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
롭 민코프 외 감독, 매튜 브로데릭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1990년대 디즈니의 전성기에 있어 그 최고를 보여 준 작품입니다. 1994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지금 보아도 전혀 꿇리지 않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겠습니다만, 프레임을 아끼지 않는 부드러운 움직임과, 부드러우면서도 보기 좋은 색채, 애니메이션의 장면 하나하나를 '예술'로 만들어내는 구도와 연출, 작품성 높은 음악, 그리고 그 음악과 어우러져 나오는 캐릭터들의 뮤지컬 등을 빼놓을 수 없겠군요. 라이온 킹은 그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입니다. 그때까지의 디즈니의 모든 노하우가 승화된 애니메이션이랄까요? 요즘 10대 이하라면 모를까 이 애니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보았다는 전제로 쓸 작정이라 다소 스포일러가 포함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심각한 건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안 본 사람도 없지는 않겠죠)

"나~즈벵야~"를 연호(...)하며 시작되는 명곡 'Circle of Life'과 함께 하며 라이온 킹의 오프닝이 펼쳐집니다. 삶의 순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노래는 다른 것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수작입니다. 다만 이 경우 자연의 순환이란 결국 약육강식이며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세계- 그리고 사자왕이란 것도 결국 백성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냐, 라는 지적도 있긴 했습니다만, 저로서는 이 애니메이션을 그 쪽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애니나 영화든지간에 자신의 시각에 맞춰 보려면 얼마든지 그 시각에 맞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뭐든지 그냥 즐기기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애당초 저런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걸 여기서 말하는 이유도 '그런 쪽으로 볼 수도 있으니 여러분도 참고는 해 두세요'라는 의미니까요.

여하간 그 이야기는 좀 미뤄두고, 오프닝입니다. 다른 것 다 미루어 두고, 이 오프닝만으로도 '왜 라이온 킹인가?'라는 의문은 풀어집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오프닝을 캡춰한 것을 보면서 간단하게 말해 보도록 하죠.


왕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물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인데, 라이온 킹의 오프닝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동물들이 교차하여 나가는 부분을 연출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장면에서는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지만, 눈 덮인 산맥이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안개 깔린 대지를 이동해 나가는 코끼리와 그 위를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이후로 펼쳐질 예술적인 정경을 예고한다고 할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광경을 아주 좋아합니다


눈치채시겠지만 이 장면은 크게 세 면의 레이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일 아래의 대지와, 중간의 새 떼, 그리고 가장 위를 날아가는 새 떼. 장면 자체로도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동시에 공간감을 멋지게 펼쳐 주죠. 이게 애니메이션이라 멋진 건, 이런 장면들이 한 화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움직인다는 겁니다. 게다가 일본 애니가 프레임을 가능한 한 줄여서 움직임이 조금 팍팍 움직이는 데 반해 이 애니는 프레임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움직임이 정말 더없이 유려합니다.



물의 질감이 느껴지십니까?


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얼룩말들과 그 때문에 첨벙거리는 물들의 모습이 세심하게 표현된 장면입니다. 투명하고 찰랑이는 물의 질감과, 달려 나가는 얼룩말들의 움직임을 이 이상 없을 만큼 멋지게 연출해 놨지요. 거기에 황혼이라, 어딘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이 입체적인 감각이 중요합니다


저 멀리 바위 위로 사자왕 무파사가 서 있고, 짐승들이 그리로 나아가고, 이제 그 짐승들 위를 날아 무파사에게로 앵무새 자주가 날아들지요. '새'의 움직임과 장점을 살려, 공간 감각이 더 없을 만치 멋지게 살아납니다.



저 원숭이 라피키는 일종의 샤먼 같은 존재입니다


동물들이지만 정말 인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이런 표정 연출을 통해 라이온 킹의 모든 장면에서 동물들의 희노애락 표현을 멋지게 해냅니다. 동물들에게만 가능한, 가장 그 동물 다운 움직임에 더해져 의인화에 이 이상 없을 만한 표정 연출. 이러니 라이온 킹이 멋지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광빨이 살아 줘야.. (...)


