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방글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부천시에서 주최해 가격이 저렴한 연주회였지요. 연주곡은 말러 심포니 6번. 저는 못 들어봤던 곡이었기 때문에 번스타인 (Leonald Bernstein)의 뉴욕필 연주를 미리 구해 사흘 정도 줄창 듣고 예습한 후에 갔습니다. 중동역에서 내려 부천시민회관을 찾아가는 데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시간도 여유 있었고, 우리는 B석, 2층의 마열 17번- 좌측면에서 내려보는 형태로 오케스트라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만.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이제부턴 반말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분위기를 싹 바꾸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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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대재앙이었다



시 주최이기 때문에 가격이 싸서 우리 같은 가난뱅이도 갈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이놈저놈 다 왔다는 게 문제였다. 가족이 오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그리고 그 가족에 당연히 포함될, 초등학생 연령의 어린이도 나는 괜찮게 생각한다. (초등학생 이하는 입장 불가인 모양이더라) 시끄럽게 떠들고 "저거 언제 끝나?"라고 울부짖지만 않는다면야 지겨워서 비비적대는 거 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어릴 땐 클래식 별로였다. 하물며 가족 단위로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을 어린이들이야 돌아다니고 난리치지만 않는 것만도 어디냐.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내가 앉은 좌석은 좌석 배치 자체로는 제일 좌측의 좌석이었는데, 그 오른쪽 바깥은 카방글이 앉았고, 그 바로 왼쪽에 내가 앉았다. 내 바로 앞에는 남자 꼬맹이 하나가, 그 꼬맹이 왼쪽에는 여자 꼬맹이 하나가, 그리고 저 남자 꼬맹이 오른쪽에는 다시 뽀글머리 할머니가 앉았다. 시작되기 거의 직전에 내 왼편으로 20대 초반쯤으로 생각되는 청년놈 하나도 기어들어왔다. 자, 멤버가 모두 모였다.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말러 6번은 총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이 20분 가량, 2악장이 10분 가량, 3악장이 15분 가량, 4악장이 30분 가량 된다. 그리고 이 부천필 제 110회 정기연주회에서는, 인터미션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눈치챌 수 있을 텐데,


“클래식에 조예 없는 사람의 집중력은
1악장을 듣는 것만으로 모두 고갈되었다”
-Neissy Lee, 2007년 부천에서의 발언



아이들이 지루해 죽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기특한 아이들이었다. 몸을 비비 꼬는 듯 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강철 같은 인내심으로 말러 6번을 견뎌내고 있었다. (말러 6번은 나름 화려한 편이지만, 2악장과 3악장은 좀 잔잔하다. 오케를 실제로 본다는 흥미로 버텨 낸다고 해도, 관심 없는 사람에겐 1악장만으로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악장부터 (아니 1악장 후반부터였나?) 문제가 한 가지 발생하기 시작했다. 뽀글머리 할머니의 대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가 지루해서 몸을 흔들어대며 눈을 찌푸리게 했냐고? 그렇지 않다. 그 할머니는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었으며 말러 6번을 즐겁게 감상했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그 분은 몸을 너무 곧추세웠다



그것도 의자에 등을 대고 세운 것도 아니고 등을 의자에서 좀 떨어지게 해서. 그러면 뒤에 앉은 나에게는 무슨 일이 발생하느냐. 오케스트라를 내려볼 수 있는 시야의 아랫부분에 거대한 장애물이 생긴다! 정준하도 아니고 이놈의 뽀글 헬멧 때문에 나는 지휘자 모습이나 콘서트 미스트리스가 보이지가 않는다. 팔자에도 없는 맷돌춤을 추면서 오케스트라를 감상해야 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뒷사람도 좀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orz

이것이 문제의 전부였는가? 그럴 리가 없다. 진짜 재앙은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이십대의 남자놈이었다. 이놈은 혼자 왔는데 난 그래서 음악을 사랑하는 놈일 줄 알았다. 물론, 이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으며 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이 자식은 나이는 분명 이십대였는데 클래식을 즐기는 마음이나 하다못해 인내심은 초등학생의 그것보다도 못했다. 이제부터 이 자식이 내 옆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보면 이러하다.

