말은 통계의 표준치만큼이나 모호한 개념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신은 사람을 모두 똑같게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개성이 있으며 각기 흥미를 느끼는 분야와 즐거움을 느끼는 분야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암기를 잘 하고 어떤 사람은 창작을 잘 하며 어떤 사람은 머리를 잘 쓰고 어떤 사람은 몸을 잘 씁니다. 당연히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어야 옳을 사람들을 일괄적인 기준으로 억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실 문제는 이 점입니다.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거나- 다시 말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는 부분에 맞게 살아가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그 기준에 들어맞지 않으면 미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일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정말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할 사람이 그러지 못하고 엉뚱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들 그러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그러는 것이니까.

그러나 다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또한 모두 다릅니다. 어떤 기준과 같게 살아야 할 강박감을 자신에게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하나의 기적과도 같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