라피키는 새로 태어난 왕자 심바를 쳐들어 모든 동물에게 보여 주고, 동물들은 기뻐하며 절하며, 햇빛이 그 위로 드리웁니다. 여태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에서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이런 장면도 단순히 평면적인 게 아니라 '카메라를 이동시키며' 입체적으로 이 장면을 보여줍니다. (카메라를 돌린다는 게 이만큼 어울리는 애니메이션도 없습니다)



라이온 킹, 시작입니다


이후로도 멋진 장면들로 가득합니다만 그런 걸 다 말하고 있기도 뭣하고, 이후로는 여러분이 직접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이 멋진 영상미와 그에 부족함없는 멋지고 웅장한 (또한 때로는 유쾌하며 소박한) 음악,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펼쳐 나가는 이야기들은 직접 보기 전에는 설명이 안 되죠. 더불어 저 위의 'Circle of Life'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해 보자면, 이 라이온 킹의 주제가 단순한 권선징악이나 약육강식만이 아니라는 걸 가사를 찬찬히 살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눈부신 태양을 처음 보던 그 날부터
난 누구보다 더욱 많은 걸 보았었지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강해졌다네
변함 없이 해는 중천에 떠오르고
크고 작은 세상일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네
이것이 자연의 섭리
우리 모두의 일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깨닫고
이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
이것이 자연의 섭리
이것이 자연의 섭리
우리 모두의 운명
절망과 희망을 통해
믿음과 사랑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깨닫고
이에 따라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

물론 이 리뷰의 처음에서 말했듯이 '그래도 결국 초식동물을 먹는 건 육식동물이고, 저 왕이란 게 사자고 백성들을 먹는 존재 아니냐' 라는 의견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제목이 삶의 순환- 자연의 섭리라는 걸 감안하고, 애니 중에 이런 대사가 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아버지인 무파사와 아들인 심바와의 대화를 잠깐 보죠.

무파사: 왕에겐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심바: 더 중요한 것?
무파사: 세상 모든 것은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왕은 이 균형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해. 조그만 개미부터 커다란 들소까지···.
심바: 하지만 우린 들소를 먹고 살잖아요.
무파사: 하지만 우린 죽어서 풀이 되고 들소는 그 풀을 먹지. 결국 우린 모두 자연의 섭리 속에 사는 거야.

여기에서 맛볼 수 있는 철학은 '모든 것은 결국 돌고 돈다'는 것이죠. 사실 기독교적으로 파고들면 저 이야기도 따지고 들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순환을 논할 때의 'Circle of Life'. 이 서클이라는 걸 또 순환의 고리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돈다- 단순히 육식동물은 죽어서 풀이 되고 그 풀을 초식동물이 먹으며 또 그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는다.. 고 해석하지 않고 이걸 윤회사상의 기본이 된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심바의 머리에 표를 하는 원숭이 라피키가 샤먼인 것과, 가부좌를 틀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다는 것도 이 해석에 보탬이 되는 장면이죠. 거기에 심바 안에 무파사가 있다는 걸 윤회사상에 기반한 해석으로까지 나가게 되면, 이 애니메이션을 단순한 동물 애니나 혹은 자연의 순환으로 보는 게 아니라 힌두이즘에서 근원한 윤회 애니로까지 볼 수도 있는 겁니다. (...)

저 해석이 틀렸다고만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신의 시각에 맞춰 보면 얼마든지 그 시각에 맞춘 결과가 나옵니다. 같은 영화를 백 명이 보면 백 명의 해석이 나옵니다. 뭐, 저 개인적으로는 라이온 킹의 여러 부분들에 거리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힌두이즘 애니나 제국주의 애니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세상이 나름대로 돌고 도는 것도 사실이고 (...), 심바 안에 무파사가 있다는 걸 꼭 윤회로 해석하지 않아도 좋지 않느냐는 입장입니다. 기독교적으로 볼 때는 위험함이 다소 있지만 그건 다른 뭘 봐도 마찬가지다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시각을 알아 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알 수도 있고, 누구의 말이든 거기에는 옳은 말도 있기 때문이죠. 어떤 누구의 주장이든, 그것이 설령 편견에 근거했거나 나로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시각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100% 틀리기만 한 말은 없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1% 정도는 맞는 말도 있는 법이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받아들이든 그것은 각자의 나름입니다.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느끼는 만큼 자신에게 도움이 되겠죠.

해서 라이온 킹의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졌습니다만, 일단 말해 두고 싶습니다. '저런 거 다 접어두고도 엄청 멋진 애니메이션이니 꼭 보세요' 그리고, 주제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머리로 직접 생각하시길 권합니다. 저 나름대로 이런저런 썰을 풀긴 했지만 꼭 이것만이 정답이다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감상은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뭐, 어쨌거나, 저는 이 라이온 킹이 디즈니 사상 공전절후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Neissy