우선 첫번째, 프로그램 팜플렛을 부채처럼 연신 부쳐댔다. 이걸 클래식 공연 할 때 옆에서 당해 보면 알 테지만 무지 거슬린다. 소리가 안 나면 음악에만 집중해서 넘어가 주겠는데 종이가 살짝 구겨질 때 나는 특유의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계속 난다. 그렇다고 이 공연장 안이 더웠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에어컨 틀었고 약간 시원했다. 그래도 거기까진 바다와 같이 넓은 내 인내심으로 감당해 주겠는데, 좀 지나자 이 씨베리안허스키자식은 핸드폰을 꺼내서 문자질을 시작했다. 또도도도도도도. 클래식 공연을 듣는 중에 바로 옆에서 핸드폰 액정 특유의 불빛이 켜지고 핸드폰 버튼 음이 들려온다. 앞에서는 헬멧이 시야를 가리고 옆에서는 불협화음이 계속 들려온다.


무쌍난무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팔꿈치로 놈의 안면을 후려갈기고 핸드폰을 뺏어서 저 앞 벽으로 날려서 뽀개버려!"라는 마음 속 악마의 제안이 매력적으로 들려올 때쯤, 어느새 다행스럽게도 근처로 온 안내원이 "여기서 핸드폰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아아, 이 지옥에도 천사는 있었다. 남자놈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대신 또다시 팜플렛 부채질을 간헐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구에 온 목적이 뭐냐 이 외계인같은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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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존대말 포스팅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여하간 저러한 연유로 불쾌지수가 극도로 높았고, 그 때문일지 아니면 원래 그랬던 것인지 부천필의 산만한 (...) 모습이 슬쩍슬쩍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체로 보기 괜찮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듯한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만 안 그런 것 같은 연주자도 있었습니다. 한 호른 연주자는 뭔가 호른이 그제 와서 마음에 안 들었는지 뭔가 문제가 있는 투로 호른을 만지작대며 연주에 집중을 못 하기도 했죠. 전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지만, 뭔가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듯이 툭툭 튀어나오는 연주자의 나태한 듯한 모습들이 은근슬쩍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건 심벌즈 주자. 뒤에서 왜 그리 부시럭대? 관객들이 하품을 하는 것도 슬퍼해야 할 마당에 당신이 하품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 그리고 연주 중에 어딜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거며 잡담은 또 왜 하는 거냐. 다 보인단 말이다. ..랄까 존대말 포스팅으로 되돌린다면서 또 반말 포스팅이 되었군요. 여하간 뭔가 사소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 대인배의 정신이 보이는 연주회였어요 하아..

지휘자인 임헌정 씨를 보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역동적이고 간혹 폴짝 튀어오르는 듯한 동작을 하기도 했는데 말러 6번을 즐기는 느낌이 전해져서 보기 좋았지요. 현악 파트는 적어도 제가 듣기로는 전반적으로 모두 괜찮았고 간혹 나오는 콘서트 미스트리스의 독주도 감정이 살아 있어서 좋았고요. ..랄까, 어차피 세세한 분석은 하지 못하니 그냥 가벼운 느낌입니다. 사실 말러 6번이라고는 번스타인의 뉴욕필 연주밖에 들어 본 게 없는데 이거랑 비교하긴 뭐하고 말이죠. (...) 여담으로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은 음의 전달이 그다지 좋지 못하더군요. 음이 저 편에서 뭉쳐 있으면서 객석으로 슬금슬금 새어 나오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뚜껑이 덮인 그릇에서 연기가 빠져나오듯이 말이죠. 음이 온몸으로 전달되지 못해서 아쉽더군요. 객석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자리여서 더 그랬겠지만.

끝나고 나서는 박수가 끝이질 않았습니다. 정말 지치지도 않고 박수를 치는데, 저는 이 사람들이 정말 곡이 좋아서 박수를 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들더군요. 곡이 조금 잔잔해지면 바로 전후좌우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음과 잡담 소리가 음악 감상에 엄청난 방해를 해 대더만, 대체 뭘 그렇게 맘에 들어하고 그렇게 박수를 치는 건지. (...) 여하간 앵콜이 없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계속 박수를 치니 부천필도 돌아가질 못하고 계속 지휘자가 다시 나와 인사를 받고를 몇 차례나 반복하다가 결국 지휘자가 콘서트 미스트리스를 이끌고 퇴장을 확실하게 신호하더군요. 사실 그 때 지휘자 임헌정 씨가 콘서트 미스트리스의 바이올린을 집어들기에 '아니 박수에 대한 보답으로 본인이 바이올린 연주라도 할 셈인가?' 하고 경악했지만, 치아키도 아니고 그러지는 않더군요. (...)

여하간 그런 연주회였습니다. 음악 자체를 즐기기에는 주위 상황이 너무나도 받쳐 주지 않아서 피곤했습니다. 가난뱅이는 여러모로 힘들군요. 다음에 돈이 좀 생기면 제대로 연주회를 즐기러 가고 싶습니다.
Posted by Nei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